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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의 난 – 사이코패스의 반란 [정명섭의 실록 읽기㊷]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8.11 14:01
수정 2026.08.11 14:01

임금은 아니지만 임금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던 최충헌은 고종 6년인 서기 1219년 9월에 세상을 떠난다. 병이 깊어진 그는 큰아들 최우에게 병문안을 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형제간의 싸움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였는데 실제로는 자신의 측근들이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을 눈치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준문을 비롯해서 김덕명, 지윤심, 유송절 같이 최충헌의 측근들은 사후에 최우가 자신들을 숙청할 것이라고 예측하고는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최우가 아버지인 최충헌의 문병을 오는 틈을 노려 제거하고 동생인 최향을 후계자로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최우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문병을 가지 않았다. 초조해진 그들 중에 배신자가 나타났다. 최우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그들을 체포하고, 유배를 보내거나 죽이는 것으로 반역의 싹을 잘라버린다.


이 사건에 최향이 어디까지 연루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형인 최우는 최향을 역시 용서하지 않고 다음 해인 서기 1220년 3월에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인 홍주로 유배를 보낸다. 하지만 실권자인 최우의 동생 최향을 죄인 취급할 수 있는 홍주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향 역시 조용히 죄인으로 지내지 않았다.


최향이 반란을 일으킨 홍주성의 성벽 ⓒ직접 촬영

홍주에 유배된 이후 늘 원망하여, 집을 크게 짓고 불의한 행동을 많이 하며 거주하는 백성들을 침해하여 소란케 하니, 온 경내가 괴로워하였다. 최우와 그 고을의 관리가 금지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동안 홍주 관리들과 백성들을 괴롭히며 지내던 최향은 고종 17년인 서기 1230년 8월에 부하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홍주의 관리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서 죽인 다음 관아로 나아가서 나머지 관리들을 죽인 다음에 객사의 문루에 올라가 징과 북을 치며 난동을 부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관리들을 죽이기는 했지만 약간 스케일이 큰 난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형인 최우를 죽이려고 했다가 유배된 유송절을 비롯해서 근처에 유배 온 죄인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부하들을 시켜 관아의 창고를 열고 식량을 나눠주었다. 보통 반란을 일으키면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문제는 그 사람이 십년 동안 홍주 백성들을 괴롭힌 최향이라는 점이었다. 식량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인 한 명이 최향의 부하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우발적인지 아니면 계획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로 인해서 홍주의 민심은 어지러워졌다.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최우도 가만있지 않았다. 병마사 채송년을 지휘관으로 하는 진압군을 파견했는데 병력 규모가 10령(十領)이라고 나온다. 고려의 중앙군인 2군 6위는 총 4만 4000명으로 44령으로 편성되어있다. 1개 영에 대략 1,000명씩 편성되어 있으니까 대략 10,000명의 진압군이 몰려온 것이다. 최향이 평소 거느리고 있던 부하들과 반란에 가담하기 위해 몰려든 불평분자들이 제법 있겠지만 진압군을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였을 것이다. 거기다 민심이라도 얻었다면 그걸 믿고 성을 지키면서 버텨보겠지만 최향은 10년 동안 홍주 백성들을 괴롭혔던 인물이었다. 결국 패배한 최향은 부하들과 함께 북산으로 도망친다. 그러자 홍주 백성들이 진압군을 데리고 그가 숨은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고을의 관리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최향은 터무니없는 대답을 한다. 자신의 형인 최우가 몇 년이 지나도록 자신을 부르지 않고 고을의 관리들이 자기를 무시해서 충동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앞서 홍주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기록, 그리고 반란을 일으키고 곡식을 나눠주었지만 반응이 차가웠던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자신이 남에게 끼치는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남이 자신에게 입히는 피해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잊지 않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자 변명이다. 그리고 뒤이어 한 변명이자 항변은 더욱 가관이었다. 신당에 가서 배교를 세 번이나 던져봤는데 모두 길하다는 점괘가 나오자 주변에서 반란을 일으키라고 부추겼고, 거기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배교는 땅에 던져서 누운 모양을 보고 점을 치는 방식으로 주로 옥이나 짐승의 뿔, 조개 껍질 같은 것을 사용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정도 변명으로 넘어갈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다. 이렇게 형에 대한 변명과 좋은 점괘를 본 주변의 부추김 때문에 일으킨 반란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추격당하던 와중에 부하들도 다 흩어지고 혼자서 도망치던 최향은 동굴 속에 숨었다가 목에 칼을 찔러 죽은 척했지만 결국 체포되고 만다. 감옥에 끌려간 최향은 그곳에서 죽었는데 아마 죽은 척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붙잡혔고, 상처가 심해지면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정명섭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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