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일러부터 에어컨까지…삼성 히트펌프, 제주서 해법 찾는다
입력 2026.08.11 11:16
수정 2026.08.11 11:17
정부 지원 EHS 보일러 실제 가정서 가동…난방·온수 전기화
미출시 'EHS 올인원'은 냉방까지 통합…공동주택 시장 겨냥
삼성전자 DA사업부 신문선 상무가 제주도에서 히트펌프 솔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제주에서 두 종류의 가정용 히트펌프를 앞세워 국내 난방 전기화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하나는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실제 가정에 보급하기 시작한 'EHS 히트펌프 보일러', 다른 하나는 냉방과 난방, 온수까지 한 시스템에 묶은 미출시 제품 'EHS 올인원'이다.
EHS 히트펌프 보일러가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를 대신해 바닥난방과 온수를 공급한다면, EHS 올인원은 여기에 에어컨 기능까지 합쳤다. 삼성전자는 정부 주도로 시작된 '보일러의 전기화'를 향후 주택 전체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의 전기화로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0일 제주 애월의 EHS 히트펌프 보일러 설치 가구와 제주시 도남동 EHS 올인원 실증주택을 차례로 찾았다.
제주 애월 지역 내 고객이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삼성전자
LPG 보일러 대신 히트펌프…정부 지원으로 열린 첫 시장
이날 찾은 제주 애월의 한 단독주택 뒤편에는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와 대형 축열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이 집의 바닥난방과 온수를 책임지던 LPG 보일러를 대신해 들어선 설비다. 이 집이 히트펌프로 보일러를 바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난방 전기화 보급사업이 있다.
정부는 난방 부문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보일러를 고효율 히트펌프로 전환하고 있다. 히트펌프는 연료를 태워 열을 만드는 대신 냉매를 통해 외부 공기가 가진 열을 끌어와 이용하는 원리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518만t을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관련 예산으로 144억원을 투입하고 가구당 설치비의 최대 70%를 지원한다.
집주인 박종연 고객은 "물론 전액을 자비로 부담해야했다면 설치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충분히 현재까지는 만족하고 있다"며 "LPG로 집을 따뜻하게 하려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바닥난방을 충분히 쓰지 못했는데 히트펌프 교체 후 올 겨울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애월 지역 내 단독 주택 뒷마당에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 설비가 설치된 모습.ⓒ임채현 기자
설비 전환은 단 이틀 만에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보일러에 사용하던 바닥난방 배관은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바닥을 다시 뜯어 배관을 시공할 필요도 없다. 현장에서 제품을 직접 다루는 방식도 일반 보일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7형 터치 디스플레이에서는 현재 운전 상태와 난방·급탕 설정, 에너지 사용량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싱스와 연동해 스마트폰에서도 제품 제어가 가능하다.
삼성 제품은 바닥난방에 주로 쓰이는 35도 출수 조건에서 계절성능계수(SCOP) 4.9를 기록했다. 소비전력 대비 약 5배에 가까운 난방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영하 15도에서도 최대 70도의 고온수를 공급할 수 있다. 실외기는 톱날형 팬 구조를 적용해 최소 35dB 수준의 저소음을 구현해, 실제로 현장에서 실외기 소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제주 도남동 지역 내 양창희 고객이 삼성전자 'EHS 올인원'을 사용하며 스마트싱스 연동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삼성전자
실외기 한 대에 에어컨 4대…냉난방·온수 '올인원'
애월에서 이동해 찾은 제주시 도남동 단독주택에는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EHS 올인원'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외기 한 대가 맡는 역할이었다. EHS 올인원에는 집 안의 에어컨 실내기 4대가 연결돼 있었고, 같은 제품이 바닥난방과 생활온수까지 공급하고 있었다. 기존처럼 에어컨 실외기와 난방용 히트펌프 실외기를 각각 둘 필요가 없는 구조다.
에어컨과 히트펌프가 기본적으로 같은 사이클을 사용하는 점을 활용했다. 냉매를 이용해 실내 열을 밖으로 내보내면 냉방, 외부 열을 안으로 가져오면 난방이 된다. 여기에 물과 냉매를 열교환시키면 바닥난방과 급탕까지 가능하다. 여름철 냉방 과정에서 버려지는 열도 재활용한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은 실내에서 빼낸 열인데, 올인원은 이를 외부로 버리는 대신 물을 데우는 데 활용한다.
제주시 도남동 단독주택에 '삼성 EHS 올인원 히트펌프' 가 설치된 현장. 여름철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실외기로 내뿜는 열을 일부 회수해 온수를 사용할 수 있다. ⓒ임채현 기자
냉방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생활온수 생산에 다시 쓰는 방식인데 사실상 추가적인 비용 지출없이 무료로 온수를 만들어 쓰는 셈이다. 실제로 현장 주방에서 온수를 틀자, 뜨겁게 데워진 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보통 온수를 쓰면 연료를 먹지 않느냐, 그렇지만 지금 에어컨을 틀어놓고 냉방을 하는 상태에서 실외기에서 나간 열을 회수해 만든 온수라 사실상 이 물은 공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이러한 열회수 기술은 호텔이나 대형 상업용 시설에서 사용돼왔다. 삼성전자는 이 시스템에서 가정에 필요한 기능만을 추려 소형화하고 주거환경에 맞게 최적화했다고 설명했다. EHS 올인원은 유럽에서는 이미 판매 중이다. 냉매로는 기존 R410A보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68% 낮은 R32를 적용했다. 최근 유럽의 폭염과 냉방 수요 증가에 따라 난방·급탕 뿐 아니라 냉방까지 통합 제공하는 올인원 타입의 히트펌프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제주 실증 등을 거쳐 한국 주거환경에 맞춘 제품을 연내 출시한다는 목표다.
제주시 도남동 단독주택 지하실에 '삼성 EHS 올인원 히트펌프' 설비가 설치된 모습 ⓒ임채현 기자
진짜 승부처는 아파트…공간·비용·전력망 넘어야
삼성이 냉방까지 하나로 묶은 올인원을 준비하는 데는 국내 주거환경이 크게 작용한다. 단독주택에서는 히트펌프용 실외기를 마당이나 외부에 추가할 수 있지만 아파트는 공간이 제한적이다. 이미 시스템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상황에서 난방·온수용 히트펌프 실외기를 또 설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하나의 실외기로 냉방과 난방·온수를 처리하는 올인원을 공동주택 적용을 위한 해법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제주에서 적용하는 축열 방식은 남는 전력으로 물을 미리 데워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설비와 물을 합치면 수백㎏에 달한다. 삼성전자 측은 현재 실증 설비가 약 400㎏ 수준이라며 공동주택에서는 하중과 공간을 고려해 대형 축열조 대신 상대적으로 작은 탱크를 활용하는 방식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성도 과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보조금 없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수준의 산업 기반에서는 보조금 없이 워킹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으로 시장을 키우고, 유럽과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면 제조사가 원가를 낮추고 정부 보조금도 점차 줄여가는 구조를 예상했다. 전력 인프라도 함께 풀어야 한다. 애월 가구는 히트펌프 사용을 위해 별도로 전력 용량을 늘렸다. 향후 공동주택으로 보급 범위가 확대되면 개별 제품 설치를 넘어 건물의 전력 인입 용량과 요금 체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제주 도남동 실증주택에서 여름 냉방부터 가을과 겨울 난방, 내년 봄까지 약 1년간 EHS 올인원을 운전하며 실제 에너지 효율과 사용 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실제 아파트와 유사한 환경을 갖춘 삼성물산 주거성능연구소에서도 기존 '보일러+시스템에어컨' 조합과 EHS 올인원의 성능을 비교하고 있다.
현재 정부 지원으로 열린 초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외에 LG전자, 경동나비엔 등 업체들도 가세한 상태다. 이로 인해 결국 본 승부처는 국내 주거시장의 중심인 공동주택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정부가 '보일러의 전기화'로 시장의 문을 열었다면, 향후 이를 냉방과 난방, 급탕을 한데 묶는 주거용 HVAC로 확장하고 자사만의 차별화된 성능의 제품으로 시장을 키우겠다는 목표다.
신문선 삼성전자 DA사업부 상무는 "제주는 국내 난방 전기화 정책이 가장 먼저 추진되는 지역인 만큼 히트펌프 기술과 제품 경쟁력을 실제 주거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테스트베드"라며 "앞으로 고효율 히트펌프 기술을 기반으로 냉방·난방·급탕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거용 HVAC 솔루션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