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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재래, 속도는 개량…'우리흑돈'이 쓴 K-흑돼지 성공방정식 [新농사직썰-청춘농담③]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6.15 10:32
수정 2026.06.15 10:32

근내지방 4.3%의 자신감…마트 매대에서 소시지까지 영토 확장

순종은 프리미엄, 교잡은 가공육…우리흑돈 ‘투트랙’ 질주

곡성 청년농 김동찬 바우엔 대표 “재래흑돈 소시지로 가공시장 개척”

흑돼지의 대중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고급육으로 인식 돼 온 흑돼지가 개량 작업이 이뤄지면서 가공육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업의 가치와 미래 기술을 조망해 온 ‘농사직썰’이 다섯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시즌1의 연구 성과를 시작으로 지역 기술(시즌2 월령가), 해외 진출(시즌3 케이팜), 연구 현장의 이면(시즌4 혁신의 씨앗)까지 짚어 왔다면, 시즌5는 그 기술력이 시장에서 어떻게 부가가치로 전환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번 시즌의 대문은 ‘청춘농담(靑春農談)’이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고부가가치 원재료를 바탕으로 청년 농업인이 현장에서 써 내려가는 생생한 성공담을 뜻한다. 동시에 청년의 감각과 기획력이 전통 농업의 색과 밀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포착하겠다는 뜻도 담았다.


기술은 실험실에 머물 때보다 시장에서 소비자와 만날 때 더 또렷한 가치를 갖는다. 본지는 농촌진흥청이 공들여 육성한 원천 기술과 품종이 청년의 기획력과 만나 어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지 추적할 계획이다. 단순한 우수 사례 소개를 넘어 기술 기반 농업 창업 생태계가 농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떠받치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농촌진흥청이 지난 2015년 개발한 ‘우리흑돈’은 국산 기술로 바꾼 흑돼지다. 재래돼지의 맛은 살리고 느린 성장은 줄였다. 개발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흑돈은 연구 성과표를 벗어나 대형마트 매대와 수제 소시지 진열장에서 평가받고 있다.


전남 곡성의 청년 농업인은 이 검은 돼지를 독일식 소시지로 빚어 돼지 한 마리의 가치를 다시 계산하고 있다. 품종 개발에서 사육과 유통, 가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완성돼 가는 현장이다.


재래흑돈으로 만든 수제소시지. 지방이 풍부해 가공육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느림보' 재래돼지의 리브랜딩…사육기간 40일 줄였다


우리흑돈 출발점은 재래돼지의 두 얼굴이었다. 맛과 향은 뛰어났지만 키우는 데 약 230일이 걸렸다. 새끼도 6~8마리에 그쳤다. 생산비는 늘고 회전율은 떨어졌다. 맛있는 돼지가 농가에는 부담스러운 돼지였던 셈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재래돼지 ‘축진참돈’과 자체 개량한 ‘축진듀록’을 교배했다. 재래돼지 혈통 비율은 37.5%로 고정했다. 육질과 성장 능력을 함께 잡으려는 설계였다.


겉모습도 품종의 일부로 관리했다. 털색 유전자 'MC1R'를 활용해 검은 털 형질을 고정했다. 농가가 자체 교배해도 다른 털색의 돼지가 나올 가능성을 낮췄다.


씨돼지 선발에는 유전체 선발 기술을 적용했다. 개체의 유전체 정보와 혈통, 실제 성장 자료를 함께 분석하는 방식이다. 성장률과 등지방 두께가 선발지표다.


성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우리흑돈의 근내지방 함량은 4.3%다. 일반 상업용 돼지 3.0%보다 1.3%포인트(p) 높고 재래돼지 4.5%에 근접한다. 고기 속에 지방이 고르게 퍼진 정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사육기간은 180~190일이다. 일반 상업용 돼지 175~185일보다는 다소 길지만 재래돼지보다 40일 이상 짧다. 새끼 수도 8~10마리로 재래돼지보다 늘었다.


맛 평가도 뒤따랐다. 6점 만점 전문가 평가에서 우리흑돈의 육색은 4.96점, 향미는 4.81점을 받았다. 일반 개량종은 각각 3.15점, 4.15점이었다. 빨리 크기만 하는 돼지가 아니라 색과 향으로 차별화한 품종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흑돈의 시장성은 이 균형에서 나온다. 농가에는 키울 만한 품종, 소비자에게는 값을 더 치를 이유가 있는 고기. 두 조건 사이의 간격을 좁힌 품종이 우리흑돈이다.



우리흑돈은 교잡으로 보급율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농촌진흥청
◆순종은 프리미엄, 교잡은 볼륨…연 17만 마리 투트랙


좋은 품종이 곧바로 팔리는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씨돼지를 늘려 농가에 보급하고 도축과 가공, 유통, 브랜드까지 이어야 한다. 우리흑돈은 개발 후 10년에 걸쳐 이 문턱을 차근차근 넘어왔다.


보급 실적이 이를 보여준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 농가에 공급된 우리흑돈은 암퇘지 2715마리, 수퇘지 672마리 등 모두 3387마리다. 2025년 한 해에만 24개 농가에 736마리가 공급됐다. 연구기관 중심이던 보급 구조에 민간 종돈장과 지방자치단체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장 전략은 둘로 나뉜다. 순종은 희소성과 육질을 앞세워 고급육 시장을 겨냥한다. 2025년 3월부터 일부 이마트 점포에서 판매가 시작되면서 일반 소비자가 우리흑돈을 직접 살 수 있는 접점이 생겼다.


제도 기반도 넓어졌다. 2024년 '토종가축의 인정기준' 개정으로 개량재래종이 토종돼지 범위에 포함됐다. 재래 혈통을 계승한 국산 품종이라는 정체성을 시장에서 내세울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대중화는 교잡돈이 맡는다. 요크셔·랜드레이스 교잡 모돈에 두록과 우리흑돈을 교배한 부돈을 붙여 기존 생산성에 우리흑돈의 육질을 더하는 구조다.


농진청은 2024년 팜스코와 협력해 이 생산 체계를 구축했고, 팜스코는 우리흑돈 교잡돈을 활용한 브랜드 ‘하이포크 블랙’을 내놨다. 2025년 약 3만 마리 출하를 시작으로 2026년 이후 연간 17만 마리까지 공급을 늘릴 계획이다.


투트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순종만 고집하면 희소성은 지키지만 시장이 크지 않는다. 교잡돈만 늘리면 품종 고유의 가치가 흐려진다. 순종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고 교잡돈이 소비 기반을 넓히는 분업이 작동해야 한다.


이 구조는 농업 연구 성과의 산업화 공식이기도 하다. 연구기관은 종자를 개발하고 민간기업은 대량 생산과 브랜드, 유통을 맡는다. 농가는 안정적으로 키우고 소비자는 차이를 체감한다. 어느 한 단계가 끊기면 품종은 연구실 밖으로 나오기 어렵다. 우리흑돈은 그 고리를 하나씩 이어 붙이고 있다.



재래흑돈 농가를 운영 중인 김동찬 바우엔 대표는 흑돈이 시장에서 다양한 경로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제소시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젊음과 패기, 그리고 실험정신으로 재래흑돈 대중화의 선봉에 서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냉동창고의 골칫거리, 효자가 되다…곡성 바우엔의 소시지 실험


돼지 한 마리를 팔 때 삼겹살과 목살은 먼저 빠진다. 문제는 두 부위를 제외하고 남은 뒷다리살이다. 한 마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뒷다리살은 냉동창고에 쌓이기 쉽다. 재고가 차면 추가 도축도 막힌다. 전남 곡성에서 농장과 육가공을 함께 운영하는 김동찬 바우엔 대표가 소시지에 눈을 돌린 이유다.


김 대표는 “삼겹살과 목살을 팔아 돼지 한 마리의 원가를 맞추고, 나머지 부위를 어떻게 판매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진다”며 “냉동창고에 남는 뒷다리살을 보면서 소시지 가공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작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었다. 이후 육가공품 판매 여건이 바뀌자 직접 생산으로 전환했다. 김 대표와 아버지는 독일식 육가공 기술을 배웠다. 농장 돼지를 정육으로만 팔지 않고 햄과 소시지로 확장하기 위한 투자였다.


바우엔의 경쟁력은 농장과 가공의 수직 결합이다. 원료육을 전량 외부에서 사는 업체보다 원가 부담이 낮고 부위별 수요 차이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김 대표는 소시지를 100g당 4000원 수준에 판매한다. 이 단가로 환산하면 돼지 한 마리에서 약 300만원의 상품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재래흑돈은 이 제품을 차별화하는 원료다. 바우엔은 제주 흑돼지도 써봤지만 종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웠다. 재래 혈통을 이은 우리흑돈을 접한 뒤 소시지와 햄의 원료로 삼았다.


김 대표는 “수제 소시지 업체들이 대부분 국산 돼지고기를 쓰지만 바우엔은 재래흑돼지를 전면에 내세운다”며 “독일식 햄을 한국 재래돼지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제품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고기를 갈아 만드는 소시지에서도 원료육의 차이는 지워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소시지에는 지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며 “우리흑돈은 지방이 단단하고 느끼함이 적어 가공 뒤에도 고소한 맛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제조 현장에서는 칼이 들어가는 느낌부터 다를 정도라는 것이다.


바우엔은 2025년 6월 곡성의 지역 거점시설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곡성 청년농업인과 지역 농가의 농산물을 모아 상품 구성을 넓힐 계획이다.


김 대표는 “관광객이 기차마을에 갔다가 들르는 곳이 아니라 바우엔에서 곡성을 먼저 맛본 뒤 여행을 시작하도록 만들고 싶다”며 “지역 농산물과 청년농업인의 제품을 한곳에 모아 '곡성을 한입에 먹는 공간'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우리흑돈의 다음 시험대는 일관성이다. 연간 17만 마리 공급 목표가 시장 확대로 이어지려면 교잡 과정에서도 향미와 육질이 유지돼야 하고, 일반 돼지고기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만한 품질 기준과 브랜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성패를 가르는 잣대는 이제 논문 실적이 아니라 소비자의 반복 구매다.


김시동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장은 “우리흑돈은 국내 유전자원을 활용해 개발한 고유 품종으로, 한돈의 고급화와 시장 확대를 이끌 핵심 기반”이라며 “순종과 교잡돈을 함께 활용해 고급육 시장과 일반 소비시장을 아우르는 산업화 체계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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