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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계속 자라는 나무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1.11.21 08:44 수정 2021.11.19 08:44

정치인의 편향적 역사인식, 나라 분열

정파 아닌 전체 국민위한 결정에 미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치인들은 왜 전문 분야도 아닌 역사(歷史) 문제를 자꾸 정치에 끌어들여 세상을 시끄럽게 할까?


‘자라고 있는 역사의 나무’는 역사학자들이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벌레를 잡으면서 공들여 키워야 하는데, 왜 이런 객(客)들이 끼어들까? 비슷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는 효과, 표(票)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강도(强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이야기가 있다. 길 가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자기 침대에 뉘어놓고, 침대보다 크면 잘라서 죽이고,작으면 늘려서 죽이는 날강도인데, 나중에 자신도 힘센 사람에게 잡혀 그 침대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지금 정치판을 둘러보면 이 사나이처럼 쇠침대를 준비해 놓고, 남의 역사의식을 재단(裁斷)해 보려는 ‘역사의 날강도’들이 즐비하다.


9년 전(2012.2)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의회를 통과한 ‘아르메니아 학살 부인 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판정이 난 이 법은 명분도 약하고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고 프랑스 내에 거주하고 있는 40만명 가량의 아르메니아(Armenia)계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한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홀로코스트(Holocaust)에 이어 악명 높은 인종 학살로 분류되는 오스만제국(Ottoman Empire)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제국 내의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프랑스 의회는 이 학살사건을 ‘인종청소 성격의 집단학살‘로 보는 역사해석을,프랑스 영토 안에서 공개적으로 부인(否認)할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최고 1년의 징역과 4만5000유로(6000만원 정도)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으나, 위헌 결정이 났다.


이 법안을 심리한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헌법재판소는 역사학자들의 책임에 해당하는 영역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사르코지는 재선에 실패했다.


지금 한국에는 역사학자들의 영역에 무단 침입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대통령이 앞장서고 여당 대선후보가 뒤따라간다.


대통령은 ‘역사학자들의 영역’으로의 출입이 잦은 편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손 잡고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6.25전쟁 등 남한 내 좌익과 우익의 대립 과정에서 좌익이 원인을 제공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그 원인부분을 빼거나 얼버무리고 민간인의 피해를 강조함으로써, 대한민국 군.경의 기여와 희생에 대해서 애써 눈을 감는 역사 해석을 되풀이 하고 있다.


또 현충일이나 서해교전 추모식 등에서는 국군통수권자 답지 않은 발언을 거듭하고 있어, 대통령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야당은 “좋은 말도 때와 장소가 있다”며 “더 이상 이념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역사인식을 바르게 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재명 후보도 그렇다.


지난 12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 최연소 상원의원인 존 오소프 의원(33. 조지아주)을 만난 자리에서 1905년의 가쓰라-태프트협약을 거론하며 “미국이 승인해 한국이 일본에 합병됐고 남북 분단과 6.25전쟁이 이어졌다”고 했다.


이 후보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야당은 “복잡한 국제정치적 원인이 작용해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터무니없이 단순화시킨 반(反) 지성적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남북 분단이나 분단에 이은 6.25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역사학계는 오래전에 정리한 사안이다. 또 1905년에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뭘 승인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이 후보는 지난 7월에는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역사학자들은 “미군이나 소련군이나 모두 해방군이면서 점령군이지,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말은 좌파의 악의적인 선전 용어”라고 말한다.


거슬러 올라가 이 정권 초기 민주당과 청와대에서 볼륨을 키운 ‘죽창가(竹槍歌)’선동은 지금 한-일 관계를 거의 파탄 냈다. 국내정치에 외교를 끌어들인 민주당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수많은 로마인이 루비콘(Rubicon)강을 건넜지만, 역사는 BC 49년 1월 10일 시저가 건넌 사실만 기억한다. 시저는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치며, 무장을 풀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루비콘강을 건넜다. 이 ‘역사적 사실’로 인해 로마의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계속 자라는 나무고,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한다. 이 대화의 담당자는 역사가들이다. 쇠침대를 지고 날강도처럼 돌아다니는 정치인이 아니다. 의석이 많다고, 역사가 귀 기울이는 게 아니다. 단지 바른 일을 할 때, 역사는 미소로 답한다.


ⓒ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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