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금'서 '장기 할부'로…'100세 시대' 퇴직연금 방향성은
입력 2026.05.14 16:30
수정 2026.05.14 16:44
60세 퇴직하면 40년 더 사는데
20년 이상 연금 수령자 100명 중 2명
너그러운 인출 제도 손볼 필요성
장기 상품 개발 노력도 요구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100세 시대를 맞아 정년퇴직 후 40년간 버팀목 역할을 해줄 퇴직연금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령자의 10명 중 8명이 일시 수령에 나섰을 정도로 '안정적·장기적 노후보장'이라는 연금 제도 취지가 퇴색된 만큼, 분할 수령 유인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재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14일 여의도 금감원에서 진행된 '퇴직연금 장수리스크 대응 세미나' 모두발언에서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서며 빠른 속도로 양적 성장 중"이라면서도 "가입자 중 연금으로 인출을 신청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5년 중 퇴직연금을 수급 개시한 60만1000명 가운데 50만2000명(83.5%)이 일시금 수령을 택했다. 연금 형태로 수령한 인원은 9만9000명(16.5%)에 그쳤다.
특히 연금 수급자 가운데서도 10명 중 8명은 10년 이하의 단기 연금을 선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부적으로는 5년 이하 17.5%, 5~10년 64.3%, 10~20년 15.9%로 집계됐다. 20년을 초과해 연금을 수령하는 퇴직자는 2.3%에 불과했다.
고령 인구(65세 이상) 기준으로 남녀 기대 여명이 각각 19.2년, 23.6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퇴직연금이 은퇴 이후 소득 보장에 기여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39.7%)이 가장 높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연금 장기 분할 수급 유인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서 부원장보는 "노후 생활에 대비하는 연금 본래 취지가 다소 무색한 것도 현실"이라며 "그동안 정부 정책은 주로 가입률을 높이고 수익률을 제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제는 적립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은퇴 이후 긴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지속적 소득 흐름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복 금융감독원 연금감독실장이 14일 여의도 금감원에서 진행된 '퇴직연금 장수리스크 대응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무엇보다 주요국 대비 너그러운 인출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환 동아대 교수는 "노조와 근로자가 굉장히 반대하지만 조기 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다른 나라는 두 가지 경우, 완전히 노동시장을 떠나거나 중증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을 때만 중도인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직 후 해지 금지 ▲중도인출 사유 제한 ▲적립금 담보대출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말 기준 개인형퇴직연금(IRP) 적립금 99조원 가운데 15조원이 중도해지 됐다. 해지 가입자 수는 99만2000여명에 달했다.
퇴직연금을 생활자금이나 주택 구입·임대 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이를 감안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김기복 금감원 연금감독실장은 "은퇴 전 실직이나 생활자금이 필요할 때 담보대출 허용을 고려해야 되지 않나 싶다"며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퇴직금 압류 금지 조항을 완화해 담보대출을 허용할 경우, 해지보다는 유지를 택하는 가입자가 늘 거란 관측이다.
복잡한 세제와 과도한 세제 혜택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처럼 연금 수령기에 세제 혜택을 많이 주는 나라를 잘 찾아보지 못했다"며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세제가 복잡한 나라도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일시금 수령에도 세제 혜택을 너무 많이 준다"며 "2억원을 일시 수령하면 (각종 세제 혜택으로) 실제 세금은 2.2%밖에 안 된다. 다른 나라는 일시금으로 받으면 소득세를 부과해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짚었다.
서울 시내 기업 밀집 지역에서 직장인들이 오가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연금 분할 수령을 유도할 수 있도록 상품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형관 하나은행 차장은 "퇴직연금 사업자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며 ▲연령별 인출률을 사전에 설정해 장기 인출을 유도하는 '호주 사례' ▲분할인출용·비상금용·장수리스크 대비용 등 목적별로 자금을 구분해 분할 인출을 유도하는 '영국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쌓을까'도 좋지만 '어떻게 오래 쓸까'하는 인출전략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장기 연금 수령 동안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상품 라인업이 많이 없다"며 "퇴직연금 본연의 취지에 맞춰 얼마나 오래, 그리고 안정적으로 수령할 수 있을지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