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흔들린 지표…반복되는 ‘평가 위한 평가’ [경평의 시간 ④]
입력 2026.06.05 17:04
수정 2026.06.05 17:05
李 정부 첫 경평 개편
AI·안전 배점 강화
제도 피로감 한계
관련 이미지. ⓒ김성웅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1983년 도입된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경평)가 43년째를 맞은 올해도 지표 개편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가 기준이 흔들리면서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오랜 비판이 반복된다.
재정경제부는 올해 경평에서 안전·재난관리 배점을 높이고 AI 혁신 가점을 신설하는 등 지표를 대폭 개편했다. 재무성과관리 배점은 21점에서 15.5점으로 낮아지고 공공성 관련 항목은 16.5점에서 20.5점으로 올랐다. 앞선 윤석열 정부가 재무성과 배점을 10점에서 20점 이상으로 끌어올린 지 불과 수년 만에 방향이 다시 바뀐 것이다.
정권마다 뒤집힌 지표…국정철학 반영 vs 예측 가능성 훼손
경평 지표는 정권 교체 시기마다 핵심 배점이 바뀌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반영해 사회적 가치 배점을 5점에서 22점으로 대폭 올렸다. 윤석열 정부는 방향을 전면 전환해 사회적 가치 배점을 다시 15점으로 낮추고 재무성과관리 배점을 22점으로 높였다. 이재명 정부는 산재 감축과 AI 혁신을 전면에 내세워 다시 지표를 손질했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표 변경의 불가피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일관성 부재를 문제로 꼽았다.
유 교수는 “선거를 통해 들어온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지표의 변화는 민주성 측면에서도 불가피하다”면서도 “한번 만들어진 지표는 사회 변화의 큰 이슈가 있지 않는 이상 5년은 유지돼야 기관 입장에서 예측 가능성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이어 “코로나19처럼 정권의 방향과 전혀 다른 이슈가 생기면 또 거기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초기에 지표를 정밀하게 만들어서 임기 동안 유지해야 한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 지표를 바꿀 때 5년이라는 중기적 관점에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미 없어진 지 오래”…폐지론 나오는 경평
정권마다 지표가 바뀌는 구조적 문제 외에도 경평을 둘러싼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경평 산업’ 고착화다. 공공기관들은 경평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상시 운영하며 연중 서류 작성에 매달린다.
전직 평가위원 출신 강사를 초청해 강연 한 번에 수백만원을 지급하고 수천만원대 외부 컨설팅 계약도 반복된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2020년 위촉된 평가위원 323명 중 156명(48.3%)이 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자문료·심사료 등을 받았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기강을 잡는 데 반짝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평가가 결과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관련 부서는 1년 내내 평가 준비에 시간을 보내고 있어 고비용 저효과를 조장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공기관 경평”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라는 제도의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됐다”며 “경평이 도입되던 80년대는 제3자의 평가가 약했던 시절이었으니 필요했지만 지금은 내외부 이해관계자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물론 경평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견제하고 성과 관리의 기준을 제시해왔다는 긍정론도 있다. 제도의 존폐보다는 운영 방식의 개선이 현실적이라는 시각에서 정부는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평가지표·기준 등 큰 틀은 유지하면서 새 정부 국정철학과 법령 개정 소요 등에 따른 변동사항을 적시성 있게 반영해왔다”며 “세부평가지표 수도 2021년 72개에서 2025년 52개로 꾸준히 줄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