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소리의 길, 2026년 다시 걷는 ‘서편제’ [D:헬로스테이지]
입력 2026.07.05 10:49
수정 2026.07.05 10:49
7월 1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어머니의 죽음과 유랑의 기억, 그리고 대중음악을 향한 갈망을 뒤로한 채 북을 잡아야 했던 한 남자의 회한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뮤지컬 ‘서편제’는 소리꾼 유봉과 그의 수양딸 송화, 의붓아들 동호의 굴곡진 삶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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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극은 인물들을 얽어매는 억압과 인연을 ‘줄’이라는 시각적 매개체로 구현한다. 동호를 묶어두었던 어머니의 끈부터 송화와 유봉이 서로를 지탱하며 걷는 줄, 그리고 송화의 실명을 초래하는 약 묻은 천에 이르기까지, 무대는 가족 간의 끊어지지 않는 애증과 인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핵심은 시대를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변화에 있다. 새 시대를 거부한 채 오직 소리만을 고집하다 도태되는 유봉, 새로운 음악을 찾아 떠났으나 결국 자신의 뿌리인 서편제 소리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호,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송화의 삼각 구도가 서사의 중심이다.
이 과정에서 ‘한(恨)을 심어 소리를 완성한다’며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유봉의 인위적인 가해 행위는 현대 관객의 변화한 윤리 의식과 시대 정서 속에서 서사적 당위성을 얻기 어렵다. 또한 2막 이후 무게중심이 송화의 예술적 성취보다 동호의 추적 과정과 대중음악과의 대립으로 치우치면서, 정작 주인공인 송화의 서사가 축소되는 구조적 불균형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출과 미장센은 동양의 여백의 미를 충실히 구현한다. 전통 한지를 겹겹이 덧붙인 순백의 장막이 교차하며 인물들의 동선을 만들고, 배경에는 400여 장의 한국화를 빛으로 투사한 수묵 영상이 흐른다. 무채색으로 일관하던 무대는 커튼콜에 이르러서야 색색의 꽃 조명으로 채워지며 배우들의 에너지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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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서사와 정체성을 지닌 ‘서편제’는 한국 창작 뮤지컬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지난 2022년 판권 문제와 팬데믹으로 인한 10주년 공연 무산 등이 겹치며 ‘마지막 시즌’을 공표하고 막을 내렸으나, 저작권 재계약 이슈를 극적으로 해결하며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무대는, 16년간 여섯 번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변화한 관객의 의식과 작품 고유의 전통적 정서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무대다.
특히 이번 시즌의 가장 큰 화두는 캐스팅의 변화다. 그동안 젊은 시절부터 노년기까지의 세월을 한 명의 배우가 온전히 감당해 왔던 것과 달리 젊은 송화와 노년 송화를 분리하는 캐스팅 방식을 도입했다. 한 명의 배우가 온전히 배역을 감당하면서 결국에 폭발하는 송화의 시간들은 이 작품의 상징적인 부분이지만, 배역의 높은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작품의 영속성을 고민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변화 자체는 필연적이었다. 작품과 16년을 함께 했던 이자람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송화 역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변화를 극에 녹여내는 설득 방식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노년 배역 분리라는 새로운 문법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특정 배우(스테이씨 시은)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면서 편의주의적 조정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캐스트에서 청년과 노년을 분리해 성장과 방황, 그리고 축적된 한과 소리의 계승이라는 주제를 거시적으로 다루었다면 이는 작품의 진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변화가 작품의 유기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못하면서, 이번 시즌의 캐스팅 논란은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 ‘서편제’가 앞으로 어떤 문법으로 생명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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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종착지인 송화와 동호의 재회 장면은 ‘심청가’ 중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으로 완성된다. 비극적 처지 속에서도 원망보다 삶을 의연하게 이어가는 두 예인의 호흡은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준다. 다시 돌아온 ‘서편제’는 여전한 음악적 감동을 증명했으나, 세대교체와 그를 통한 작품의 영속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환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선 씁쓸함을 남긴다. 공연은 7월 1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