반일은 남고 독도는 사라졌다
입력 2026.06.22 07:00
수정 2026.06.22 07:00
북한은 왜 독도를 지웠는가
적대적 두 국가론이 치른 첫 번째 비용
독도수호전국연대 회원이 2월 2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열린 일본정부의 독도강탈만행 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에 쓰일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홍보 책자를 놓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은 시마네현이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 벌이는 행사다. ⓒ뉴시스
지난주 독도에 다녀왔다. 수없이 사진과 영상으로 보았던 독도를 직접 마주한 그 순간, 생각보다 작은 섬이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에 숨이 막혔다. 독도는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다. 우리에게 독도는 영토이자 역사이며, 주권의 상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도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본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최근 북한이 독도를 지우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북한은 오랫동안 독도를 "우리 민족의 신성한 영토"라 주장해왔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면, 관영매체들은 독도를 “우리 겨레가 대대손손 물려온 신성불가침의 땅”이라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독도 문제는 남북이 정치·군사적으로 대립하던 시기에도 비교적 유사한 목소리를 내던, 몇 안 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발행한 일부 지도와 출판물에서 독도 표기가 삭제된 사실이 알려졌다. 2025년 이후에는 과거와 같은 독도 관련 논평이나 비난 성명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흥미로운 점은 독도가 사라진 이유를 단순한 대일정책 변화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여전히 일본을 '천년숙적'이라 부르며, 2025년과 2026년에도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방위백서 등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총련과 재일조선인 문제 역시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로 남아 있다. 독도 문제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반일은 남았는데 독도는 사라진 것이다.
이는 독도 삭제가 단순한 대일정책 조정이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론과 헌법 개정이 가져온 구조적 변화에 가까움을 시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 삭제를 적대적 두 국가론의 결과로 해석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영토조항이다.
과거 북한은 한반도 전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로 간주했다. 독도 역시 자연스럽게 ‘우리 영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헌법에 영토조항을 신설하고, 대한민국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독도가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는 영토라는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독도를 계속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는 순간 스스로 만든 영토 논리와 충돌하게 된다.
이 점에서 독도 삭제는 단순한 편집상의 수정이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론이 가져온 논리적 귀결로 봐야 한다. 북한은 2023년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걸었다. 이후 담론 조정 과정에서 2025년부터 독도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내고, 이후 영토조항 신설을 통해 이를 제도화했을 수 있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은 북한에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제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 북한이 오랫동안 활용해온 민족주의 자산 일부를 포기하도록 만들고 있다. 통일이 사라졌고, 민족대단결이 사라졌으며, 이제는 독도마저 그 대상이 된 듯하다.
지금까지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논의는 북한이 무엇을 얻었는가에 집중돼 왔다. 여기에 독도 삭제는 북한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얹는다. 독도는 어쩌면 적대적 두 국가론이 치른 첫 번째 비용일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간 독도 문제는 주로 일본의 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북한의 영토 인식과 국가 정체성 변화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독도를 더 이상 '우리 민족의 영토'로 호명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대남정책 변화가 아니라 한반도 정체성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에서 돌아오는 배 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독도. 북한이 독도를 지운 것은 과거의 상징 하나를 버린 사건일 수 있다. 앞으로 일본이 다시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할 때, 북한은 어떤 언어로 대응할까. 과거처럼 "우리 민족의 영토"라고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영토를 두고 벌어지는 분쟁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 순간이야말로 적대적 두 국가론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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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은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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