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년, 금융은 복지가 될 수 있을까 [기자수첩-금융]
입력 2026.06.08 07:11
수정 2026.06.08 07:11
'잔인한 금융' 이름표, 현실은 그만큼 단순한가
금융은 복지인가…현장서 제기되는 근본적 질문
포용금융의 청구서는 누가 부담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7월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 고위공직자 워크숍에 입장하며 김용범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금융은 복지가 아닙니다."
지난해 취재 중 들은 이 한 마디가 최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잔인한 금융'과 '약탈 금융'을 언급하고, 김용범 정책실장이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라고 묻는 모습을 보면서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동안 금융정책을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포용'이다.
신용사면과 새도약기금 같은 채무조정 정책, 중·저신용자 지원 확대, 포용금융 강화.
정책마다 목적은 달랐지만 방향은 비슷했다. 시장의 논리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금융이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부는 금융을 더 포용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금융을 점점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금융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복지는 주면 끝이지만, 금융은 다시 돌아온다."
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이 말은 금융과 복지의 차이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대출금은 상환되면 누군가에게 재공급될 수 있지만, 복지 예산은 집행되는 순간 소멸한다.
서민금융 역시 복지라기보다 금융과 복지 사이에서 시장이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는 역할에 가깝다.
논쟁의 출발점 역시 여기에 있다.
금융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는 것과 금융 자체를 복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물론 금융이 사회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은행은 각종 인허가와 규제 속에서 영업하고 공적 안전망의 보호를 받는다. 포용금융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포용 자체가 아니다. 포용금융의 비용은 과연 누가 부담하는가.
금리를 낮추면 누군가는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대출 문턱을 낮추면 누군가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채무를 조정하거나 탕감하면 결국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비용을 떠안게 된다.
정책 논의는 늘 '지원'에서 시작되지만 정작 비용 부담 주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정부 재정으로 감당할 것인지, 보증기관이나 금융회사가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결국 다른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다.
실제 서민금융 현장에서도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거나 위험 부담을 과도하게 늘릴 경우 오히려 대출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원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만 커지면 금융회사는 대출 심사를 더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어내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포용은 필요하다. 하지만 포용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누가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금융은 복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복지와 무관한 영역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금융과 복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 위에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과 책임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지금 필요한 것은 '잔인한 금융'이라는 구호가 아니다. 포용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