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텍스트, 세 개의 무대”…‘같은 원작’에 중독된 연극계
입력 2026.07.04 12:50
수정 2026.07.04 12:51
'바냐' 대전에 이어 올해 '갈매기' 대전 예고
"서로 다른 작품 비교해 보는 재미...관객층 확대에 일조"
한국 연극계에서 동일한 고전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각기 다른 프로덕션의 작품들이 동시기에 상연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LG아트센터와 국립극단이 선보인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를 비롯해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원작으로 한 ‘바냐 삼촌’(LG아트센터)과 ‘반야 아재’(국립극단)의 동시기 상연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공연을 앞둔 체호프의 또 다른 대표작 ‘갈매기’로 이어진다.
'바냐삼촌'(왼쪽)과 '반야아재' 공연 사진 ⓒLG아트센터, 국립극단
동일 원작의 동시기 상연 경향은 국립극단과 LG아트센터라는 대표적인 두 대형 단체의 행보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앞서 무대에 올랐던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와 올해 공연된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바탕으로 한 ‘바냐 삼촌’ 및 ‘반야 아재’는 두 기관의 제작 역량과 기획이 맞부딪친 대표적인 사례다.
근대 리얼리즘 연극의 거장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통제당한 여성 헤다의 심리적 파멸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해 국립극단과 LG아트센터는 동일한 텍스트를 두고 서로 다른 연출적 시각과 배우들의 연기 양식을 선보이며 대형 극장 간의 해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러한 구도는 안톤 체호프의 고전 ‘바냐 아저씨’로 이어졌다. LG아트센터는 지난 5월 이서진·고아성 주연의 ‘바냐 삼촌’을 무대에 올리면서 원작의 쓸쓸한 정서와 인물 간의 관계를 리듬감 있게 살려냈고, 국립극단 역시 같은 시기 조성하·심은경 주연의 ‘반야 아재’를 선보이면서 원작의 19세기 러시아 시골 영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끌고 와 한국적 정서와 유머를 가미해 일상의 권태를 보다 친숙하게 풀어냈다.
안톤 체호프의 또 대표작 ‘갈매기’를 바탕으로 하는 무대도 연달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작품은 러시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자신이 제작한 연극이 실패해 우울증에 빠진 뜨레플레프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 어긋난 사랑을 그린다.
ⓒ국립극단, 극단 맨씨어터, 극단 창파
이번 동시기 공연에는 세 개의 단체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국립극단(7월 24일~8월 1일, 명동예술극장)은 충북도립극단과 손잡고, 원작이 지닌 인간 감정의 본질을 정공법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충북도립극단이 지난해 1493석 규모의 청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올린 이 작품은 객석점유율 81%를 기록했다.
극단 맨씨어터(8월 9일~31일까지 티켓링크1975씨어터)는 2011년 초연 이후 무려 15년 만에 ‘갈매기’를 다시 무대에 올린다. 초연 당시 1층 객석을 모두 걷어낸 실험적인 무대와 파격적 연출을 선보였던 극단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군상을 오늘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배우 전미도가 8년 만에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이 작품을 택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극단 창파는 ‘갈매기’를 다시 엮은 창작극 ‘불굴의 니나’를 7월 15일부터 19일까지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올린다. 작품은 ‘갈매기’ 속 인물 니나를 중심에 세우고, 원작의 고전적 서사에 부조리극적 상상력을 결합했다. 원작의 인물과 구조를 빌리되 새로운 연극 형식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펼쳐낼 예정이다.
동일한 원작이 같은 시기에 무대에 오르는 현상은 관객에게 차별화된 관극 경험을 제공한다. 관객은 동일한 대본이 연출가의 시각, 무대 미술, 배우의 연기 스타일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 실시간으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은 “지난해 ‘헤다 가블러’를 보면서 같은 작품이라도 대사와 장면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생각했다”며 “만드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이지만 관객은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시기에 동일한 원작으로 경쟁하는 구도는 연극계 전반에 긍정적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공연 관계자는 “지난해 ‘헤다 가블러’에 이어 올해 ‘바냐삼촌’ ‘반야아재’를 두고 매체나 평론가, 공연 관계자 등 하나의 텍스트를 둔 두 극장 서로 다른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흐름이 이어졌다”며 “어느 작품이 더 잘했다는 비교가 아니라, 같은 작품이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너지로 작용했다”고 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