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태의 빨간맛] '가치'없는 문재인 정부 외교
입력 2021.02.03 07:00
수정 2021.02.05 00:30
日, 쿠데타 당일 미얀마 민주화 지지 성명 발표
韓 공식입장은 쿠데타 하루 지나서야 나와
韓 '늑장 성명' 발표한 날…美日 "미얀마 우려 공유"
동맹협력 강조 美, 韓日 중 어느 쪽에 귀 기울이겠나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 공격"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의'다. 바이든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인 건 미국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외교를 '거래'로 인식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면, 이토록 빠르게 성명을 내놓진 않았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는 두루뭉술하지 않다. 민주주의, 인권, 공정한 선거 등 민주국가라면 응당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유엔(UN)을 포함해 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 등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미얀마 쿠데타에 우려를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뒤늦게 민주주의를 꽃피운 한국은 미얀마의 '혼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군부 독재를 경험했고, 어렵게 민주화를 거머쥔 경험도 있다. 한데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 자부해온 현 집권세력은 쿠데타 발생 하루가 지나도록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쿠데타가 발생했던 지난 1일 외교부 당국자를 통해 "우려를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정부 공식 입장 발표 여부는 현재 검토 중"이라고 했었다. 국제사회가 앞다퉈 규탄 성명을 발표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대응이었다. '침묵'하던 문 정부는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서야 "지난 총선에서 표명된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국민들의 열망을 존중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미얀마 쿠데타와 관련해선 뒤늦게나마 성명을 발표했지만, 중국의 '인권 탄압'이 지속돼온 홍콩에 대해선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문 정부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조슈아 웡의 호소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웡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콕 집어 거론하며 한국과의 연대 의사를 거듭 피력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끝내 외면했다.
경제적 여파를 고려한, 국익에 기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박도 물론 가능하다. 하나 미얀마에 대한 '늑장 성명'과 홍콩에 대한 '침묵'이 민주적 가치를 '경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대외정책을 새롭게 수립하고 있는 미국이 민주적 가치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미얀마 쿠데타 발생 당일 "미얀마 민주화를 강력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놓은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많은 돈을 미얀마에 투자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미얀마투자위원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이후 일본의 대미얀마 투자액은 한국의 두 배를 웃돈다.
한국이 뒤늦게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날, 미 국무부는 미일 외교 차관보가 통화를 통해 미얀마와 관련한 △민주주의·법치 회복 △인권 존중 △억류된 모든 이들의 즉각적 석방 등의 우려를 공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포함한 아시아정책 추진에 있어 '한미일 협력'을 추구할 것이란 점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이 중시하는 민주적 가치에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냈다. 한국은 머뭇거렸다. 미국이 두 동맹 중 어느 쪽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될까.
홍콩·미얀마에 대한 '소극적 입장'은 문 정부 외교안보 브레인들의 '구상'과도 거리가 멀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확실해진 지난해 연말부터 "한국이 미중 신냉전 구도 속에서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미중 어느 한쪽에 '올인'하기 어려운 유럽·호주 등과 손잡고 운신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독일은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전 중국과 투자협정을 맺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한 다자주의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일견 '친중 행보'로 읽힐 수 있지만, 독일은 홍콩을 핍박하는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대해서도 발생 당일 "군부 행동이 미얀마의 민주적 변화를 향한 진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비판 성명을 내놨다.
독일의 '독자 노선'이 성공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처럼 제3의 길을 추구할 작정이라면 포기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가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문정인 특보조차도 최근 "미국이 홍콩 민주주의와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해 강하게 나올 것"이라며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줘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가를 상징하는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엉거주춤 굼뜬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중국이 더 괴롭힐 여지만 주는 것이다. 미국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데 문 정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