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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상처를 스크린으로…‘내 이름은’·‘란12.3’ 의미 있는 흥행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14 08:27
수정 2026.05.14 08:28

'내 이름은', 우디네 극동영화제 관객상 수상

2026년 5월 극장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슈퍼 마리오 갤럭시'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흥행을 이끄는 가운데,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동시대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 영화들이 의미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각각 20만과 23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 중인 영화 '내 이름은'과 다큐멘터리 '란12.3'은 대형 상업영화 중심으로 재편된 최근 극장가에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충분히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두 작품은 최근 극장가에서 보기 드문 관객 주도 흥행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마케팅이나 스타 중심 프로모션보다 작품이 가진 문제의식과 관객들의 자발적 참여가 흥행의 핵심 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국가 폭력 속에서 이름과 삶을 빼앗긴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상처를 복원한다.


정지영 감독은 그간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소년들'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균열과 권력의 폭력성을 집요하게 응시해왔다. 이번 작품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다만 거대한 정치 담론보다 한 인간의 삶과 기억에 집중하며 보다 현재적인 감정으로 비극을 끌어당긴다.


흥행 방식 역시 이례적이다. 영화는 약 1만 명에 달하는 텀블벅 후원자들의 참여로 초기 제작 동력을 확보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이어진 '430인 릴레이 상영회'가 입소문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의 단체 관람을 시작으로 박중훈 의 자비 상영, 고두심, 양윤호, 윤태호 등의 릴레이 상영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이름 없는 시민들의 참여였다. 용돈 200만 원을 기부한 고3 수험생, 사비로 140석 규모 극장을 통째로 대관한 시민 등 관객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흥행의 중심축이 됐다. 이는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해외 반응도 힘을 보탰다. '내 이름은'은 최근 우디네 극동영화제 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해외 관객들의 공감까지 이끌어냈다. 제주 4·3이라는 한국의 역사적 사건이 국경을 넘어 보편적 감정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전국 중·고등학교 단체 관람 문의도 이어지며 '살아 있는 역사 교육 콘텐츠'로서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란12.3'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고 있다. 영화는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주변에서 벌어진 긴박한 상황을 기록한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 역시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이 중요한 기반이 됐다. 기획에는 '뉴스공장'을 운영하는 김어준이 참여했고, 약 1만 5000명의 시민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을 후원했다. 사회적 사건을 함께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영화 제작 과정부터 반영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명세 감독이 이를 전통적인 시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M' 등을 통해 독창적 미장센과 감각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사건의 정치적 해석보다 당시 현장의 공기와 감각 자체를 스크린에 담는 데 집중했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군중의 함성, 압박감 있는 사운드는 관객들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날 밤을 함께 통과하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내 이름은'과 '란12.3'의 흥행은 단순한 독립·예술영화의 선전을 넘어선다. 두 작품은 영화가 여전히 시대를 기록하고, 사회적 기억을 복원하며, 공동체의 감정을 연결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 시대 속에서도 관객들은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과 시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는 점을, 두 작품은 극장에서 증명하고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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