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드러누웠어야”…이찬진 1년, 거침없는 화법의 명암
입력 2026.08.13 07:07
수정 2026.08.13 07:07
조직개편 위기 넘기며 리더십 확보
공식석상서 잇단 작심발언 화제
지배구조 개선안 일정 빗나가
2년차 ‘정책 신뢰’ 당면 과제
이번주 금요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잠정적으로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최종적으로 열지 않기로 한 것으로 파악됐다. ⓒ뉴시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오는 14일 취임 1년을 맞는다.
금융권 경험이 없는 법조인 출신이라는 우려 속에서 출발한 이 원장의 첫 1년은 금융감독체계 개편부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제재까지 굵직한 현안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찬진 원장 특유의 솔직한 화법은 존재감을 키우는 동시에 논란을 낳았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두고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말해 정치권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취임 2년 차에 접어든 이 원장에게 정책 메시지 관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모습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번주 금요일 이 원장의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결국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관련 발언이 지난달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화두에 오르면서 공개 질의에 나서는 데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직개편 위기 넘기고 소비자 보호 전면
이 원장의 리더십은 취임 초반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금감원의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떼어내 별도의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만드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후 같은 해 9월 금감원 직원 700여명이 금소원 분리 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 정도로 반발이 거셌다.
금소원 분리는 사실상 무산됐다. 당시 금감원 안팎에서는 이 원장이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조직개편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이 원장의 정치적 영향력이 조직을 지키는 데 작용했다는 인식이 내부에서 확산하면서 취임 초기 흔들렸던 리더십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금소원 분리 대신 이 원장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 내실을 다지는 쪽을 택했다.
지난해 말 기존 소비자보호 부서에 감독 총괄 기능을 부여한 ‘소비자보호총괄’ 부문을 원장 직속으로 신설해 상품 설계·판매 단계부터 소비자 위험을 살피도록 만들었다.
다만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제재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과징금 산정과 감경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감독행정의 일관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원장의 솔직한 발언은 때로 감독당국 수장으로서의 무게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금융 현안에 대한 질문에 정제된 답변을 내놓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감상까지 가감 없이 밝혔다.
“드러누웠어야”, “도박판 뽀찌”…솔직함과 정책 신뢰 사이
문제는 금융시장에 파급력이 큰 감독당국 수장의 개인적 견해가 시장에서는 향후 정책 방향을 가리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기자간담회가 대표적이다.
이 원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높은 회전율과 증권사 수수료 수익을 지적하면서 “부적절한 표현인데 도박판에 뽀찌(도박판에서 돈을 딴 사람이 일정 금액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관행) 받는 사람이 배불리는 모양새”라고 우려했다.
상품 도입 과정에 대해서는 “그때 드러누웠어야 했나 후회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드러누웠어야 했나 반성한다”고 거듭 말했다.
당시 상품이 급하게 준비됐고, 출시 전 위험성을 알았음에도 현실적으로 막기 어려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당국이 함께 추진한 정책에 문제가 불거지자 ‘나 역시 우려했다’고 말하며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을 줬단 비판을 받는다.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해당 발언은 재소환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안 관련 발언도 시장 예측 가능성을 흔들었다.
이 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회장들이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성해 ‘참호’를 구축한다고 비판한 이후 지배구조 개선을 강하게 주문해왔다.
지난 6월 간담회에서는 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후보군 숏리스트가 확정되기 전에 지배구조 개선안이 발표될 것이라며 “그 전에는 발표될 것으로 보시면 된다”고 구체적인 시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선안 발표는 현재까지 미뤄지고 있다.
최종 결정권자가 금융위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원장의 발언은 시장에선 사실상의 정책 지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자칫 금융당국의 메시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안에 대한 이 원장의 솔직한 화법은 감독당국의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만 취임 2년 차에는 ‘솔직한 이찬진’과 ‘금융감독원장 이찬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한 당면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은 시장과의 소통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시장에서는 정책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 일정이나 기관 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에서 실제 결정과 발언이 달라지는 일이 반복되면 결국 당국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보다 신중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