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홀드백 재검토·스크린 제한·펀드 조성…한국영화 ‘생존 해법’ 제시 [D:현장]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4.09 15:05
수정 2026.04.09 15:08

“한두 편 쏠림이 산업 무너뜨려”

1000만 돌파…일본 ‘국보’ 6개월, ‘왕과 사는 남자’ 31일…“시사하는 바 있어”

제작 편수 급감과 극장 쏠림 구조가 맞물리며 한국 영화 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영화인들은 이를 일시적 침체가 아닌 체질적 문제로 규정하고, 스크린 집중 제한과 투자 확대를 포함한 제도적 개편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인연대 제공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2026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대책'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한국시나리오작가협 김병인 이사장,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박관수 부대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 양우석 감독,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회장, 황경선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참석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최근 한국 영화 제작 편수 감소와 극장 생태계 위축을 둘러싼 문제를 단순한 침체가 아닌 구조적 위기로 규정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영화인연대는 팬데믹과 OTT 확산 이후 산업이 급격히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위기는 외부 환경보다 오랜 기간 누적된 산업 구조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 편수가 30편에도 미치지 못하며 과거 연간 100편 이상 제작되던 시기와 비교해 제작 기반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 확인됐고, 이는 단순한 시장 축소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체질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현재의 위기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짚으며, "이러한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와 영화 펀드 조성 같은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극장과 배급, 투자 구조가 얽힌 현재의 시스템이 제작 편수 감소로 이어졌다고 보고, 산업 전반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적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김승범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위기의 원인을 팬데믹과 넷플릭스 확산으로만 설명하는 시각에 선을 그으며 "한국 영화 산업이 유독 회복 속도가 더딘 이유는 취약한 산업 구조에 있다. 한국의 극장 관객 수가 팬데믹 이전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미국과 유럽, 일본은 상당 부분 회복세를 보였고 프랑스는 2024년 기준 약 85%까지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 체인을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 구조가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폐해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교수는 최근 발의된 홀드백 관련 이른바 '블랙아웃' 법안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임오경 의원이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이른바 ‘홀드백’을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을 마친 이후 최소 6개월이 지나야 IPTV나 OTT 등 후속 플랫폼으로 공개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 교수는 "문제 해결의 방향은 관객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극장에서 충분히 상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라며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가 도입될 경우 상영 기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홀드백 역시 정상화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제 도입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양우석 감독은 영화 산업이 지난 수십 년간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관객 중심의 시각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객 입장에서 극장을 찾았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영화가 사실상 한두 편에 불과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체감 서비스는 오히려 저하된 측면이 있다"라며 "코로나 이후 콘텐츠 산업이 주류 경제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기존의 산업 작동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고 보고, 투자 역시 일부 대기업과 극장 중심 구조에 편중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은 "한두 편의 천만 영화로 산업을 견인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한 해법이 아니다. 대형 펀드를 통한 투자 구조 확대가 필요하다"라며 "현 정부가 영화계의 목소리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듣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 지금이야말로 구조적 대안을 제시할 경우 산업 환경이 바뀔 수 있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시된 핵심 대안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됐다. 먼저 한두 편의 영화에 스크린이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좌석 기준 약 20% 수준의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어 대형 펀드와 중형 펀드를 병행 조성해 투자 기반을 확대하고, 일반 투자자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세제 혜택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와 함께 최근 논의되고 있는 홀드백 법제화에 대해서는 관객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보다는 극장에서의 상영 기간을 자연스럽게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조치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업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입을 모았다.


상영 구조의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해외 사례와 국내 사례가 대비됐다. 일본 영화 '국보'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 약 6개월이 걸린 반면, 국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31일 만에 같은 기록에 도달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특정 작품에 스크린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가 단기간 흥행 수치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영화의 상영 기회를 제한하고 극장 생태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이다. 이어 이러한 배급 방식은 입소문이 형성되기 전에 최대한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관객의 선택권을 왜곡하는 방식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또한 정책 논의 과정에서 극장 사업자에 대한 접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양우석 감독은 "스크린 집중 제한이나 제도 도입이 극장에 일방적인 부담이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세제 혜택이나 정책적 지원 등 일정한 보상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대기업 극장 체인 역시 이미 수천억 원대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제도 변화는 산업 전반의 균형을 고려한 형태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황경선 제작자는 산업 내부의 자성 역시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단순히 외부 환경이나 구조 만을 문제로 지적하기보다, 제작자들 스스로도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시장에서 선택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화인연대는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성급한 정책 추진보다는 산업 구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날 제시된 방안들은 특정 결론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논의를 촉발하기 위한 제안의 성격에 가깝다고 설명하며, "이번 문제 제기를 계기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후속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현장'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