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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황정민 “나홍진 감독이 SF를? 궁금할 수 밖에” [칸 리포트]

데일리안(프랑스, 칸)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19 07:00
수정 2026.05.19 09:02

7월 국내 개봉

배우 황정민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나홍진 감독과 다시 손을 잡았다. 제7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통해서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신작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을 배경으로, 출장소장 범석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출현 소식을 접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극 중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 역을 맡은 황정민은 고립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영화의 초반 40분을 책임지고 이끈다.


‘곡성’에 이어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였지만, 정작 황정민 역시 처음 받아든 대본 앞에서는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도시 칸의 호텔 바리에르 르 마제스틱 칸에서 만난 그는 나홍진 감독이 SF 장르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예상 밖이었다며 웃었다.


“나홍진 감독님이 ‘곡성’ 끝난 뒤에 선배님과 꼭 작업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마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몇 년 뒤에 스릴러물을 주셨는데 작업이 잘 안됐고, 또 몇 년 후에 다시 이 대본이 왔어요. 근데 나홍진과 같이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잖아요. 사실 대본도 읽기 전에 ‘나홍진이면 무조건 한다’였어요. 물론 읽어야 하니까 읽었는데, ‘나홍진이 SF를 한다고? 와’ 이런 느낌이었어요.더 궁금해졌죠. ”


수많은 흥행작을 이끌어온 베테랑 배우 황정민이지만, 이번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첫 크리처물 도전이었다. 실체 없는 존재를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생경한 현장은 그에게도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의 몰입감을 홀로 책임져야 했기에 고민의 깊이는 더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처물이 처음이라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저는 늘 상대 배우 눈을 보고, 감정에 동요를 받으면서 연기를 쌓아가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없이 맨땅에 시선만 잡고 상상하면서 연기를 해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쉽지가 않았어요. 디테일하게 계산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초반 40분 정도는 범석이가 관객들을 끌고 가야 하잖아요. 그러다가 외계인이 등장하면서 바통터치를 하는 거고요. 그 신 이후부터는 조금 편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황정민은 오프닝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하기 위해 그야말로 몸을 갈아 넣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뛰는건 괜찮았는데 신발이 웨스턴 부츠라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화였으면 훨씬 빨리 뛸 수 있었을 텐데 촬영 중에 발이 보이면 안 되니까 계속 부츠를 신어야 했거든요. 근데 나중에는 그냥 익숙해졌어요. 갈아 신기도 귀찮아서 계속 그 상태로 뛰었죠.”


우리가 흔히 접해온 할리우드식 SF 영화의 문법을 깨부수는 과감한 설정도 흥미로웠다. 황정민은 DMZ 인근의 한적한 호포항을 배경으로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신선한 충격을 언급하며, 첫 SF 장르에 발을 들인 소감을 전했다.


“이야기적으로도 신기했어요. 호포항이라는 가공의 마을이지만 정서는 굉장히 한국적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SF가 들어간다는 게 너무 궁금하고 신기했죠. 우리는 외계인 하면 보통 마블 영화 같은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는데, 이 영화는 배경 자체가 DMZ 근처 어촌 마을이잖아요. 그 설정이 너무 설렜어요. 저도 SF 영화를 찍는 건 처음이었고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황정민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비단 나홍진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인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과의 글로벌 협업 역시 그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자 설렘으로 다가왔다.


“처음 캐스팅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한다고? 이 외계인을?’ 싶었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나라면 할까 싶더라고요. 그만큼 감독을 믿는 거잖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알리시아 비칸데르나 마이클 패스벤더 같은 배우들도 처음엔 분명 불편하고 두려웠을 텐데, 그걸 선택했다는 게 멋지다고 느껴졌어요. 그분들과 같이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영광이었고요. 굉장히 기대했어요. 물론 영화 안에서는 외계인으로 나오지만 촬영할 때는 페이셜 캡처 상태로 같이 연기하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했던 것 같아요.”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운 촬영이었지만, 황정민은 인물의 본질에 집중하며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그가 분석한 범석은 재난 같은 상황 앞에서도 결코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뚜렷한 직업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범석은 지금 현재가 중요한 사람이에요. 이 현상을 어떻게든 극복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극복하는 방법에는 도망가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끝까지 부딪쳐 가는 사람이에요. 호포 출장소장으로서 직업관도 굉장히 뚜렷하고요. 그러다 보면 이 사람의 성격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호흡을 맞춘 후배 배우들을 향한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도 이어졌다. 특히 이번 작품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정호연을 떠올린 황정민의 얼굴에는 선배로서의 대견함과 고마움이 가득 묻어났다.


“정호연은 정말 겁이 없는 친구예요. 운전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쨌든 저는 옆에 타고 있어야 하니까 ‘천천히 해도 충분히 잘 보인다’고 이야기했죠. 고마웠던 건 자기 역할을 끝까지 충분히 해내려고 했다는 점이에요.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처음이라고 했는데도 두려워하면서 끝까지 해내더라고요. 그게 참 고마웠어요.”


10년 만에 다시 만난 나홍진 감독은 '곡성' 시절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황정민은 치열함과 집요함은 여전하지만, 한층 더 유연해진 감독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챘다.


“집요함에 끝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크게 걱정은 안 했죠. ‘이 영화는 분명 집요하고 재미있게 잘 나올 것이다’라는 결론이 이미 있었으니까요. ‘곡성’ 때는 작업하면서 굉장히 쫓기는 느낌이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감독님이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이더라고요. 물론 촬영 끝나고는 산더미처럼 후반 작업이 쌓여 있었겠지만요. 오히려 촬영할 때 감독님 얼굴이 더 좋아 보였어요.”


&호프&는 칸 영화제에서 화려한 포문을 열며 글로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황정민은 화려한 축제 속에서도 줄곧 한국의 골목길과 익숙한 공기를 떠올렸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실제 공간을 무대로 삼아 한국 관객들에게 기묘한 친숙함과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 영화들이 예전처럼 많이 나오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그런 상황 안에서 ‘호프’라는 영화가 나오게 되는데, 저는 진짜 기대돼요. 칸에서 처음 포문을 여는 걸 보면서도 계속 한국 관객들이랑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욕의 향연들 속에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서 같은 게 있잖아요. 그분들의 삶이 있는 공간이니까요.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고 나오니까 훨씬 더 리얼하고 와닿더라고요. 만약 세트였다면 이렇게 살갑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왜 감독님이 끝까지 실제 공간을 고수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 골목 하나하나가 꼭 우리 동네 골목처럼 느껴질 것 같거든요. 그래서 훨씬 더 살갑게 영화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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