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가 키운 ‘아마로네’ [임유정의 글라스 노트]
입력 2026.08.07 07:00
수정 2026.08.07 08:24
신세계L&B, 4일 브리갈다라 세미나 개최
안토니오 테사리 오너, 아마로네 철학·양조 방식 소개
싱글 빈야드·소아베·미래 전략까지 공개
서기 1세기 무렵 건립된 고대 로마 원형극장 ‘베로나 아레나’.ⓒAP=뉴시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두 연인의 이야기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인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도시 곳곳에는 작품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골목과 광장에는 중세의 시간이 여전히 흐르는 듯하다.
베로나의 중심에는 약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대 로마 원형극장 ‘베로나 아레나’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서기 1세기 무렵 건립된 이 원형극장은 오늘날에도 오페라와 공연이 열리는 세계적인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언덕 위 산피에트로 성에서는 붉은 지붕이 이어진 구시가지와 도시를 감싸 흐르는 아디제강이 한눈에 펼쳐진다. 고대 로마의 유산과 중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이 풍경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베로나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베로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낭만적인 풍경만이 아니다. 베로나는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도시를 둘러싼 발폴리첼라 지역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레드와인의 고장으로, 이곳에서 탄생한 ‘아마로네’는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로네의 본고장인 발폴리첼라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와이너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브리갈다라(Brigaldara)’는 100년 넘게 이 지역을 지켜온 생산자로, 발폴리첼라의 떼루아와 아마로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재 오너인 안토니오 체사리(Antonio Cesari)는 지난 4일 신세계L&B 초청으로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에 위치한 WSA와인아카데미를 찾아 기자들에게 브리갈다라의 와인 철학과 아마로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한국 방문은 2019년 이후 두 번째다.
안토니오 체사리 브리갈다라 오너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미디어 시음회에서 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신세계L&B
◇ 일상에서 즐기는 ‘아마로네’ 지향…당도 2g으로 부담 축소
브리갈다라는 처음부터 와인을 만들던 곳은 아니었다. 100년 이상 포도 농사를 지어온 농가였지만, 현재 오너인 안토니오 체사리(Antonio Cesari)의 아버지 스테파노 체사리가 와인 양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아마로네를 대표 와인으로 생산하고 있다.
특히 브리갈다라는 포도 재배부터 수확, 양조, 병입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는 ‘에스테이트 와이너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샤르도네 같은 국제 품종 대신 코르비나, 코르비노네, 론디넬라 등 베네토 지역 토착 품종만 사용해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낸다.
아마로네는 일반적인 레드 와인 생산 방식과 차이를 갖는다. 수확한 포도를 약 100일 동안 건조하는 ‘아파시멘토(Appassimento)’ 방식으로 만든다. 포도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당분과 향, 과실 풍미가 농축되고, 이를 압착해 발효하면서 아마로네 특유의 깊고 진한 맛이 만들어진다.
안토니오 체사리는 “일반 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 약 1kg의 포도가 필요하다면, 아마로네는 수분 손실 때문에 약 2kg의 포도가 필요하다”며 “소형 오크통에서 먼저 숙성한 뒤 대형 오크통으로 옮겨 추가 숙성해 와인의 구조를 부드럽게 만들고 과도한 오크 향을 피한다”고 설명했다.
브리갈다라는 전통적인 아마로네는 물론 보다 우아하고 균형감 있는 스타일의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아마로네가 진한 풍미와 높은 알코올감, 묵직한 스타일을 지향한다면 브리갈다라는 신선함과 높은 드링커빌리티(drinkability·목 넘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위해 브리갈다라 아마로네는 다른 제품보다 잔당을 낮게 유지한다. 일반 아마로네의 잔당이 최대 10~12g 수준이라면, 브리갈다라는 약 2g 수준을 지향한다. 13개 와이너리로 구성된 아마로네 생산자 협회중에서도 브리갈다라가 가장 적은 잔당을 사용하는 생산자다.
안토니오 테사리 오너는 “아마로네 특유의 무겁고 달며 진득한 스타일보다 섬세함과 신선함, 마시기 편한 균형감을 강조해 생산하고 있다”며 “와인을 한두 잔 마시고 끝내는 술이 아니라 음식과 함께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음료로 본다”고 웃어보였다.
까사베체 빈야드ⓒ신세계L&B
◇ “테루아 개성 그대로”…싱글빈야드로 완성도 높인 ‘아마로네’
이날 그는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하는 아마로네 3종인 ▲‘아마로네 카볼로’ ▲‘아마로네 클라시코’ ▲‘아마로네 카세 베체’를 소개했다. 핵심은 포도밭마다 토양과 일조량, 고도, 수확 시기에 따라 와인의 성격도 달라진다며 싱글 빈야드의 매력을 전했다.
이어 가장 즐겨 마시는 와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평소에는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카세 베체’를 마시고, 특별한 날에는 ‘아마로네 카세 베체’를 선택한다”고 답했다.
두 와인에 공통으로 붙은 ‘카세 베체’는 제품명이 아닌 브리갈다라의 단독 소유 포도밭 이름이다. 브리갈다라는 이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와 아마로네를 각각 양조해 같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카세 베체는 해발 약 500m에 위치한다. 주변 포도밭이 통상 해발 100~350m에 자리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브리갈다라 창업 세대는 1990년대 초 기후변화를 예상하고 평지가 아닌 고지대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높은 고도 덕분에 포도가 천천히 익고 산도와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 카세 베체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향 경사면에 자리한다. 포도밭을 확대하기 어려워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브리갈다라만 해당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싱글 빈야드다.
안토니오 테사리 오너는 “일반적인 아마로네나 바롤로는 여러 포도밭의 포도를 블렌딩하는 경우가 많지만, 브리갈다라는 각각의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별도의 와인을 만든다”며 “테루아의 개성을 그대로 와인의 한 병에 담아내고 있다”고 자부했다.
브리갈다라 소아베 ⓒ신세계L&B
◇ 저온 양조로 살린 소아베 ‘신선함’ 추구
브리갈다라는 발폴리첼라와 아마로네 생산자로 알려졌지만 소아베 화이트와인도 생산한다. 소아베는 소비뇽 블랑의 허브 향이나 강한 산미가 부담스럽고, 샤르도네의 묵직하고 버터리한 맛도 선호하지 않는 소비자에게 적합한 중간 지점의 와인이다.
브리갈다라는 2006년 소아베 포도밭을 확보한 뒤 베로나대학 교수와 협업해 저온 압착과 침용 방식을 연구했다. 전통적인 와인 맛을 유지하되 현대 기술을 활용해 품질을 높인 사례다.
소아베 양조에서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포도를 낮은 온도에서 신속하게 수확한 뒤 차가운 상태에서 압착한다. 포도의 향을 최대한 끌어내고 질감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후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저온 발효를 진행해 과실 향과 산도를 살린다.
이렇게 완성된 와인은 카모마일과 복숭아, 시트러스 계열의 아로마가 돋보인다. 균형 잡힌 산도가 와인의 중심을 잡아주며, 깔끔하면서도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이날 시음한 브리갈다라 와인 6종. (왼쪽부터) 소아베 2024,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까세 베체 2021, 발폴리첼라 리파소 수페리오레 2023, 아마로네 까볼로 2020, 아마로네 클라시코 2019, 아마로네 까세 베체 2018. 사진ⓒ신세계L&B
◇ “좋은 와인의 시작은 좋은 포도”…2세대 미래 전략 제시
이날 안토니오 테사리는 와이너리의 미래 전략도 제시했다. 1세대가 와이너리를 세울 당시에는 발폴리첼라와 아마로네 시장 자체가 작아 개척과 확장이 중요했다면, 2세대인 안토니오 테사리는 성숙한 시장에서 변화하는 소비자 취향에 맞춘 혁신이 새로운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포도밭과 브랜드 유산을 지키는 동시에 화이트와인과 마시기 쉬운 스타일의 와인을 강화하고, 아마로네의 드링커빌리티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저알코올·논알코올 와인 시장도 검토하고 있지만, 어떤 변화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의 품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끝으로 안토니오 테사리는 “나는 와인메이커이기 전에 농부”라며 “좋은 와인의 출발점은 좋은 포도이며, 앞으로도 최고의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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