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밥값은 제대로 내셨나?
입력 2021.11.11 07:47
수정 2021.11.10 16:47
문재인 대통령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밥값 내겠다”
대법원장 등은 공관 살면서 ‘밥값은 하는지?’ 궁금
나이 든 부부가 서울에서 살면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쓸까? 물론 어디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주거 관련 비용과 세금 등을 뺀다고 해도, 중산층 기준으로 수 백만원은 족히 들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연말 조사한 내용을 보면, 서울의 부부 기준 최소 노후생활비는 224만원, 적정 노후생활비는 319만원으로 조사됐다. 1년이면 4000만원 정도, 5년이면 2억원 정도일 것이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보름 정도 지나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하면서 “현재 대통령 관저 운영비나 생활비도 특수활동비로 처리하는데, 가족생활비는 대통령의 봉급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적어도 우리 부부 식대와 개. 고양이 사료값 등 명확히 구분 가능한 것은 별도로 내가 부담하는 것이 맞고, 그래도 주거비는 들지 않으니 감사하지 않냐”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청와대에 전세(傳貰)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들에게 설명까지 해줬다(2017.5.25).
이제 임기가 끝나가는 문 대통령 부부는 약속대로 가족 식비와 개. 고양이 사료값 등 개인 생활비를 지불했을까? 냈다면, 한끼니에 얼마를 쳐서 냈을까? 그 동안 그런 보도가 전혀 없어서 궁금하다.
실제 미국 대통령 가족은 백악관에서 살면서 식대와 생필품 등 개인비용을 부담한다. 백악관 경리 직원이 매달 청구서를 대통령 부부에게 보내고, 월급에서 공제한다.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백악관에서 대통령(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항목이 십여 가지가 있다.
우선, 가족 식사를 위한 장(場)보는 비용, 모두 부담한다. 영부인은 장보러 다니지 않지만, 영수증을 챙겨야 한다. 경리직원이 과다 청구하는 경우에 대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 자기 돈으로 사야 한다. 단 디자이너로부터 한 벌은 기증 받을 수 있다. 유권자 단체는 이 단서 조항이 불합리하니까 고치자고 난리다.
세탁비, 본인 부담이다. 대통령 가족들의 개인적인 파티(모임), 물품 구입에서 치우는 일까지 임시직원을 고용해 시급(時給)을 쳐주어야 한다. 1961년생인 오바마 대통령(재임 2009~2017)은 50회 생일 파티를 백악관에서 했는데, 전액 자비 부담했다.
백악관 방문 외부 인사들에 대한 선물비용, 모두 대통령 부담이고, 의전실에서는 구입에 필요한 정보만 제공한다. 또 캠프 데이비드 별장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비용, 미용사 비용, 휴지, 치약, 쓰레기봉투 등 생필품 구입비용, 입주할 때 10만 달러(1억2000만원)를 초과하는 인테리어 비용도 대통령 부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또 본래 살던 사저(私邸)와 관련된 융자금, 수리비, 제세공과금 그리고 백악관 밖에서 하는 사적인 행사 비용은 당연히 대통령 부담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일과 관련된 변호사 비용도 대통령 개인 부담이다.
젊고 잘 생겨서 그런지 ‘여자 문제’가 많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재임 1993~2001)은 그와 관련된 법적 공방과 의회의 탄핵을 방어하느라 변호사 비용을 많이 써서 백악관에서 나올 때 빚이 1600만 달러(190억원)였다. 2014년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빈털터리인 상태로 백악관에서 나와, 딸 첼시의 학비가 걱정될 정도였다”고 했다(2014.6.9).
이 대목에서는 기업에게 변호사 비용 81억원을 대납시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 또는 각종 송사(訟事)를 겪고도 재산이 증가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생각이 난다. 이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당국이 아직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2017년 5월 문 대통령의 개인 생활비 부담 약속은 초보 단계지만 선진 미국처럼 공과 사를 구분해 ‘개인생활비는 개인이 부담하겠다’는 아주 좋은 취지로 들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통령의 결혼한 딸 식구가 청와대에 들어가 1년 가까이 살았다니, 밥값도 밥값이지만, 이 집처럼 ‘각자의 장기를 살리는 제가(齊家)’를 실행하는 집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미성년자인 대통령 가족만 백악관에서 생활하도록 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늦둥이 딸 에이미(당시 9살)와 빌 클린턴의 딸 첼시(당시 12살)가 널리 귀여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독립생계’라고 재산공개도 거부한 대통령 딸네 식구가 청와대에 1년 가까이 ‘숨어’ 살았다니, 기이하다는 느낌이 온다. 방송사에서 오래 근무한 감각으로 본다면 ‘영부인은 물론 대통령 딸네 식구와 예술가 아들네 이야기는 별도 다큐를 만들어도 프로그램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이렇게 전개된 이상 문 대통령은 그 동안 대통령 부부가 부담한 가족생활비 액수나 내역을 공개하고, 딸 식구네 생활비 문제도 적절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침 연말이니 국회의장, 대법원장, 총리, 감사원장, 외교장관, 국방장관 등 공관을 사용하는 공직자 중에서 ‘밥값도 못하면서, 밥값도 내지 않은 경우’는 없는지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