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가족…'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의 확장된 시선 [D:영화 뷰]
입력 2026.05.14 14:01
수정 2026.05.14 14:02
AI 시대에 돌아온 고레에다
79회 칸 영화제 경쟁 진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오랫동안 가족의 형태를 다시 묻는 작업에 가까웠다. 그가 보여준 가족은 언제나 사회가 규정한 틀과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혈연보다 함께 보낸 시간이 더 깊은 유대가 되기도 했고,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관계 안에서 더 강한 돌봄과 애정이 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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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사회가 쉽게 이름 붙이지 못하는 관계들을 통해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방식, 그리고 사랑이 유지되는 구조를 들여다봐 왔다.
그런 점에서 신작 상자 속의 양은 그의 문제 의식이 한 단계 더 확장된 작품처럼 읽힌다. 이번 영화는 죽은 아이를 대신해 한 가정에 들어온 7세 설정의 휴머노이드를 중심에 둔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족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SF 장르 특유의 기술적 상상력이나 미래 사회의 위협에 집중하기보다,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감정에 더 깊이 접근한다.
이는 그가 이전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탐구해온 주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어느 가족'에서는 법과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도 진짜 가족 같은 온기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혈연과 양육 사이에서 부모라는 존재가 어떻게 완성되는 지를 질문했다. '괴물'에서는 어른들의 편견과 사회적 시선 속에서 쉽게 상처 입는 아이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타인을 규정하려는 사회의 폭력성을 응시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시선은 늘 사회의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존재들에게 향해 있었다.
'상자 속의 양'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죽은 아이를 대신해 들어온 휴머노이드라는 설정은 단지 미래적인 상상이 아니라, 상실과 대체, 돌봄과 소속이라는 오래된 감정을 더욱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장치에 가깝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가족이란 결국 무엇으로 완성되는 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면서 휴머노이드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외로움과 죄책감, 상실 이후 남겨지는 공허함을 비추고,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지를 탐색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언제든 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휴머노이드의 설정은 고레에다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해온 주변부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대개 사회가 외면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다루는 동시에, 조건에 따라 관계를 허락하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비추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목인 '상자 속의 양' 역시 의미심장하다. 양은 오래전부터 순종과 희생,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소비돼왔고, 상자는 특정 존재를 분류하고 가두는 사회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결국 영화는 인간 사회가 비인간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는지, 그리고 사랑조차 역할과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를 질문할 가능성이 크다. 휴머노이드가 죽은 아이를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역시, 결국 남겨진 인간들이 상실을 어떻게 견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칸 영화제가 이 작품을 다시 경쟁 부문으로 초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칸은 최근 몇 년간 기술 변화와 인간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에 꾸준히 반응해왔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를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가장 사적인 감정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연출자다. 그는 미래 사회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한 식탁, 한 집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그것이 세계 영화계가 여전히 그의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왜 여전히 동시대 가장 중요한 감독 가운데 한 명인지를 다시 보여주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소재를 끌어오지만, 끝내 놓지 않는 것은 사회 주변부에 놓인 존재들을 향한 시선이다.
혈연 밖 가족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로, 그리고 이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로까지 확장된 그의 질문은 결국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하나의 화두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