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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가 무슨 소용…中, 이미 유럽 부품망 장악했다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6.08.13 14:27
수정 2026.08.13 15:48

中기업, 유럽 車부품사 130곳 이상 인수·투자

中 부품 투자 1150억달러…유럽의 2.7배

현대모비스·한온시스템·HL만도 긴장…수주 경쟁 격화

위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유럽 공세가 완성차를 넘어 부품 공급망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장벽을 세우고 ‘메이드 인 EU’ 규정을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 부품업체들은 현지 기업 인수와 생산기지 구축을 통해 오히려 유럽 공급망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현대모비스와 한온시스템, HL만도 등 유럽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국내 부품사들도 중국 업체들과 현지 수주를 놓고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자동차 생산국에서 130곳이 넘는 자동차 부품업체를 인수하거나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에는 기술 확보를 위한 기업 인수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유럽 내 생산거점과 고객사, 현지 공급망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가 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 규모는 유럽 업체들을 이미 압도하고 있다. 유럽자동차부품협회(CLEPA)에 따르면 EU 자동차 부품업체의 공장·설비·기술 투자는 2021년 이후 연간 420억~430억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 자동차 부품업체의 투자는 57% 증가해 올해 약 11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업체의 2.7배 수준이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단순히 값싼 부품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CATL과 옌펑 등 중국 업체들은 합작투자와 현지 생산, 기업 인수를 통해 유럽 완성차 업체의 공급망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대신 현지에서 생산할 경우 물류비와 관세 부담을 낮추면서 유럽산 공급망에 손쉽게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제 유럽 부품업체들이 체감하는 압박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CLEPA와 맥킨지가 유럽 자동차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9%가 이미 중국산 부품과 경쟁하고 있다고 답했다. 불과 반년 사이 12%p 높아진 수치다. 앞으로 중국산 부품과의 경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 업체도 4곳 중 3곳에 달했다.


유럽 부품업체의 체력이 크게 약해진 건 유럽 자동차 산업의 중심인 독일 부품업계가 흔들리면서다. 독일 주요 자동차 부품사의 지난해 평균 이자비용은 영업이익의 102%까지 치솟았다. ZF와 콘티넨탈, 셰플러 등 주요 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사이 가격 경쟁력과 투자 여력을 앞세워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이에 EU도 뒤늦게 방어막을 높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추진하는 산업가속법에는 자동차 부품과 배터리 등 전략산업에서 공공조달과 정부 지원을 활용해 유럽산 제품 수요를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EU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24년 14.3%에서 2035년 2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중국을 비롯한 역외 기업의 현지투자에도 이전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배터리와 전기차 등 전략 분야에서 1억유로를 넘는 외국인 투자의 경우 EU 근로자 고용 비중을 최소 50%로 하고 현지 부품 조달과 지분구조, 기술·지식 이전, 연구개발 활동 등을 투자 조건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중국 기업이 유럽에 조립공장만 세운 뒤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사실상 ‘유럽산’으로 판매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취지다.


문제는 중국 기업들이 이미 유럽 공급망 안으로 상당 부분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EU가 중국에서 직접 들어오는 전기차와 부품을 규제로 막더라도 중국 기업이 소유하거나 투자한 유럽 현지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단순한 관세나 원산지 규정만으로 중국 자본과 공급망을 분리하기 어려워진다. EU가 최근 외국인투자 규제에 현지 고용뿐 아니라 기술 이전과 공급망 통합까지 포함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 확대는 국내 부품업체에도 직접적인 경쟁 압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주요 부품업체들은 현대차·기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유럽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수주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 시장에 중국 업체들 역시 빠르게 진입하고 있어서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헝가리 케치케메트 신규 생산거점을 가동하고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섀시모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튀르키예에서 현대차·기아에 부품을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유럽 현지 완성차 업체를 직접 고객으로 확보한 것이다. 스페인에서도 폭스바겐에 공급할 배터리시스템 공장의 본격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스페인 공장에는 2030년까지 약 1억2000만유로가 투입되며 연간 최대 36만개의 배터리시스템을 생산할 계획이다. 중국 업체들이 배터리와 전장 등 전동화 핵심부품을 앞세워 유럽 완성차 공급망을 공략하는 가운데 국내 업체 역시 현지 생산을 확대하며 맞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한온시스템도 독일과 프랑스,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등에 생산·연구개발 거점을 두고 유럽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전기차 열관리와 전동 컴프레서 등 전동화 핵심 부품이 주요 경쟁 분야다. HL만도 역시 독일과 폴란드 등을 중심으로 유럽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유럽 기업 인수를 통해 기존 고객사와 생산설비까지 한꺼번에 확보할 경우 국내 업체들은 기술과 품질뿐 아니라 가격과 현지조달 능력까지 동시에 경쟁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유럽 경쟁 상대는 보쉬, 콘티넨탈, ZF 등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부품업체가 주를 이뤘으나, 중국 기업이 배터리, 전장, 섀시, 열관리, 소프트웨어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경쟁구도 자체가 달라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향후 유럽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완성차 판매량을 넘어 부품 공급망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 업체들이 유럽 현지 생산과 기업 인수를 통해 공급망 내부로 들어오면 관세만으로 중국 자동차 산업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투자와 수익성 악화로 원가 절감 압박을 크게 받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부품업체를 무조건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부품업체들도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고 유럽 현지 생산과 공급망 구축,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싸움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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