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늘고 증상은 없다…'침묵의 암' 췌장암의 경고 [엑스레이]
입력 2026.06.28 06:00
수정 2026.06.28 06:00
국내 췌장암 환자 4년 새 36% 증가…암 사망 원인 4위
초기엔 위장질환과 비슷한 증상…발견 늦어지는 경우 많아
“예방이 최선…조기 진단·표적치료 연구도 활발”
눈에 보이지 않던 질병의 징후, 생활 속 위험 신호를 X선처럼 투명하게 비춥니다. '엑스레이'는 단순한 건강 정보가 아닌, 예방과 조기 대응을 위한 '생활 속 건강 진단서'입니다.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시그널을 포착해, 오늘의 건강을 과학적으로 읽어드립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소화불량과 체중 감소, 황달 등은 흔한 증상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가볍게 넘겼다가는 4대 사망 위험 암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최근 ‘침묵의 암’으로 불리는 췌장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평소와 다른 몸의 변화를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기 발견과 생존율을 높이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몸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침묵의 암'
2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췌장암 환자는 2020년 2만1947명에서 2024년 2만9845명으로 4년 새 약 36% 늘었다. 2024년 기준 환자는 남성 1만5210명, 여성 1만4635명으로 남녀 모두 1만4000명을 넘어섰다. 국가암지식정보센터는 췌장암이 암 사망의 9.2%를 차지하며 폐암, 간암, 대장암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췌장은 위 뒤쪽, 척추 앞의 ‘후복강’에 위치한 길이 약 10~12㎝의 장기로, 음식물을 분해하는 소화효소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등을 분비한다. 우리 몸의 소화와 대사에 필수적인 장기지만 몸속 깊숙이 자리해 일반 초음파 검사만으로는 이상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주변에는 주요 혈관과 림프관이 밀집해 있어 암이 자라면 다른 장기로 빠르게 퍼질 가능성도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초기에 특별한 자각 증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소화불량이나 명치 부위의 둔한 불편감, 식욕 저하, 체중 감소 등 흔한 위장질환과 비슷한 양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병원을 늦게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이유 없는 체중 감소, 기름진 변, 갑작스러운 당뇨병 발생 또는 기존 당뇨 조절 악화 역시 췌장 이상을 의심해볼 수 있는 신호다. 췌장의 소화 기능이 떨어지면 지방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해 지방변이 생길 수 있고, 혈당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규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하는 암인데,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췌장암 발생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존율이 과거보다 향상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망률이 높은 대표적인 난치암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특히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동반됐다면 암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어 지체하지 말고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췌장암이 의심될 경우에는 CT가 가장 중요한 검사이며, 필요에 따라 MRI나 내시경초음파 등을 시행해 종양의 위치와 크기, 혈관 침범 여부, 전이 여부를 확인한 뒤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조영덕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은 조용한 장기이지만 결코 아무런 신호 없이 병이 진행되는 장기는 아니다”라며 “평소와 다른 몸의 변화가 반복되거나 지속된다면 조기에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췌장암 대응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KRAS 표적치료제 등장…“췌장암 치료 새 전환점 기대”
췌장암 연구 이미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췌장암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으로는 흡연과 당뇨병, 만성췌장염, 비만, 과도한 음주, 가족력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흡연은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흡연자의 췌장암 발생 위험은 비흡연자보다 2~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금연과 절주,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인 운동, 당뇨병 관리가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소와 다른 소화기 증상이 반복될 경우 정밀 검사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영덕 교수는 “췌장암은 여전히 치료가 어려운 암이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며 “1~2기에 발견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50%에 근접하고 있으며, 새로운 항암제와 표적치료제, 면역치료제 연구도 빠르게 진행되면서 치료 전망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췌장암 환자의 90% 이상에서 발견되는 KRAS 유전자 변이 표적 치료제가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KRAS는 오랫동안 약물로 조절하기 어려운 표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이를 직접 억제하는 신약 개발이 이어지면서 치료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백규현 교수는 “최근 의학학술지에 발표된 ‘다락손라십’(Daraxonrasib) 연구는 진행성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다락손라십은 KRAS 변이를 한 번에 억제하도록 개발된 신약으로, 기존 치료를 받은 진행성 췌장암 환자에서 약 30~35%의 종양 감소 효과를 보였고 질병 진행을 억제한 비율도 90%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진행생존기간은 약 8개월, 전체 생존기간은 13~15개월 수준으로 기존 2차 항암치료보다 개선된 결과를 보였다”며 “아직 초기 임상시험 결과인 만큼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3상 임상 결과에 따라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혈액검사만으로 암을 진단하는 ‘액체생검’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향후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 교수는 “진단 기술과 표적치료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과 위험요인 관리”라며 “평소와 다른 소화불량이나 복통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위장장애로 넘기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