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엔 한국이 북·미 이었다…8년 뒤 달라진 '중재 환경'
트럼프, 김정은에 연내 회동 의사…북한은 엇갈린 메시지
2018년 평창올림픽 계기로 남북 대화→북미 대화 연결
북러 밀착·핵능력 고도화로 협상 환경 달라져…한국 역할 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잇따라 대화 재개 신호를 보내면서 북미 정상 간 재회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연결했던 때와 달리 북한의 대외 환경과 협상력이 크게 달라진 만큼, 한국이 이번에도 북미대화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김정은이 자신의 대화 제안에 "응답했다"고 밝힌 데 이어, 19일에는 김정은과 연내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에서는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두 정상이 만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북미 간 소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반박해 북한의 공식적인 호응 여부는 불투명하다.
북미가 다시 대화 국면으로 움직일 경우 한국이 양측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실제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재개된 남북대화가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이 양측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중재 역할을 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극도로 긴장돼 있었다. 북한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이어갔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강경 대응을 경고했다. 그러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이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고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을 전달하면서 남북대화가 본격화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연결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했다.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찾아 김정은을 만났고,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특사단은 곧바로 워싱턴으로 향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대화가 흔들리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판문점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열었다.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의 동력을 되살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와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군사·경제적 협력을 강화했다. 핵·미사일 능력도 고도화하면서 북한의 외교적 협상력이 2018년보다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대화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처럼 서둘러 협상에 나설 유인은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분석이다.
남북관계 역시 2018년과 다르다. 당시에는 평창올림픽이라는 계기를 통해 남북 접촉이 급속히 확대됐지만 현재는 남북 간 대화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한국을 거치지 않고도 외교적 공간을 확보한 점도 한국의 중재 여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는 한국을 북미대화의 중요한 당사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활동했던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보수매체 '아메리칸 그레이트니스'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기 전에 이재명 대통령과 먼저 정상회담을 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한국과 긴밀히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도 한국이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론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참석 여부를 검토 중이다. 11월 APEC 정상회의 역시 북미 정상회담의 계기로 거론되고 있지만, 북한은 APEC 회원국이 아니어서 초청 여부 등이 변수다.
통일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조건으로 내걸면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 수도 있다"며 "훈련 중단이 일정 기간인지 영구적인지는 북미가 협상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