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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던지고, 박정원 치고’ 기업 오너들은 왜 야구를 사랑할까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6.08 10:23
수정 2026.06.08 10:23

젠슨황 CEO, 두산 박정원 회장과 잠실구장서 시구

삼성, LG, 한화 등 대기업 회장들도 남다른 야구 사랑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 두산 그룹 박정원 회장. ⓒ 연합뉴스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KBO리그 마운드에 오르면서 기업인들의 야구 사랑 또한 함께 주목 받고 있다.


젠슨 황 CEO는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맞대결에 앞서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라, 함께 시타자로 나선 두산 그룹 박정원 회장을 향해 공을 던졌다. 시구 행사가 끝난 뒤 젠슨 황 CEO와 박정원 회장은 서로 부둥켜안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실 기업인들의 야구 사랑은 야구팬들 입장에서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다. 실제로 시타자로 나선 두산 그룹 박정원 회장의 야구 사랑은 야구계에서도 첫 손에 꼽힐 정도다. 박정원 회장을 비롯해 두산의 선대 회장들 대부분이 ‘야구광’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는 두산 베어스가 끈끈한 ‘허슬두’ 정신을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게임 업계의 거물인 NC 다이노스의 김택진 구단주도 빼놓을 수 없다. 김택진 구단주는 창원NC파크가 개장한 지난 2019시즌 개막전에 직접 시포자로 나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김택진 구단주는 기업가로 성공한 뒤 꿈에 그리던 야구단 창단을 현실로 만든 인물이다.


신세계 그룹 정용진 회장은 2022년 개막 직전, 팬들과 소통하며 “우리 팀이 10연승을 달성하면 시구자로 나서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건 바 있다. 랜더스는 보란 듯이 개막 이후 폭발적인 연승 가도를 달렸고, 정 회장은 약속대로 인천 SSG랜더스필드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던졌다.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SSG 랜더스는 그해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2015년 한국시리즈 3차전 관람을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던 이재용 회장(왼쪽부터)-홍라희 여사-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 뉴시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최근 글로벌 현장 경영 행보로 인해 야구장 방문이 뜸해졌으나, 과거 삼성이 왕조 시절을 구가할 당시 수차례 수행원 없이 관중석에 나타나 맥주를 마시며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응원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이재용 회장뿐 아니라 이건희 선대 회장, 모친인 홍라희 여사도 야구 사랑이 대단한 인물들이다.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의 뚝심 있는 야구 사랑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수시로 찾아 ‘직관 응원’을 펼치며 선수단의 기를 살렸고, 결국 한화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두산 못지 않게 야구 사랑으로 유명한 LG 그룹 역시 대를 이어 야구단의 영광과 암흑기 모두를 오너가 지켜봤다. 특히 지난 2023년 오랜 세월 동안 묵혀두었던 우승 롤렉스 시계와 아와모리 소주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구광모 회장은 유광 점퍼를 입고 잠실구장 마운드 위에서 팬들과 함께 감격했다.


이외에도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KIA 타이거즈, 거인 구단의 부활을 위해 사재 출연과 인프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롯데 그룹 신동빈 회장까지 KBO리그의 구단주들의 야구 사랑은 남다르다.


NC 다이노스의 김택진 구단주. ⓒ NC 다이노스

사실 자본의 논리로만 따지면 아직까지 적자에 허덕이는 프로야구단 운영은 밑지는 장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대기업 총수들은 본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팬들과 한 호흡을 한다. 심지어 야구 감독들을 기업 본사로 불러 임원 및 임직원을 대상으로 리더십 강연을 듣게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렇다면 기업 오너들이 유독 야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는 기업처럼 철저하게 고도화된 분업화가 이뤄진 '조직 스포츠'다. 축구나 농구처럼 공을 따라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종목과 달리 야구는 정적인 상태에서 각자의 명확한 포지션과 임무가 부여된 상태로 플레이가 시작된다.


마운드 위의 투수, 홈을 지키는 포수, 내야를 방어하는 내야수와 넓은 외야를 책임지는 외야수, 그리고 공격에 나서는 타자까지 각자 맡은 역할과 책임에 따라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팀으로 결합 되어 있다. 기업 역시 각 포지션에 따라 움직이며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 오너는 분업화된 개별 요소들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시너지를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야구 감독과 닮아있다.


한화 김승연 회장. ⓒ 한화 이글스

야구는 ‘숫자 놀음’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플레이를 계량화할 수 있는 스포츠다. 타자의 타율은 소수점 세 자릿수로 환산되고 투수의 평균자책점(ERA)과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심지어 최근에는 특정 선수가 팀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까지 나올 정도다.


이러한 철저한 계량화와 성과 평가는 분기별 매출, 영업이익, 시장 점유율 등 숫자로 실적을 나타내는 기업 경영과 무서우리만치 닮아있다. 또한 데이터에 기반해 투자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인재를 배치하는 '데이터 경영'의 프로세스는, 야구의 '세이버메트릭스'와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야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쉼 없이 달린다. 감독과 선수들은 봄바람이 부는 4월 초부터 날씨가 차가워지는 10월 말까지 매일 공을 던지고 타석에 서야 한다. 한 시즌에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는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이자 치열한 전투인 기업 경영의 타임라인과 궤를 같이한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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