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에스파 느낌으로 곡 뽑아달라고 했더니 벌어진 일 [AI와 K팝, 공존의 조건③]
입력 2026.08.17 07:45
수정 2026.08.17 07:45
10분도 안 돼 보컬·편곡까지 완성
직접 써보니 보인 AI 작곡의 가능성과 한계
음악을 한 곡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생성형 음악 AI 수노(Suno)는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하면 가사부터 멜로디, 편곡, 보컬까지 한 번에 만들어주는 'Simple' 모드를 지원한다. 마음만 먹으면 작사조차 하지 않고 노래 한 곡을 완성할 수 있지만, 작사는 맡기지 않았다. 무료 계정은 생성 횟수에 제한이 있어 월 8달러(약 1만1000원)짜리 유료 플랜을 결제했다.
ⓒ생성형 AI 이미지
곡의 출발점이 되는 가사는 직접 쓰고, 그 위에 AI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수노 홈페이지에 접속해 왼쪽 메뉴의 'Create'를 눌렀다. 화면 상단에는 Simple과 Advanced 모드가 있었는데, 직접 쓴 가사를 넣기 위해 Advanced를 선택했다.
가사는 가운데 입력창에 그대로 붙여 넣었다. 이어 아래 'Styles' 입력란에는 원하는 음악 스타일을 적었다. 처음에는 K-POP 버전의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간단하게 적었다. 이 정도만 적고 생성 버튼을 눌렀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보컬과 편곡까지 갖춘 데모 두 곡이 완성됐다.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악기가 깔리고 리듬이 붙은 노래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생성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무드는 있었지만 귀를 붙잡는 훅이 부족했다. 들을 만한 노래는 만들었지만, 다시 듣고 싶은 노래는 아니었다.
그래서 같은 가사를 현업 작곡가 도코에게도 전달했다. 장르도, 레퍼런스도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이 가사로 곡 하나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전부였다. 도코가 만들어 보내준 데모는 예상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다. 실제 걸그룹 앨범 수록곡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이번에는 도코가 만든 결과물을 참고해 다시 챗GPT를 켰다. 챗GPT에게 '에스파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기 위한 프롬프트를 알려줘'라고 말했더니 몇 초 만에 만들어줬다. '강렬한 여성 아이돌 댄스팝', '미래적인 신스', '묵직한 808 베이스', 'EDM 기반 코러스', '차가운 분위기' 같은 설명이 담긴 문장이었다. 이를 그대로 수노의 Styles 입력창에 붙여 넣고 다시 생성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몇 분 만에 새로운 곡이 완성됐다. 처음에 만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케이팝스러워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에스파 노래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다.
반면 도코의 데모는 벌스와 프리코러스, 코러스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쌓았고, 후렴이 나올 때마다 곡의 에너지가 한 단계씩 올라갔다. 같은 가사였지만 어디에서 힘을 빼고, 어디에서 터뜨릴지를 설계하는 방식이 달랐다.
도코는 "제가 개입하는 부분은 가사의 음절 수나 리듬감 정도다. 이 정도 음절이면 어떤 멜로디가 붙기 쉽고 어떤 장르가 어울릴지를 예측해 프롬프트를 설계한다"며 "실제 음악은 AI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주고 사람은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결과를 선택하는 역할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한 곡을 만들기 위해 며칠, 길게는 몇 주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몇 분 만에 수십 개의 데모가 나온다"며 "앞으로는 얼마나 잘 만드느냐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다듬느냐가 더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변화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도코는 "AI 에이전트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압도적인 생산성을 갖게 되지만, 그만큼 기존 창작자들의 설 자리는 더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이미 데모 제작 단계에서는 AI가 깊숙이 들어와 있고 앞으로는 작곡가와 편곡가, 세션 연주자, 일부 프로듀싱 업무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AI는 막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앞으로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낙관도, 막연한 거부감도 아니다. AI가 창작 생태계와 저작권, 음악인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AI를 통해 취미로 음악을 만들어보기에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AI를 몇 번 돌려보니 오히려 현업 작곡가들이 왜 "이제는 만드는 능력보다 선택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는지 이해됐다. AI가 낮춘 것은 음악을 만드는 기술의 문턱이었다. 그러나 어떤 결과물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완성도로 끌어올릴지를 판단하는 안목의 문턱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이번 체험은 그 차이를 느끼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