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삼성만의 것 아냐" 같은 말 속 정반대 셈법 드러낸 정부
입력 2026.05.14 06:00
수정 2026.05.14 06:00
산업장관 "미래 투자·국가 경쟁력" vs 노동장관 "초과이익 재분배"
재정장관 "파업 절대 있어선 안돼" vs 정책실장 "국민배당금" 제안
ⓒ데일리안 AI 이미지.
삼성전자 총파업 논란을 둘러싸고 정부 인사들의 발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삼성전자 이익은 회사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해법은 정반대로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국가 경쟁력과 미래 투자를 위해 파업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AI 초과이익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 반도체 시대 들어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정부 시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삼성 총파업 사태와 관련해 가장 먼저 강한 메시지를 낸 인물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백브리핑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주무 부처 장관 입장에서 '파업'이라는 사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의 결실에는 수많은 인프라와 협력기업, 40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이 연결돼 있다"며 "현재 발생한 이익을 회사 내부 구성원들끼리만 나눠도 되는 문제인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 장관 논리의 핵심은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성격이다. 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경쟁이 국가 경쟁력 자체와 직결된 만큼 삼성전자 이익 역시 미래 투자와 공급망 경쟁력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그는 인텔과 일본 반도체 산업 몰락 사례까지 언급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반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 전제에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놨다. 김 장관은 13일 유튜브 인터뷰에서 "85%의 이득이 자본으로만 가는 것에 대해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며 "천문학적 사내유보금 문제 역시 노동조합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가 만들어내는 반도체는 일종의 공공재가 됐다"며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것인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까지 언급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장관의 발언이 모두 "삼성전자 이익은 내부 구성원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산업부는 이를 미래 투자와 산업 경쟁력 논리로 연결했고, 노동부는 사회적 재분배와 이익 공유 논리로 확장했다.
대통령실과 경제라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노동절(근로자의 날) 연설에서 "일부 조직 노동자가 자기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를 하면 국민들에게 지탄받게 된다"고 언급했다. 재계에서는 사실상 삼성전자 노조를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했다.
반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AI 인프라 기업의 초과이익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 일부를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해야 한다"며 이른바 '국민배당금' 구상을 밝혔다. 당시 코스피가 장중 급락하자 청와대는 '개인 의견'이라고 진화에 나섰고, 13일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SNS를 통해 "세수와 관련한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시장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이날 "삼성전자 파업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공개 경고했다. 다만 청와대는 긴급조정권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다"며 즉각적인 강제 개입에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업계는 이처럼 기업을 대하는 정부의 인식을 두고,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양상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가 단순 수출 대기업으로 인식됐다면 지금은 AI 반도체와 공급망, 증시, 국민연금, 경제안보까지 연결된 '국가 시스템 기업'처럼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재계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와 흐름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AI 수혜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지만 그 이전 수년간 대규모 적자와 선행 투자를 감수해왔다는 점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제 삼성전자를 단순 민간기업이 아니라 사실상 국가 인프라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진 것 같다"며 "문제는 그렇게 보기 시작하는 순간 기업 이익과 투자, 배분을 둘러싼 요구 역시 계속 커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