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만든 노래, 누구의 것인가…저작권 기준 '격론' [AI와 K팝, 공존의 조건②]
입력 2026.08.16 07:36
수정 2026.08.16 07:36
독일 법원, 수노 저작권 침해 판단…AI 학습에도 '창작자 권리' 쟁점
음저협 AI 음악 등록 기준 시행하자 정치권 제동…사회적 합의·입법은 과제로
지난 7월 31일 독일 뮌헨 지방법원은 생성형 음악 AI 플랫폼 수노(Suno)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음악을 학습에 활용한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AI 음악 생성 서비스 가운데 하나인 수노를 상대로 내려진 첫 대형 사법 판단이다. 법원은 수노에 침해 행위 중단과 불법으로 얻은 수익 내역 공개, 향후 산정될 손해배상금 지급 등을 명령했다. 판결은 항소가 가능한 1심 판단이다.
GEMA·SUNO 로고ⓒ각 홈페이지
이번 판결은 생성형 AI가 학습한 음악은 누구의 것인지, AI가 만든 음악의 권리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창작자의 허락 없이 축적한 데이터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등 AI 시대 음악 산업이 풀어야 할 핵심 쟁점을 법원이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노는 2023년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AI 음악 생성 스타트업이다. 이용자가 장르, 분위기, 가사 주제 같은 텍스트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멜로디·반주·보컬까지 갖춘 완성곡을 몇 분 안에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작곡·연주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워왔다.
올해 들어 유료 구독자 200만 명을 넘겼고 연간 반복 매출(ARR)은 3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기업가치도 가파르게 뛰었다. 지난해 11월 투자 유치 당시 24억5000만 달러였던 기업가치는 올해 54억 달러까지 높아졌다.
다만 이 성장의 이면에는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논란이 꾸준히 따라붙었다.
독일음악저작권협회 GEMA가 수노를 상대로 소송을 낸 건 2025년 1월이다. GEMA는 수노가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이용하면서 작사가·작곡가·출판사에 이용 허락을 구하거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 제기가 나온 배경에는 AI 생성 음악이 스트리밍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 있다. AI로 만든 곡이 음원 플랫폼에서 인기를 끄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그 학습 데이터가 된 원곡 작곡가·아티스트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져왔다.
GEMA가 생성형 AI 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GEMA는 수노에 앞서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1월 같은 뮌헨 지방법원에서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오픈AI가 챗GPT의 학습과 운영 과정에서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가사를 이용하면서 필요한 권리를 확보하지 않았고, 시스템에 저장된 원문이 프롬프트에 따라 다시 출력된 점 등을 저작권 침해로 판단했다. 수노 사건은 텍스트에 이어 음악 자체의 AI 학습과 생성 과정으로 쟁점이 확장됐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수노는 법정에서 세 갈래로 방어했다. 첫째, 학습이 미국에서 이뤄졌으니 독일 법원이 이 사안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가질 수 없다고 맞섰다. 둘째, 모델이 원곡 파일을 그대로 저장한 게 아니라 음악적 패턴을 학습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학습 방식은 미국 저작권법의 공정이용(Fair Use)과 유럽연합의 텍스트 및 데이터마이닝(TDM) 예외 조항 범위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GEMA가 제출한 증거 역시 이번 판결을 뒷받침했다. 프롬프트를 입력했을 때 수노가 생성해 낸 트랙이 알파빌의 '포에버 영(Forever Young)', 루 베가의 '맘보 넘버 파이브(Mambo No. 5)', 보니 엠의 '대디 쿨(Daddy Cool)' 등 유명곡들과 멜로디, 화성, 리듬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법원은 수노에 무단 복제 중단, 침해로 얻은 수익 공개, 손해배상 지급 등을 명령했다. 수노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포함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건 소송이 곧 협상 카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GEMA는 AI 기술 자체를 막기보다 저작물 이용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AI 시스템이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학습하고 활용하려면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창작자에게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수노와 마찬가지로 텍스트 프롬프트를 통해 음악을 생성하는 유디오는 지난해 유니버설뮤직그룹과 저작권 침해 소송을 합의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수노 역시 워너뮤직그룹이 제기했던 소송을 합의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미국에서도 AI 창작물의 권리와 학습 데이터 이용을 둘러싼 법적 기준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다만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음반사와 AI 기업이 소송 과정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며 산업계가 먼저 타협점을 찾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저작권 등록 단계에서는 원칙이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저작권청은 AI가 단독으로 만든 결과물에는 인간 저작자가 없다는 이유로 저작권 등록을 인정하지 않아 왔다. 인간이 AI를 활용해 창작한 경우에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는 부분에 한해 보호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원칙은 사법부에서도 재확인됐다. 2025년 3월 연방항소법원은 AI가 단독으로 생성한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인간 저작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올해 3월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의 심리를 거부하면서 하급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등록 문제와 별개로 'AI가 학습에 저작물을 쓴 행위 자체가 정당한가'를 다투는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 소속 주요 음반사들은 2024년 6월 수노와 유디오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일부 기업은 소송 중 합의와 라이선스 계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수노를 둘러싼 미국 내 저작권 분쟁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독일과 미국의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쟁점은 비슷한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기존 창작물을 AI 학습과 생성에 활용할 때 누구에게 허락을 받고 어떤 대가를 지급할 것인지다. 독일에서는 법원 판단을 통해 권리 관계를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일부 음반사들이 최종 판결에 앞서 AI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국내도 AI 음악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해외처럼 법원 판결이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기준이 형성되는 단계는 아니다. 오히려 업계가 먼저 기준을 내놓자 정치권에서 제동을 걸면서,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AI 음악의 저작권 기준을 정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 유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는 지난달 28일 이사회에서 '음악저작물 신고·등록에 관한 규정' 관련 규정 개정을 의결하고 8월 3일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다고 4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AI를 활용했더라도 인간 창작자가 창작 과정에서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AI 도구를 얼마나,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증빙해 신고·등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음저협은 법적·제도적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지만 음악 창작 현장에서 AI 활용이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이를 관리 체계 안으로 수용할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AI 활용 여부와 범위를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행 일주일 만에 정치권에서 문제 제기가 나왔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I 음악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입법적 결론도 내려진 바 없다"며 "법도, 제도도, 사회적 합의도 마련되지 않은 사안을 특정 단체가 자체 규정을 통해 사실상 먼저 정하고, 그 방향을 전제로 국회의 논의가 이어지는 잘못된 선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어디까지 저작물로 인정할 것인지,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등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명확한 사회적·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역시 AI 음악의 저작물성이나 권리 인정 범위에 대해 어떠한 제도적 결론도 내린 바 없다"고 지적했다.
당초 이날 예정됐던 AI 음악 관련 정책토론회도 취소됐다. 김 의원 주최, 음저협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었지만 음저협이 토론회에 앞서 AI 활용 음악의 신고·등록 기준을 시행하면서, 토론회 개최 자체가 해당 방침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측의 입장은 AI 활용 음악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보다 그 기준을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정할 것이냐에서 갈린다. 음저협은 법과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이미 현장에서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는 반면, 김 의원은 저작물 인정 범위와 저작권료 배분처럼 권리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은 사회적 논의와 입법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음저협에 AI 활용 음악을 신고·등록한다고 해서 곧바로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협회의 신고·등록은 신탁관리와 저작권료 분배 등을 위한 관리 체계인 만큼, AI 활용 결과물의 법적 저작물성에 대한 판단과는 구분된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AI가 창작 과정에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AI를 활용했다고 창작자가 직접 밝히지 않는다면 완성된 음악만으로 사용 여부와 개입 정도를 판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감사원이 AI 활용 여부 확인 절차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음저협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AI 활용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술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획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주요 기획사들은 AI 활용에 대해 공개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다만 저작권 분쟁 가능성을 고려해 작가 계약 과정에서 AI 사용 여부를 확인하거나, AI를 활용했다면 사전에 고지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는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AI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을 관리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제도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사이 교육 현장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이 나타나고 있다. AI를 창작 도구로 받아들일 것인지,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제한할 것인지를 두고 교육기관마다 기준이 엇갈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원대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다.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는 올해 입시 요강에서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작곡 및 창작물 제출을 전면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또 AI 음악 저작권 보호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입시 단계부터 생성형 AI 작곡 여부와 표절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 대학 가운데 입시 과정에서 AI 활용 여부를 공식 검증 대상으로 삼은 첫 사례다.
반면 서울예술대학교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서울예대 전자음악전공은 생성형 AI 음악 플랫폼 수노와 협업해 학생들이 제작한 프로젝트 앨범 'SeoulArts x Suno V1'을 지난 7월 정식 발매했다. 정규 수업에서 AI를 활용해 완성한 18곡을 국내외 음원 플랫폼에 공개했고, AI를 창작 도구 가운데 하나로 활용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의 소송과 국내의 논쟁이 향하는 질문은 결국 두 갈래다. AI 학습에 기존 창작물을 이용할 때 원저작자에게 어떤 권리와 보상을 보장할 것인지, AI를 활용해 만든 결과물 가운데 어디까지를 인간의 창작으로 인정할 것인지다.
특히 국내에서는 법과 사회적 합의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이미 AI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업계가 먼저 관리 기준을 만들 것인지라는 문제가 더해졌다. 음저협의 AI 활용 음악 신고·등록 기준과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발은 제도와 현장 사이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
AI 음악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이분법적인 결론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AI 학습에 사용된 기존 음악에는 어떤 대가를 지급할 것인지, AI가 개입한 정도를 어떻게 확인하고 공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독일 법원의 판결에 이어 국내에서도 AI 음악을 둘러싼 기준 마련이 현실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기술은 이미 제도보다 앞서가고 있다. 이제 그 간극을 어떤 규칙으로 메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