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대작 피했더니 9월에 6편 몰린 한국영화… ‘공멸’ 잔혹사 끊을까 [영화 뷰]
입력 2026.08.12 08:26
수정 2026.08.12 08:27
성수기 공식 깨진 극장가…돌아온 관객이 바꿀 9월 흥행전
9월 극장가에 한국영화 6편이 몰려온다. 팬데믹 이후 관객 감소로 기대작끼리 맞붙는 것을 피해왔던 것과는 달라진 흐름이다. 그동안 여러 작품이 같은 시기에 개봉했다가 관객이 분산돼 동반 부진하는 사례가 반복됐지만, 올해는 한국영화 시장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9월 대진표가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
'비광'·'암살자(들)'·'타짜: 벨제붑의 노래'·'가능한 사랑'·'인턴'·'부활남: 더레드' 포스터ⓒ플레이그램·하이브미디어코프·CJ ENM· 넷플릭스·워너브러더스코리아·롯데엔터테인먼트
9월의 포문은 이지원 감독의 '비광'이 연다. 2일 개봉하는 '비광'에 이어 김도영 감독의 '인턴'이 16일,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23일 관객과 만난다. 최국희 감독의 '타짜: 벨제붑의 노래'와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도 추석을 겨냥하고 있다. 백종열 감독의 '부활남: 더 레드'까지 9월 말 개봉이 예상되면서 한 달 내내 한국영화 신작이 이어지는 일정이 만들어졌다.
올여름과 비교하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여름 성수기 한국영화 가운데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한 텐트폴은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사실상 유일했다. 여기에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영화들이 굳이 대형 외화와 힘겨루기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여름의 강자들을 비켜간 작품들이 추석 연휴를 낀 9월을 새로운 승부처로 택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영화끼리 다시 맞붙게 된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대진은 배급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여러 기대작이 동시에 간판을 걸면 흥행 수요가 분산됐고,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 영화들에는 치명적이었다. 한 작품이 흥행하면 다른 작품도 함께 관객을 끌어모으던 성수기의 '낙수효과'보다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2023년 여름은 이를 보여준 시기였다. '밀수', '비공식작전',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잇따라 출격했지만 결과는 양분됐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반면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제작비를 극장 매출로 회수하는 데 실패했다.
추석이라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같은 해 명절 시장에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이 동시에 출사표를 냈다. 이 가운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가장 앞섰지만 세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관객이 줄어든 시장에서는 긴 연휴 자체가 흥행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배급사들의 달력도 달라졌다. 여름과 명절이면 주요 작품을 집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경쟁 강도가 낮은 시기를 찾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를 제외하면 뚜렷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관객을 빠르게 흡수했고,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1600만 관객을 달성했다.
5월 넷째 주 개봉한 '군체' 역시 시장을 이끌 만한 대형 경쟁작이 드문 시기를 선점하며 595만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이처럼 작품의 완성도와 화제성뿐 아니라 어떤 경쟁작과 맞붙느냐가 흥행 성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성수기에 개봉한다고 해서 반드시 흥행으로 이어진다는 기존의 공식도 점차 힘을 잃었다. 배급사들 역시 전통적인 성수기를 고집하기보다 작품별로 유리한 개봉 시점을 찾는 데 더욱 공을 들이게 됐다.
그런 점에서 올해 9월의 대진표는 최근 몇 년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작품이 다시 몰렸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받아낼 극장 시장의 체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점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6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극장 매출은 57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9% 증가했다. 관객은 5705만명으로 34.2% 늘었다.
회복 속도는 한국영화가 더 빠르다. 상반기 한국영화 매출은 37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1.7% 증가했고, 관객은 3737만명으로 74.9% 늘었다. 특히 한국영화 매출은 2017~2019년 상반기 평균인 3929억원의 94.2%까지 올라왔다. 적어도 매출 기준으로는 팬데믹 이전의 시장 규모를 상당 부분 되찾은 것이다.
다만 시장 전체의 회복이 개별 작품의 흥행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 수가 늘었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신작이 몰리면 작품당 확보할 수 있는 스크린과 관객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백만 관객을 모으고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수 있어, 시장의 온기가 배급사의 부담 완화로 즉각 연결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9월 라인업이 서로의 관객을 잠식하기보다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울 것이라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각 작품의 색깔과 개봉 시점이 비교적 명확히 갈리기 때문이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탄탄한 시리즈 팬덤을, '암살자(들)'은 실화 기반 역사 드라마라는 강점을 지닌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 역시 영화제 화제성과 작품성을 무기로 내세운다. 여기에 추석 전에 선제 개봉하는 '비광'과 '인턴', 연휴 이후까지 장기 흥행을 노리는 '부활남: 더 레드'까지 릴레이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관객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에 9월 극장가가 확인할 것은 단순히 어떤 작품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느냐만이 아니다. 특정 대작의 독주를 넘어 여러 신작이 고르게 관객을 확보하고, 상반기부터 시작된 회복세가 시장 전반의 체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러한 반등은 단순한 숫자의 회복을 넘어 한국영화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선택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신호다. 그런 점에서 6편의 신작이 맞붙는 이번 9월의 대진표는 개별 흥행 성적을 넘어, 부활의 기로에 선 한국 영화 시장의 자생력과 다양성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