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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작업하나…작곡가들이 말한 음악 제작의 현실 [AI와 K팝, 공존의 조건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8.15 09:13
수정 2026.08.15 09:13

"누구나 음악 만드는 시대"…속도 빨라졌지만 창작·검수는 결국 사람 몫

바둑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지 10년이 흘렀다. 이후 계산과 분석은 AI가 인간을 넘어설 영역으로 예상했지만, 감정과 상상력이 필요한 예술은 AI가 쉽게 넘볼 영역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도 더는 유효하지 않다. AI는 이제 그림과 소설에 이어 음악까지 만들어낸다. 작곡과 편곡, 가이드 보컬, 영어 가사 작성은 물론 연주와 믹싱 아이디어까지 음악 제작 과정 곳곳에 스며들며 창작의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오디오 스튜디오ⓒ픽사베이

유튜브에서는 AI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와 AI 커버곡이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자리 잡았다. 기존 케이팝(K-POP)을 뉴잭스윙이나 R&B 스타일로 편곡하거나 남녀 보컬을 바꿔 부르게 한 영상, 특정 시대의 음악 문법으로 재해석한 콘텐츠가 수십만에서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AI가 만든 배경음악 역시 숏폼과 개인 방송, 각종 영상 콘텐츠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AI 커버 영상들ⓒ유튜브

창작 현장의 변화는 소비 시장보다 한발 더 앞서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현업 작곡가들은 AI 활용 방식에는 차이를 보였지만 한 가지에는 공감했다. AI는 더 이상 일부 얼리어답터만 사용하는 실험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작업 과정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이다.


AI가 제작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창작 과정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누구나 몇 분 만에 음악의 초안을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결과물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떻게 검수할 것인지, 작곡가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새로운 문제도 함께 등장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생성형 음악 AI인 수노(Suno)가 있다. 실제 제작 현장에서 수노를 비롯한 AI가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두고 작곡가들의 경험과 평가는 엇갈렸다.


"수노를 이겨야 하는 게 아니다"…현업이 말하는 AI의 자리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작곡가 김민구는 AI와 인간을 대결 구도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곡가 김민구는 "사람들이 자꾸 수노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앞으로는 나도 수노를 쓰고, 경쟁하는 작곡가도 수노를 씁니다. 결국 누가 AI를 더 잘 활용하느냐의 경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의도를 구현하는 도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AI는 인간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방향을 정하고, 어떤 음악을 만들지 기획하고, 보컬을 디렉팅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결국 사람이다. AI는 전 세계 음악을 학습해 평균적으로 좋은 결과를 빠르게 만들 뿐이다. 중요한 건 퀄리티보다 방향성이다"라고 전했다.


AI가 바꾸는 것은 작곡가라는 직업 자체보다 제작 과정이라고도 했다. 작곡가 작곡가는 "모든 산업이 그렇듯 AI로 대체되는 구간은 생길 겁니다. 반복적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하거나 수정하는 중간 단계의 업무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방향을 잡고 마지막 완성도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작곡가 chAN's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줬다.


AI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거부감이 컸지만, 1년여 전부터 결과물이 눈에 띄게 발전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cHAN's는 "막힌 아이디어를 풀거나 여러 편곡 방향을 빠르게 확인할 때는 정말 유용하다. 사람이 하루 종일 고민할 일을 몇 분 안에 보여준다"라면서도 AI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아직은 AI 특유의 보컬 질감도 남아 있고, 전체를 맡길 수준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이 시키는 일을 대신해주는 조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AI가 제작 현장에 가져온 변화가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작업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만큼 창작 과정의 밀도와 검수 기준도 함께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싱어송라이터 도코는 "예전에는 곡 하나를 만드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면 지금은 AI가 5분 만에 초안을 만들어준다. 문제는 그 이후다. 오히려 네 시간 반 동안 수정 작업을 한다"면서 AI가 생산성을 높였지만, 결과적으로 창작의 질까지 높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어 "'초안입니다' 하고 AI 음악을 들려주면 다들 좋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멜로디를 수정했을 부분도 그냥 편곡만 다시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편리함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코는 현업에서는 AI가 만든 곡도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보컬만 AI를 썼고 멜로디와 가사는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렇지 않다"며 "계속 듣다 보면 수노 특유의 멜로디 진행이 보인다. 건반 소리에 드럼이 묻어 있는 등 AI 특유의 질감도 남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사람들 귀에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을 계속 주고 있는 것 같다"며 "사람들이 이미 좋아했던 음악 문법을 반복해서 학습한 결과물을 계속 듣다 보니, 익숙함 자체를 좋은 음악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작곡가 황현은 생성형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짚었다. 황현은 "작년이 수노의 발전 속도가 가장 빨랐던 시기였다"며 "당시에는 현장에서도 관심이 컸지만 지금은 오히려 흥미를 잃은 프로듀서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예능이나 광고처럼 음악이 주가 아닌 콘텐츠에서는 PD들이 수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K팝 프로듀서들은 오히려 관심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AI의 구조적인 한계를 꼽았다. 황현 작곡가는 "수노는 인간이 만들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악을 학습해 비슷하게 그려내는 구조"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음악의 문법을 조합하는 데 강한 엔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슈퍼 표절 머신'에 가깝다. 보사노바나 시티팝, 트로트처럼 문법이 정형화된 장르는 정말 잘 만든다. 하지만 케이팝은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그 부분은 아직 AI가 따라오지 못한다"며 "프롬프트를 계속 수정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직접 만드는 게 더 빠를 때도 있다. AI가 아이디어를 주는 도구는 될 수 있지만, 창작 자체를 대신하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AI 자체를 배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1980년대 MIDI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컴퓨터로 만든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라는 반발이 있었다"며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AI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제작 도구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작곡가 서기준은 AI가 음악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기준 작곡가는 "예전에는 작곡가에게 창조력과 기술력이 모두 필요했다면 이제는 기술적인 장벽은 AI가 상당 부분 낮췄다"며 "이제는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누구나 대중음악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며 "오히려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기준은 "대형마트 매장 음악이나 선거송, 유튜브 채널 시그니처 음악처럼 반복적인 제작을 맡던 작곡가들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있다"며 "AI가 메인 시장보다 주변 시장부터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활용 여부를 가려내는 일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서기준은 "챗GPT가 써준 글을 그대로 복사하면 AI가 쓴 글이지만, 그걸 보고 다시 손으로 타이핑하면 구별하기 어렵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AI가 만든 멜로디를 사람이 다시 연주하고 가이드 보컬이 다시 부르면 사실상 판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 자체가 새로운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고 봤다. 서기준은 "결국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사람 손으로 다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멜로디를 다시 만들고, 보컬을 다시 녹음하고, 편곡을 다시 손 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걸 할 실력이 없는 사람은 결국 거기서 멈춘다"며 "AI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AI 결과물을 자기 음악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AI는 이미 음악 산업 안으로 들어왔다. 다만 AI가 사람을 대체할 것인지보다, 사람이 AI와 함께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공존했다.


분명한 것은 질문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모두가 AI를 사용하는 시대, 누가 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쏟아지는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 자신의 음악으로 완성할 것인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다만 이 변화와 별개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AI가 만든 음악은 누구의 창작물이며, 학습에 사용된 원저작자는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AI가 음악 산업에 깊숙이 들어온 속도만큼, 이를 둘러싼 저작권과 보상 체계는 아직 표류 중이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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