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스를 잃어버렸다', 사소한 의심에 갇힌 하루 [쇼트시네마(168)]
입력 2026.08.16 14:34
수정 2026.08.16 14:34
백종현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아이코스를 잃어버렸다' 스틸컷ⓒ
단편영화 촬영장에 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지훈(백종현 분)은 스타렉스로 배우와 스태프들을 실어 나르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차 안에 두고 내린 아이코스가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다. 지훈은 자신이 아이코스를 놓아둔 자리에 여배우가 앉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물건의 행방을 찾기 위한 의심에 불과했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 여배우에게 아이코스를 본 적 있는지 물어보려다 자신이 건넨 핫도그를 그가 먹지 않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준 초콜릿을 자신에게만 주지 않은 것도 마음에 걸린다. 아이코스와 아무 상관없는 일까지 하나둘 눈에 밟히면서 지훈의 의심에는 점점 감정이 섞인다.
잃어버린 물건의 가격은 9만7600원. 공교롭게도 이날 일당 10만 원에서 세금을 떼고 지훈이 받게 될 돈 역시 9만 7600원이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지훈은 여배우 주변을 맴돈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제안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자는 제안도 거절당한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던 여배우가 차에서 내린 뒤 아이코스를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마침내 현장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다른 스태프의 것이었다. 머쓱해진 지훈은 아이코스 담배 케이스를 던지고 촬영장을 떠난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지훈에게 때마침 아이코스 광고 문자가 날아온다. 짜증스럽게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는 그의 곁에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과 똑같은 아이코스를 든 사람이 서 있다. 그것이 지훈의 물건인지 아닌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는 아이코스 하나를 잃어버린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는 단순한 구조를 취한다.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사소한 분실이지만, 지훈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한 문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아이코스를 누가 가져갔는지 추적하는 미스터리보다, 사람이 한번 품은 의심을 어떻게 스스로 키워가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는 점이다.
의심에는 감정이 붙고, 감정은 다시 판단의 근거가 된다. 처음에는 아이코스가 사라진 자리에 여배우가 앉았다는 정황뿐이었다. 그러나 지훈은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게 되면서 이전이라면 흘려보냈을 행동까지 의미 있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보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과 물건을 가져갔을 것이라는 판단 사이의 경계도 흐려진다.
이 과정은 꽤 우습게 그려지지만 지훈만의 이상한 행동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를 한번 의심하거나 싫어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무관한 행동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할 이유를 찾아내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 영화는 이 보편적인 심리를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핫도그와 초콜릿, 전자담배 같은 하찮을 정도로 일상적인 소재에 옮겨놓으며 코미디를 만든다.
관객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영화는 지훈이 알고 있는 만큼만 정보를 흘리며 그의 시선에 관객을 붙여놓는다. 의심이 커질수록 '혹시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훈의 추측이 맞았다고 믿게 한다. 하지만 확신이 어긋나는 순간, 우스워지는 것은 지훈만이 아니다. 그를 따라 함께 누군가를 의심했던 관객의 판단까지 슬쩍 건드린다.
촬영장이라는 공간도 흥미롭게 작동한다. 지훈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태워 나르기 위해 하루 동안 고용된 사람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심부와 가까이에 있지만 정작 그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위치를 직접 설명하거나 계급 문제로 크게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겉도는 지훈의 모습과 사소한 거절들을 쌓으며 주변인으로서 느끼는 미묘한 소외감을 보여준다.
영화는 끝까지 아이코스의 행방을 밝히지 않는다. 누가 가져갔는지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는 범인을 찾는 소동극으로 닫히지만, 답을 남겨두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지훈이 보낸 하루로 옮겨간다.
작은 손해에 대한 억울함, 타인에게 거절당했을 때 상하는 자존심, 한번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의 행동을 모조리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심리까지.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감정의 작동 방식을 아이코스 하나를 통해 재치 있게 들여다본다. 지훈의 하루가 우습다가도 끝내 남의 일처럼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러닝타임 17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