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빅쇼 한 번으로 ‘문조털래유’ 털리고 마나
입력 2026.07.01 07:00
수정 2026.07.01 11:26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오늘 기업인들에게 너무 감사해서 큰절을 하고 싶다고 했다’며 ‘참모들이 가까스로 말려서 인사만 하신 것’이라고 했다”(조선일보).
신문에는 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차례로 인사하는 장면이 실렸다. 말 그대로 ‘90도 인사’였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에게 그처럼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이 회장이 총 2655조원, 최 회장이 21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니 대통령으로서는 감격할 만도 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에게 “국가 영웅 또는 국민 영웅이라 불러드리고 싶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호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호남권에 반도체 클로스터를 조성하는 게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가 아닌 ‘전화위복의 기회’라는 것이었다.
“장기 소외에 따른 고통과 설움을 겪었던 호남에게는 지금까지의 2중 차별이 예상 못한 큰 기회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전화위복을 통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만들 절호의 기회입니다.”
호남의 고통‧설움 반도체로 갚기?
호남인들이 이제야 말로 한을 풀 기회를 맞았으니 다른 지역 주민들은 딴 소리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문해력 부족 탓일까? 대통령이 ‘고통과 설움’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라는 뜻으로 들릴 법도 한데, 그러라고 쓴 것일까? 그 한을 풀어준 사람이 이 대통령 자신임을 알아달라고? 이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다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과거 영·호남 차별이 있었고, 호남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투자량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과거의 정책적 오류(정말 그런 게 있었다 치고)를 바로잡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박이다. 잘못 말을 거들었다가는 여전히 영·호남 차별의 구태를 못 벗은 기득권 세력으로 지목 당할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대통령 입에서 ‘조족지혈’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다니! “이제 호남의 한을, 그것도 아주 조금 풀어주려고 하니 차별구도 속에서 엄청난 이익을 누린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하는 것 같아 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산업화시대에는 당시의 사정과 형편이 있었을 것이고 그에 맞춰 정책이 입안 추진되었을 것이다. 특히 70년대까지는 ‘농공병진’의 시대였다. 공업화가 중요한 과제였지만 농업은 여전히 국가 존립의 바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영남지역은 산이 많아 농지가 부족했던 대신 양항(良港)의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호남지역은 국가를 지탱하고 국민을 먹여 살릴 곡창지대였다. 공업화 초기에 그 곡창을 굴뚝산업으로 오염시켜도 좋다고 나설 만큼 간 큰 사람이 있었을까?
이 대통령은 정부 각료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그룹의 총수들까지 배석시킨 가운데 (그 자신의 인식에 근거한) 영·호남 차별의 역사를 소환하고 지역감정을 간접적으로라도 자극하듯 하는 언급을 했다. 대통령다운 언어가 아니었다. 게다가 대한민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두 회장을 들러리로 세우기까지 했다. 특히 삼성 이 회장의 경우, 정치 논리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다. 왜 또 대통령과 정부의 공적 자랑, 이미지 치장(治粧)의 도우미로 쓴다는 것인가.
대통령 설득‧요청에 4755조로 응답
정부와 기업의 궁극적 책무와 역할이 같다고 한다면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정부의 경제산업 정책이 기업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정부와 기업이 사실상 이인삼각(二人三脚)의 관계라는 점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기업을 정부 정책 맞춤형 파트너로 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는 정부, 기업은 기업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자체가 청와대와 정부의 빅쇼였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자주 목격되던 행사와 닮았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주기, 놀래기 의도가 너무 부각됐다. 마치 “이래도 안 놀랄 거야?”라며 들이밀 듯 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뉴시스
삼성·SK의 향후 투자계획은 국민들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도합 4755조원 규모다. 아무리 화폐단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진 시대라고 하지만 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다. 미국에 약속했다는 대미투자 규모가 3500억 달러라고 했다. 현 환율을 기준으로 보면 525조원이다. 국민들은 그 엄청난 규모에 경악했었다. 그런데 단지 두 기업그룹의 국내 투자금액이 그 아홉 배에 이른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해서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핵심은 호남 지역 반도체산업 투자 계획이다. 삼성이 400조+25조(AI‧에너지 등), SK가 400조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도합 825조원이 호남지역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 발표할 경우 너무 커 보이니까 전체 투자계획을 함께 발표케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호남에 지나치게 많이 투자하는 게 아니다. 전체 계획 중 6분의 1정도만이 호남 차지라고 말하고 싶었을 수 있겠다.
어쨌든 이 엄청난 규모의 투자계획은 장기기간의 연구 검토과정을 거쳤을 법하다. 그런데 두 그룹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이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보면 오랜 시간을 들여 도출한 결론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정부가 반도체 초과세수 국민 배당안을 꺼내들었던 그 때부터 작성하기 시작했음직한데 아닐까.
정부가 기업 경영을 지휘하는 시대
“정부의 설득·요청에 따라 CEO들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27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결코 ‘기업 팔 비틀기’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글 자체가 정부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인한 말로 여겨진다. 어쩐지 급조된 계획 같아서 하는 말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대부분의 첨단 산업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해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해야 한다. 어느 기업이든 최고경영자(CEO)들의 결심이 절대적 지침일 수는 없다. 추진 과정에서 수없이 재검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발표는 발표고 실천은 실천’이라는 기업 경영의 논리가, 그들이 발표한 투자 계획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정부·기업의 뜻이 합일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과 같이 대통령의 권력이 정상 이상으로 강화된 시기에는 순수한 합의, 동의, 동조란 있기 어렵다. 기업이 대통령의 요청을 면전에서 거절한 다는 것은, (적어도 현재의 분위기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협조를 요청하면 웃는 얼굴로 화답해야 하는 것이 기업의 처지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빅쇼를 연출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적 과제가 민주당 당권경쟁 구도의 정리다. 정청래 전 대표의 연임을 저지하고 당의 세력구도를 친명일색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압도적 권력과시가 필요하다. 지난달 29일의 퍼포먼스는 정 전 대표로서는 망진막급(望塵莫及·앞 사람이 일으킨 먼지만 바라볼 뿐 미치지 못한다)이다. 최대의 표밭 호남의 민심을 정 전 대표 눈 앞에서 낚아 채 버린 격이라 할만하다. 정 전 대표, 혹은 ‘문조털래유’로 불리는 세력의 반전 카드가 있을 수 있을까.
더 장기적으로는 정권의 안정기반 강화책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평가를 기대할 만한 그림이다. 이 시대에도 역시 중요한 것은 ‘경제’고 그 대안을 이 대통령이 내놨다. 국민의 박수와 호응을 이끌어낼 이벤트로서는 제격이다. 그게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의 일괄취소와 장기집권의 여건 조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 책략정치이긴 하지만.
그런데 청와대가 직접 재벌들의 사업계획을 지휘하고 나선 것이 어떤 상황을 초래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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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