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의 납덩이 [조남대의 은퇴일기(105)]
입력 2026.08.11 14:01
수정 2026.08.11 14:01
우리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무게 하나를 허리에 매단 채 살아간다. 때로는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후회와 상실의 얼굴을 하고 곁에 머문다. 가볍게 살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더 깊은 곳으로 서서히 스며들기도 한다. 그 무게는 가라앉히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단단하게 견디게 하는 굴레가 아닐까.
아래로 가기 위해 기꺼이 몸에 무거운 납을 두르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 바다의 거친 물길을 가르는 해녀들이다. 물질에 나서기 전, 결연한 손놀림으로 5에서 8킬로그램에 달하는납덩이를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맨다. 사람의 몸은 숨을 품고 있어 자꾸만 물 위로 떠오르려 하고, 수면은 부력으로 좀처럼 심연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녀는 자연의 저항을 뚫고 깊게 내려가기 위해 무게를 더한다. 서늘한 납추는 생계를 건져 올리기 위한 생존의 닻이지만, 훗날 요통과 관절염이라는 이름으로 육신을 갉아먹는 고통의 씨앗이기도 하다. 장시간 물질 끝에 밖으로 나와 납덩이를 풀어낼 때 터져 나오는 가쁜 숨비소리는 해방과 안도가 섞여 있을 것이다.
허리에 무거운 납덩이를 매달고 작업하는 해녀ⓒAI 제작 이미지
제주 종달리 해변에 서면, 숨을 한껏 들이마신 뒤 몸을 접어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는 해녀들의 단호한 투신을 마주하게 된다. 허리에 매달린 납이 먼저 어둠을 향해 길을 내면, 육신은 묵직한 납덩이의 도움으로 아래로 스며든다. 해녀는 적막한 어둠 속에서 바위틈을 더듬는다. 얕은 바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캄캄한 밑바닥에 엎드려 있다. 전복을 떼어내고, 미역 줄기를 살피며, 해삼이 웅크린 바닥을 어루만지는 손이 먹거리를 찾아내는 고독한 시간이다. 겉으로 보기에 납덩이는 삶을 짓누르는 족쇄 같지만, 바다의 부력과 맞서며 삶을 영위하는 숭고한 노동의 동반자가 아닐까.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장이 짊어져야 하는 삶ⓒAI 제작 이미지
기억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는 거대한 납덩이를 허리에 매단 채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유영하셨던 것 같다. 말단 공무원의 얇은 봉투로 여덟 아들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져야 했던 막막함은 아버지가 짊어져야 했던 납덩이였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쌀과 생필품을 외상으로 들이고, 월급날이면 밀린 빚을 갚느라 손에 쥐는 것 하나 없이 또다시 헛헛한 맨손으로 한 달을 넘기셨다.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의 학업이라는 끈만큼은 놓지 않으려 열두 달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안간힘을 쓰셨다. 속으로 삭여낸 시름의 밤이 얼마나 깊고 무거웠을까. 일흔 고개에 이른 지금에야 해녀의 숨비소리를 어렴풋이 헤아리게 된다.
장성한 아들을 먼저 보내고 화장장 소각로 앞에서 통곡하는 아버지ⓒAI 제작 이미지
아버지를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끌어내린 무게는 가난이 아니었다. 입대를 앞둔 장성한 아들을 병마에 먼저 내어주어야 했던 날, 생의 가장 무거운 상실을 허리에 묶어야만 했다. 화장장 소각로의 철문을 두드리며 "불이야" 하고 세 번이나 피를 토하듯 외치시던 목소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귓가를 맴돈다. 뜨거운 불길이 번지니 어서 일어나 나오라는, 현실을 끝끝내 부정하고 싶었던 마지막 절규였다. 숨비소리가 저만할까. 그날 화장장을 울리던 쉰 목소리는 울음보다 처연했고 세상 어떤 통곡보다도 아득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간호하는 아들ⓒAI 제작 이미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묵묵히 살아오시던 아버지는 노년에 이르러 대장암 수술을 받고 허리에 대변 주머니를 찬 채 남은 생을 견디셔야 했다. 몸 바깥으로 매달린 주머니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고통이었지만, 한평생 속으로 삭여온 마음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결국 담도암까지 겹쳐 내 나이쯤에 먼저 간 아들의 곁으로 떠나셨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평생 허리에 차고 계셨던 것은 단순한 병의 흔적이 아니다. 세월과 가난, 책임과 피맺힌 상실이 단단하게 뭉쳐진 삶의 굳은 납덩이였다.
몸이 펄펄 끓는 딸의 침대 옆에서 애처로이 간호하는 아버지ⓒAI 제작 이미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의 짐을 안은 채 깊은 곳으로 몸을 던진다. 나 역시 칠십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찌 묵직한 하중을 비껴갈 수 있었겠는가. 어린 딸이 펄펄 끓는 열병으로 병상에 누워 일주일을 앓았을 때, 딸을 대신해 어떤 무거운 납덩이를 달고서라도 기꺼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밑바닥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진급의 문턱에서 누락되어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못한 채 일 년을 깊은 자괴감 속에 빠져 있었을 때의 눅눅한 마음의 무게는 또 얼마였던가. 이른 아침 운동 길에 허벅지 뼈가 부러져 2년 동안이나 목발에 의지해 버스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필과 사진을 배우러 다녔다. 두 팔과 목발로 짓누르는 삶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납덩이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견뎌내야 했다. 숨 막히는 시간은 거친 숨비소리와 함께 내 삶의 나이테에 흉터처럼 새겨진 뒤에야 서서히 풀려나갔다.
허벅지 골절로 목발을 짚고 공부하러 다니는 작가ⓒAI 제작 이미지
젊은 날에는 닻을 내리지 않은 가벼운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세월의 물결에 씻기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 깃털처럼 가벼운 슬픔은 없으며, 무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납덩이 같은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삶은 없다는 것을. 다만 그 하중을 등 뒤로 숨긴 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무게는 사람의 걸음을 더디게 만들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더딤과 수고로움 속에서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이 잡힌다.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던 책임도 묵묵히 품어내다 보면 어느새 몸 일부가 된다. 한때는 온 힘을 다해 벗어던지고 싶었던 무거운 짐들이 지나고 보니 나를 함부로 들뜨지 않게 붙잡아준 생의 닻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삶은 때때로 거센 파도로 우리를 밀어내려 하지만, 무게를 짊어진 채 버텨내다 보면 숨비소리를 토해낼지언정 마침내 얻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되고, 그토록 힘겨웠던 시간도 어느덧 지나간다.
납덩이를 허리에 묶은 채 살아가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우리 인생ⓒAI 제작 이미지
오늘도 각자의 무게를 허리에 묶은 채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때로는 버겁고 숨이 차올라 금세라도 수면 위로 도망치고 싶어지지만 우리는 안다, 그 무게를 참고 버티면 삶의 가장 단단한 바닥에 닿게 한다는 것을. 그때가 되면 비로소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홀가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가 묵묵히 짊어지고 온 그 무게 어느 하나도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리라.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까지 걸어왔기에, 마지막 길만큼은 깃털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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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