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스토리텔링 관광 산업 전략을 배워야
입력 2026.08.08 07:07
수정 2026.08.08 07:07
단순한 구경이 아닌, 경험토록 하는 스토리텔링이 핵심
브레이브하트·해리포터…역사·소설·영화의 이야기화 전략
‘K-컬처’ 단순 설명 아닌, 스토리 있는 체험 관광 강화해야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있는 충견 보비 동상의 코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만지고 있다. ⓒ최홍섭
최근 큰 맘먹고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 수도인 에든버러는 7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앞두고 전세계 관광객들로 북적거렸고 거칠면서 아름다운 대자연이 펼쳐지는 북쪽 하이랜드(Highland)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보았다.
에든버러 중심가 로열마일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충견(忠犬) 보비 동상이 있다. 1858년 주인이 세상을 떠나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 묘지에 묻히자 보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4년간 무덤 곁을 지키다가 1872년 주인 곁에 묻혔다. 일약 변함없는 충성심과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보비 동상이 세워지면서 전세계 관광객들이 줄 서서 찍는 인증샷 코스가 되었다. 동상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각설까지 더해져 지금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다. 필자도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눈치 껏 코를 만졌다.
거기에서 100m 옆에는 조앤 롤링이 무명 시절에 죽치고 앉아서 해리포터를 썼다는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최근 리뉴얼 공사를 마쳤는데 빨간색 전면이 마치 호그와트 마법학교 정문을 연상시킨다. 해리포터 마니아들은 꼭 들르는 성지가 되었다.
사실 인구 550만명인 스코틀랜드는 주력 산업이 많지 않다. 북해 석유·가스나 해상풍력 등이 있지만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대신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스카치위스키가 주력 수출 품목이고 '굴뚝없는 공장'이라는 관광산업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 2023년의 경우 9억6000만 파운드(약 1조8400억원)의 관광 수입을 올렸다. 관광산업은 23만9000여명을 고용하면서 나라 전체 고용의 9.1%를 차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관광산업의 비결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있었다. 요즘 관광의 트렌드는 "어디를 갈까?"보다 "어떤 이야기를 경험할까?"다. 사소한 소재도 놓치지 않고 이리 엮고 저리 볶아 매력적인 스토리를 끄집어 낸다. 가령 돌 하나에도 "14세기에 기사들이 마지막 저항을 했던 곳"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신화·문학·영화·인물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되 반드시 관광객이 '주인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역사 자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가령 에든버러성(城)에서는 야간 유령투어나 중세재판 체험 등의 행사를 열어 관광객이 다시 방문하고 싶도록 혼을 쏙 빼놓는다. 영국여왕의 별장인 홀리루드 궁전에서는 1587년 처형된 스코틀랜드 마지막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애잔한 스토리를 듣게 되고, 1746년 인버네스 부근에서 벌어진 컬로든 전투는 하이랜드 문화의 몰락으로 요즘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모으는 드라마 '아웃랜더'의 배경임을 연결시켜 설명한다.
괴물 네시가 나타난다는 네스호 기슭에 세워졌던 어쿼트성의 잔해를 관광객들이 거닐고 있다. 입장료만 16파운드에 이른다. ⓒ최홍섭
전설과 신화도 적극 활용한다.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를 무너트려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열게 한다. 스코틀랜드 포트윌리엄에서 A82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괴물 네시의 전설로 유명한 네스호가 나온다.
1933년 신문들이 목이 길다란 괴물 사진을 보도하면서부터 시작된 네시 열풍은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스코틀랜드 측에 안긴다. 관광객들이 네시라는 괴물의 존재를 믿어서가 아니라 세계적 화제가 된 스토리에 동참하려고 찾아가기 때문이다.
당국은 그런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수시로 네시 찾기 행사나 관련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2023년 8월에는 500여명의 탐사대가 적외선 카메라와 수중 음향 센서까지 동원하여 대대적 수색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현실과 전설의 묘한 오버랩을 경제적 효과로 연결시켰다.
멜 깁슨 주연에 13세기 민족영웅 윌리엄 월리스를 다룬 영화 '브레이브하트'를 찍은 스털링 일대, '007 스카이폴'을 촬영한 U자 대계곡인 글렌코 등은 연중 관광객이 들끓는다. 대부분 관광지는 시골임에도 적지 않은 주차요금, 수만원에 이르는 입장료, 사거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기념품 가게와 카페를 함께 운영한다.
포트윌리엄에서 서쪽으로 A830 도로를 20분쯤 달려가면 나오는 글렌피난은 해리포터 영화로 돈벼락을 맞았다. 영화에는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증기기관차가 반원의 아치형 고가철교(viaduct)를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에서 찍었다.
3년의 공사 끝에 1901년 개통된 이 고가철교는 30m 높이에 길이 380m를 자랑한다. 서양에서 흔히 보는 다리 같지만, 산 기슭에 자리잡고 멀리 호수를 내려다보는 포인트를 절묘하게 기획했다. 덕분에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했고 마침내 해리포터에서 대박을 맞았다.
고가철교의 맞은 편에는 해리포터 영화에서 호그와트성이 자리잡은 호수의 실제 배경인 샤이얼 호수가 있다. 6개 국어로 적힌 안내판에 '어서 오십시오'라고 적힌 한글이 은근히 반가웠다. 수천명의 관광객 중에서 중국인이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
해리포터 영화에 등장했던 글레피난 고가철교 위를 호그와트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가운데 멀리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배경으로 사용됐던 샤이얼호수가 보인다. ⓒ영국관광청
필자는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기 전에 오랜만에 경주를 찾아갔다. 수많은 거대 고분이 산적한 대릉원, 진귀한 보물을 발굴한 천마총, 과거 천문대였다는 첨성대, 야경이 아름답다는 '동궁과 월지' 등을 방문했다. 모두 잘 정비되어 있었고 보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장소에 대한 교과서적인 설명은 많았지만 스토리가 담긴 서사(敍事 ·Narrative)는 적어 보였다. 건립연도와 규모, 건축양식 등은 상세히 알려 준다. 하지만 왕들의 갈등이나 궁녀들의 삶을 주어로 만들어 들려주고 스토리로 부각시키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외국 관광객들은 그저 '큰 궁궐이나 대형 무덤을 보았다'는 정도로만 기억할 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다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영실, 허준 등 윌리엄 월리스 못지 않게 스토리까지 함께 갖춘 훌륭한 인물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따라가거나 스토리텔링으로 만든 관광 코스는 아직 제한적이다. 스코틀랜드였다면 아마 '이순신의 마지막 30일, 명량에서 노량까지'같은 프로그램을 당장 현장에 적용, 이순신 전적지들을 엮어 하나의 역사 투어로 상품화시켰을 것이다.
그렇다. 한국이 특별히 스코틀랜드에 비해 관광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조직화'에서 열세다. 최근에는 'K-컬처'와 관련된 관광 자원이 많이 생겼다.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K-콘텐츠를 직접 경험하려는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이를 K-드라마 촬영지, 지역 음식, 전통 문화, 역사적 배경을 하나의 서사로 묶는 방식이 시급하다.
스코틀랜드가 관광대국으로 통하는 비결은 바로 '관광객은 풍경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있는 이야기를 경험하러 온다'는 점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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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