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팔게 했지만 팔 곳이 없다”…푸드트럭 규제 완화의 역설 [임유정의 오프 더 메뉴]
입력 2026.08.10 07:00
수정 2026.08.10 07:00
주류 판매 허용했지만 상설 영업지는 여전히 부족
축제·행사 의존에 수익 불안정…신규 창업도 급감
업계 “지정 영업구역 확대하고 국내외 사례 도입해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푸드트럭 앞에 줄 서 있다.ⓒ뉴시스
정부가 푸드트럭의 주류 판매를 허용하며 규제 문턱을 낮췄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팔 곳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설 영업지가 부족해 대부분 축제와 행사에 의존하는 데다 행사 일정에 따라 수입이 좌우되면서 제도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는 규제 완화와 현장 사이의 간극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사업자가 생계를 위해 과태료를 감수하고 불법 영업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영업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 한 산업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3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푸드트럭의 영업 가능 업종을 일반음식점영업까지 확대했다. 이에 따라 기존 제과점영업·휴게음식점영업에 한정됐던 푸드트럭도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신고를 할 수 있게 됐으며, 주류 판매도 가능해졌다.
이번 개정은 식약처가 지난 2024년 ‘식의약 규제혁신 3.0’ 과제로 추진한 규제 개선의 후속 조치다. 당시 식약처는 소상공인의 영업 부담을 줄이고 변화하는 외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업계 의견을 반영해 푸드트럭의 영업 범위 확대를 추진했다.
그동안 영업 형태 제한으로 메뉴 구성에 제약이 있었던 푸드트럭은 이번 개정을 계기로 판매 품목을 한층 다양화할 수 있게 됐다. 일반음식점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치킨과 맥주처럼 음식과 주류를 함께 판매하는 영업도 가능해졌다.
푸드트럭 업계도 이번 규제 완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반응이다. 축제와 행사장에서 주최 측이 주류 판매를 직접 운영하거나 별도 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 푸드트럭이 주류를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아서다.
한국푸드트럭협회 관계자는 “주류 판매가 가능해졌지만 아직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며 “주류 판매를 허용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작 장사할 장소가 없으면 제도 개선 효과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 좋은 옷을 사줘도 입고 나갈 곳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물빛광장에서 열린 '서울 푸드트럭의 날'에서 한 상인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뉴시스
◇ 푸드트럭, “규제 완화보다 영업 환경 개선 우선”
업계는 주류 판매 보다 더 시급한 과제로 안정적인 영업 환경 조성을 꼽는다. 판매 품목은 늘었지만 정작 장사할 장소가 부족해 제도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푸드트럭은 축제와 케이터링에 의존하고 있으며, 일정에 따라 수입이 좌우되는 구조다.
박물관이나 공원 등 상시 영업이 가능한 장소는 거의 없고, 겨울철에는 행사가 크게 줄어 사실상 영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 올해 참여한 행사에 내년에도 다시 입점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2014년 푸드트럭이 합법화된 이후 영업 가능 구역이 일부 확대됐지만 업계가 요구하는 상설 영업지 확대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우려해 관계 당국이 장소 지정에 소극적인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푸드트럭은 행사 주최 측과 입점 계약을 맺은 뒤 해당 지역 관할 위생부서에 영업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는 장소와 행사 기간별로 이뤄지며 행사가 끝나면 효력이 종료된다. 다른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다시 영업신고를 해야 하는 방식이다.
상설 영업장이 부족하다 보니 일부는 길거리 등에서 불법 영업을 하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생계를 위해 이를 감수하고 영업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담당 공무원들이 기존 상권과 푸드트럭의 마찰을 우려해 영업 구역을 크게 확대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푸드트럭 한 대가 기존 음식점 수천 개 의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드트럭은 평일에는 사실상 영업을 하지 못하고 주말 행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수기에는 월매출이 1000만원을 넘기도 하지만 비수기에는 매출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성수기에 번 수입으로 비수기를 버티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경북 경주예술의전당 앞에 마련된 K-푸드 체험존에서 국내외 참가자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음식을 시식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뉴시스
◇ 오갈 곳 없는 푸드트럭…산업 성장도 수년째 ‘정체’
이처럼 불안정한 영업 환경이 이어지면서 푸드트럭 산업도 수년째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푸드트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실제 영업 중인 푸드트럭은 약 2000대다. 푸드트럭 제작·대여와 행사 운영 등 연관 산업까지 포함한 종사자는 약 3000~4000명, 연간 시장 규모는 약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시장 규모는 최근 3~5년간 별다른 성장 없이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지원이 줄어든 데다 안정적인 영업 장소를 확보하기 어려워 신규 창업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현재 종사자의 상당수도 50~60대가 차지하고 있다.
푸드트럭 산업이 처음부터 활력을 잃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식품위생법과 자동차관리법 등 관련 규제가 정비되면서 영업이 합법화됐고, 이듬해 박근혜 정부가 청년 창업과 규제개혁의 상징 사업으로 육성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하지만 상설 영업지 부족과 미비한 제도적 기반으로 초기 성장세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행사와 축제에 의존하는 영업 방식이 고착되면서 수익의 계절성이 커졌고, 정부 지원까지 줄자 청년층의 신규 진입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업계는 청년층의 신규 창업이 줄어든 이유로 ▲정부 지원 축소 ▲안정적인 영업 장소 부족 ▲불확실한 수익 구조를 꼽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한 데다 푸드트럭 특유의 불안정한 영업 환경까지 맞물리면서 신규 창업이 크게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3~5년간 시장은 성장도 감소도 없는 정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며 “정부 지원이 부족한 데다 창업 열기도 식으면서 신규 진입이 거의 끊겼고, 현재 종사자의 상당수는 50~60대가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서울 서초구 잠수교에서 열린 2025 서울 관광푸드 페스티벌에서 한 푸드트럭 요리사가 요리를 하고 있다.ⓒ뉴시스
◇ 푸드트럭 “국내외 우수 사례 도입해야”
업계는 푸드트럭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우수 사례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표적으로 서울 서초구는 여러 영업 장소를 지정하고 등록된 푸드트럭이 일정에 따라 순환하며 영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상설 영업지가 부족한 다른 지역에서도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면 사업자의 영업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사례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미국 등에서는 푸드트럭 전용 영업구역을 지정하거나 여러 장소를 순환 배정해 지속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 같은 운영 방식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창업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상권정보시스템 등을 활용해 수요가 있는 영업 후보지를 발굴하고, 멘토링과 창업 컨설팅, 자금 지원 등을 연계해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푸드트럭 업계 관계자는 “주류 판매 허용과 같은 규제 완화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영업 기반을 만드는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야 푸드트럭 산업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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