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프로젝트]이재용·최태원 입으로 나온 '광주·서남권'... 호남반도체 구상 실현 조건은
입력 2026.06.29 16:46
수정 2026.06.29 16:48
산업부 "호남권 제2 반도체 생산기지로…기업투자 800조"
이재용 "광주 후보지" 최태원 "서남권 400조 클러스터"
정치권 논란 속 李 "기업 주도" 강조…전력·용수·인력 관건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호남권을 포함한 신규 반도체 투자 구상을 직접 밝혔다. 이 회장은 광주를 삼성전자의 신규 반도체 단지 후보지로 언급했고, 최 회장은 SK하이닉스가 서남권에 약 400조원을 투자해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됐던 반도체 생산 지도가 호남권으로 확장될지 주목된다. 다만 대규모 반도체 공장은 전력과 용수, 부지, 인력, 협력사 생태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하는 만큼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 회장과 최 회장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그룹 차원의 지역별 투자 구상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호남권 반도체 생산기지 조성 여부였다. 정치권에서 먼저 부각된 ‘호남 반도체’ 구상이 기업 총수들의 발언을 통해 구체화된 셈이다.
이재용 "광주 후보지"…삼성 신규 반도체 단지 검토
이재용 회장은 "기술 패러다임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며 "폭발적 수요에 대응하기에 부족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흥, 화성, 평택에 이어 용인 국가산단 투자 일정이 많이 빨라졌고,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도 앞당겨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신규 반도체 단지 후보지로는 광주가 언급됐다. 이 회장은 "여러 지역 중 전력, 용수, 인력 확보와 여러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거점은 경기 기흥·화성·평택과 충남 천안·온양 등 수도권 남부와 충청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 회장이 광주를 신규 반도체 단지 후보지로 직접 언급한 것은 호남권이 삼성의 차기 반도체 생산 거점 후보군에 포함됐음을 공식화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광주 구상과 HBM·첨단 패키징 투자를 분리해 설명했다. 이 회장은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없어서는 안 될 HBM은 반도체 칩을 적층하는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며 "HBM 팹은 기존 반도체 후공정 팹과 함께 천안, 온양 등 충청권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광주에는 신규 반도체 단지 후보지를 검토하되, HBM과 후공정·첨단 패키징 역량은 기존 충청권 거점을 중심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AI 반도체 경쟁에서 HBM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삼성전자는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와 패키징 기술 투자를 병행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한 셈이다.
최태원 "서남권 400조"…SK하이닉스 신규 클러스터 추진
최 회장도 SK하이닉스의 신규 반도체 생산 기반으로 서남권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AI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수요 역시 급격한 증가가 예측된다"며 "이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극심한 공급 부족 상태이고, 앞으로 부족 상태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나친 공급 부족은 높은 가격 상승과 함께 미래 시장을 축소시키는 우려가 있다"며 "메모리 시장뿐만 아니라 AI 시장조차 축소시킬 우려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AI 생태계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메모리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기존 투자 일정도 앞당긴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는 증가하는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45년 완공 예정이었던 용인 클러스터 계획을 12년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용인 D램 증설에 약 600조원, 청주 낸드 증설에 약 100조원을 조기 집행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용인과 청주 투자만으로는 메모리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용인과 청주 투자를 앞당기더라도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계속 공급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며 "새로운 생산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 생산 거점은 서남권이다. 최 회장은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 선정과 기존 인프라 구축을 해야 한다. 참고로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9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공장은 대규모 부지와 전력, 용수, 인력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제반 요건을 충족하는 곳에 공장을 건설할 것이고, 이러한 조건을 만족할 것으로 기대되는 서남권에 약 400조원을 투자해 새로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SK그룹의 반도체 공급 확장 프로젝트 규모를 총 1100조원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SK텔레콤을 주축으로 한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도 2035년까지 약 10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AI 데이터센터는 지능을 생산하는 AI 팩토리"라며 "대한민국이 AI를 소비하는 나라에서 지능을 수출하는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호남권 제2 생산기지"…메모리 팹 4기 구축 계획
앞서 정부는 먼저 호남권 반도체 생산기지 조성 계획을 공식화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국민보고회에서 "호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하고, 총 800조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기존 수도권 생산거점 구축 속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평택 생산라인은 기존 5호기와 6호기를 순차적으로 짓는 방식에서 동시 건설 방식으로 전환한다. 용인 반도체 거점 조성도 앞당긴다.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용인 일반산업단지는 당초 투자 계획보다 12년, 삼성전자가 참여하는 용인 국가산업단지는 7년 단축하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수도권 단일 거점만으로는 전력과 용수, 부지 등에서 성장 한계가 있다고 보고 호남권을 제2 생산기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충청권은 첨단 패키징 거점으로 육성한다. 정부는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에 따라 늘어날 패키징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동남·대경권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허브와 전력반도체 등 차세대 혁신 거점으로 육성한다.
호남권 반도체 구상은 이날 발표 이전부터 정치권에서 먼저 부각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기업의 자율적 판단과 민간 주도 성격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호남 반도체 구상이 정치권 주도로 추진되면서 "정부가 기업 투자 방향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 "정권이 기업 의사에 개입한 국가폭력" 비판
실제로 야권에서는 호남 반도체 구상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청와대가 주도하는 호남 대규모 반도체 투자는 표 계산을 위해 대기업의 팔을 비틀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국정 운영 사유화'"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대통령이 총수를 압박해 결정하면 '예'하고 따라야 하는 것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제2 클러스터 추진은 소액주주를 위하겠다며 상법 개정을 밀어붙인 이재명 정부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는지 의심하게 한다"고 거세게 비판한 바 있다.
김진태 전 강원도지사 역시 전날 성명을 내고 "4년 전 강원도에서 반도체를 하겠다고 했을 때 민주당은 전기와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강원 영동 지방 화력발전 가동률이 20%대에 그쳐 전기가 남고, 화천댐 물을 끌어다 쓰는 방안도 있었는데 안 된다고 하더니 전남은 무슨 조건을 갖췄느냐"고 반문, 이를 두고 "정권이 기업 의사에 개입한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호남의 용수 부족론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호남에도 충분한 수자원이 있고, 관리 체계와 배치가 이뤄지면 대규모 산업용수 공급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다만 반도체 산업 특성상 단순한 물의 양을 넘어 초순수 공급, 폐수 처리, 안정적 전력망, 고급 인력 확보 등 복합 조건이 따라붙는 만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전력·용수·인력·생태계…실현 조건은 여전히 과제
가장 큰 변수는 전력이다. 반도체 팹은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돼야 하며, 순간적인 전압 변동도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까지 함께 확대될 경우 전력 수요는 더 커진다. 호남권이 전력 생산 측면에서 여유가 있다는 평가가 있더라도,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발전량이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망과 송전·배전 인프라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을 경우 전력 변동성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과제다.
용수 역시 핵심 조건이다. 반도체 생산에는 대량의 공업용수와 초순수가 필요하다. 실제 팹 운영에는 취수원 확보, 공급 관로, 초순수 처리, 폐수 처리, 환경영향평가가 모두 필요하다. 물의 양뿐 아니라 반도체 공정에 적합한 수질과 처리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지와 인허가도 변수로 꼽힌다. 반도체 팹은 대규모 부지와 장기간의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최 회장이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9년이 걸렸다"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용인 일반산단과 국가산단 조성 기간을 각각 12년, 7년 줄이겠다고 밝힌 만큼, 호남권 신규 생산기지에서도 부지 조성, 환경영향평가, 도로·철도 등 기반시설 확충 속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작동하려면 생산직뿐 아니라 공정·장비·설계·품질·안전·환경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하다. 특히 석·박사급 연구개발 인력과 숙련 엔지니어를 얼마나 유치할 수 있느냐가 장기 경쟁력을 좌우한다. 지역 대학, 전문대, 마이스터고와 연계한 인재 양성 체계는 물론 주거, 교육, 의료, 교통 등 정주 여건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협력사 생태계도 관건이다. 반도체 공장은 소재·부품·장비 기업, 유지보수 업체, 물류 업체, 연구기관과 함께 움직인다. 기존 수도권·충청권 클러스터와 떨어진 신규 거점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업 투자뿐 아니라 협력사 이전과 신규 입주를 유도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세제 지원, 보조금, 부지 공급, 인허가 단축, 물류망 구축이 종합 패키지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날 발표가 선언적 청사진을 넘어 실제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삼성과 SK 총수가 각각 광주와 서남권을 직접 거론하고, 정부도 호남권 메모리 팹 4기와 800조원 규모 기업 투자를 제시한 만큼 관심은 후보지 발표를 넘어 전력·용수·부지·인력 확보 로드맵으로 옮겨가고 있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AI 시대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업 투자와 정부 지원, 지방자치단체의 실행력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