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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앞서가는데 금융은 제자리”…전환금융 ‘설계 미흡’ 논쟁 부각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6.04.24 07:01
수정 2026.04.24 09:35

금융위 참여한 GX 세션…“녹색전환, 금융 역할 핵심” 공감대

한국 기업 39% 전환계획 최고 수준…투자 연결은 ‘단절’

공시·데이터·로드맵 부재…전환금융 ‘시장 작동’ 과제

23일 오후 전남 여수시 베네치아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 및 기업 전환계획 간 시너지 확대: 한국 사례 조명’ 세미나에서 롭 파탈라노 런던정경대(LSE) 교수 겸 경제전환전문성센터(CETEx) 상임이사가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녹색전환연구소

정부가 녹색대전환(GX)을 핵심 정책 기조로 내세운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전환금융 설계가 미흡해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제기됐다.


산업과 기업은 전환 준비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지만, 금융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단 평가다.


지난 23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기후주간’에서 런던정경대(LSE) 산하 TPI 센터와 경제전환전문성센터(CETEx), 녹색전환연구소는 ‘국가 및 기업 전환계획 간 시너지 확대: 한국 사례 조명’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금융위원회도 세미나에 참여해 녹색전환 과정에서 금융의 역할과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세미나는 정부가 녹색대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산업·기업의 전환을 실제 자금 흐름으로 연결할 금융 체계가 제대로 설계돼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특히 전환금융이 정책 구호를 넘어 시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단 점이 핵심 의제로 부각됐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기후 대응 역량은 글로벌 대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TPI 센터 분석 결과, 국내 주요 기업 46개사 중 39%(18곳)가 전환계획 수립 및 실행 단계인 최고 수준(Level 5)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안토니나 쉬어 TPI 센터 정책 부국장은 “한국 기업들은 기후 거버넌스와 탄소 성과 측면에서 아시아 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이러한 전환 의지가 실제 탈탄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금융 구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이다. 기업들은 전환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투자와 자금 공급으로 연결하는 금융 메커니즘은 부족하단 지적이 이어졌다.


현재 전환금융은 기업의 전환 의지와 자체 계획을 중심으로 적격성을 판단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외부 검증은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며, 공시 역시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감축 효과가 불확실한 사업도 자금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전환금융이 단기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오히려 탄소 고착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엄격한 기준과 검증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환워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데이터와 인프라 부족도 한계로 꼽힌다.


일부 기업은 여전히 ESG 공시를 하지 않고 있으며, 공급망 배출(Scope3) 등 핵심 데이터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투자자가 기후 리스크를 평가하고 자본을 배분하기 위한 기반 자체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산업별 감축 로드맵 부재 역시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23일 오후 전남 여수시 베네치아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 및 기업 전환계획 간 시너지 확대: 한국 사례 조명’ 세미나에서 패널 토론이 진행중이다. 왼쪽부터 롭 파탈라노 런던 정경대 교수, 김정수 ING 은행 APAC 지속가능솔루션 이사,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박재훈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장. ⓒ녹색전환연구소

현재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기업 전환계획이 정부의 업종별 감축 경로에 기반하도록 하고 있지만, 해당 로드맵은 아직 구체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금융권이 투자 판단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전환계획 공시 의무화를 통해 기업의 기후 대응 전략을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자율적 가이드라인과 단계적 공시에 머물러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정책 신호의 부족이 문제로 지적됐다.


김정수 ING 은행 APAC 지속가능솔루션 이사는 “투자자가 철강·조선 등 탄소 집약 산업에 자금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책 방향과 일관된 분류체계,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전환금융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을 인정하며, 정책금융 중심 구조에서 민간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 나가겠단 입장을 밝혔다.


박재훈 금융위 산업금융과장은 “기후 대응과 녹색전환은 지속가능한 경제 구조로 가기 위한 필수 과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동안은 정책금융이 마중물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민간 자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환금융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기업의 전환계획을 평가하고 투자에 반영할 수 있는 기반이 중요하다”며 “공시 체계와 데이터 인프라, 분류체계 등을 단계적으로 정비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환금융의 실효성과 관련해서는 아직 보완 과제가 남았다.


박 과장은 “전환금융이 실제 탄소 감축과 산업 전환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량적인 평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관계 부처와 협력해 제도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녹색대전환이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산업 구조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금융의 역할이 핵심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환금융이 정책 수단에 머물지 않고 시장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시 의무화, 데이터 인프라 구축, 산업별 감축 로드맵 정교화 등 보다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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