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뛰어넘는, 심은경의 연기적 유연함 [D:PICK]
입력 2026.06.09 01:13
수정 2026.06.09 01:14
'반야 아재' 서은희 역으로 데뷔 후 첫 국내 연극 무대
배우 심은경은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최근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 보여준 서늘한 악역 연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지난 5월 ‘반야 아재’를 통해 데뷔 후 첫 국내 연극 무대 도전을 마쳤다. 극단적인 캐릭터의 차이와 매체의 전환을 이질감 없이 소화해 내는 행보는,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적 유연함을 보여준다.
연극 '반야 아재' 공연 사진 ⓒ국립극단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 심은경은 부동산 재개발을 주도하는 리얼캐피탈의 실무자 요나를 연기했다. 데뷔 후 첫 빌런 도전이었던 이 작품에서 심은경은 목적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냉혹함과 광기 어린 액션을 선보이며, 날카롭게 에너지를 분출하는 매체 연기의 기술적 소화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반야 아재’에서의 연기는 완전히 다른 결을 보여줬다. 안톤 체호프의 고전 ‘바냐 아저씨’를 한국적 정서로 번안한 이 무대에서 심은경은 삶의 무력감 속에서도 묵묵히 일상을 버텨내는 인물인 서은희(원작의 소냐)를 연기했다.
연극 무대에서 심은경은 앞선 드라마의 자극적인 잔상을 지우고, 절제된 발성과 호흡으로 인물의 깊은 내면과 정적을 표현했다. 스크린을 넘어 무대 위로 연기 반경을 넓히면서 대사 한 마디, 눈빛 하나에도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켰다.
연극 '반야 아재' 공연 사진 ⓒ국립극단
이러한 급격한 연기 변주가 낯설지 않은 건, 심은경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 때문이다. 아역 시절 드라마 ‘황진이’ ‘태왕사신기’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후, 2011년 영화 ‘써니’와 2014년 ‘수상한 그녀’를 통해 독보적인 타이틀롤 소화력을 증명하며 흥행 배우 반열에 올랐다. 당시 그는 극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특유의 코미디 감각과 높은 몰입도로 대중성을 확보했다. 조연으로 참여한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서는 짧은 등장만으로 극의 밀도를 높이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에서의 안정적인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2017년 일본 진출을 선택한 행보 역시 그의 유연성을 뒷받침한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정밀한 내면 연기로 일본 영화 ‘신문기자’(2019)의 주인공 요시오카 에리카 역을 소화했으며, 이 작품으로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인 배우 최초이자 최연소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코미디 중심의 상업 영화부터 해외 독립영화, 그리고 최근의 냉혹한 빌런과 정적인 고전 연극에 이르기까지 심은경의 연기는 매 시기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장르와 형식의 문법을 흡수하고 변주하는 심은경의 연기적 유연함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또 다른 얼굴을 기대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