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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서거] '친구' 전두환 곁에서…'성공한 2인자' 처신 보여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1.10.27 01:30
수정 2021.10.27 01:20

노태우와 전두환, 육사 11기 동기

12·12 사태로 신군부 득세하자

노태우, 자연스레 2인자로 부상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대선의 민정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뒤, 민정당 총재를 맡고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거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삶을 돌아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친구'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다. 노 전 대통령은 군생활을 하면서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 전임자는 모두 전 전 대통령이었다.


이러한 둘 사이의 인연과 관계 탓에 1979년 12·12 사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가 권력을 잡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정권의 2인자로 부상하게 됐다.


1981년 예편해 민간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은 정무2장관을 거쳐 체육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당시 체육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는 주무부처라 나름 요직이었다.


1985년에는 총선을 맞이해 집권여당인 민정당의 전국구 공천을 받아 당선되면서 원내로 진입했다. 초선 전국구 의원인데도 곧바로 민정당의 대표최고위원을 맡았다. 당시에는 당청(黨靑) 분리가 되지 않아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총재였기 때문에, 대표최고위원은 일본의 간사장(幹事長)과 같이 청와대에 있는 총재를 대신해 여당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전 전 대통령이 '친구' 노 전 대통령에게 여당을 맡긴 것이다.


2인자로 있는 동안 허문도·허삼수·허화평 등 이른바 '쓰리허'나 장세동 안기부장 등의 견제를 받기도 했지만, 처세를 신중하게 했기 때문에 무사히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낙점받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군인 출신답지 않게 자신의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고,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해서 남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 2인자로서 성공한 비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종필 모셔서 '2인자 처세술' 들어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인내"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사진은 1988년 1월 각각 민정당 총재와 신민주공화당 총재 자격으로 국회에서 회동을 할 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 '김종필 증언록' 79장(章) '2인자의 정치 철학'에 이와 관련한 대목이 나온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신군부 집권 이후 고초를 겪던 김종필 전 총리의 마음을 사 '2인자 처세술'을 전해듣게 되는 과정이다.


1980년 8월,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46일간 무단 감금돼 있다가 풀려나 청구동 자택으로 돌아온 김종필 전 총리에게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김 전 총리를 신문로 구세군회관 인근 보안사 안가로 초대한 노 전 대통령은 만나자마자 고개를 숙이더니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참으로 못할 짓을 했다"며 "용서해달라"고 사과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보안사 합수부 조사 과정에서 216억 원을 부정축재했다는 날조된 혐의를 뒤집어쓴 뒤, 제주도의 감귤농장과 서산의 목장까지 전부 강탈당하고 막 풀려난 처지였다. 사과를 받는다고 원상회복이 될 리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솔직하고 예의바른 어투에 마음이 풀렸다고 회상했다.


김 전 총리가 "기왕 이렇게 됐으니 이 나라를 잘 이끌어달라"고 당부하자, 노 전 대통령은 "선배로서 충고해줄 말은 없느냐"고 간곡히 물었다. 그러자 김 전 총리는 "좋든싫든 이미 권력의 길에 들어섰다. 내가 보기엔 당신이 2인자인 듯 한데 처신을 제대로 해서 온전히 살아남아야할 것"이라며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보지 말라 △조금도 의심을 받을만한 일은 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특히 김종필 전 총리는 "때가 올 때까지 1인자를 잘 보좌하면서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고 넘겨야 한다"며 "참는다는 것은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게 인내"라는 말도 남겼다.


김 전 총리의 조언대로 '때가 올 때까지' 견제와 의심을 참고넘긴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마침내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은 그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임자로서 물려준 군 요직과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1971년 대선 이후 16년만에 국민이 직접 직선제로 선출했다는 정통성이 있었다.


'5공 청산 바람' 속에 소원해졌다 회복
부음을 전해들은 전두환, 말없이 눈물
본인도 투병…빈소 조문은 어려울 듯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두 사람의 '친구' 관계는 1988년 총선을 통해 구성된 13대 국회에서의 '5공 청문회'를 거치며 파국을 맞이했다. 국회에 5공비리 조사특위,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가 잇따라 구성됐다. 자신의 최측근이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까지 국회에 증인으로 소환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를 막아주지 않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백담사에 칩거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 '국가, 민주화, 나의 운명' 18장(章) '5공 청산 바람'에서 "우리는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으나 우정을 국가보다 상위에 놓을 수 없게 됐다"며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라고 기술했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김영삼정부 들어 5·18 특별법이 제정된 뒤, 약 보름 간격으로 나란히 구속되면서 역설적으로 배신감·서운함·미안함 등을 털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정에서 오랜만에 해후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대뜸 "자네 구치소에서 계란후라이 주나"라고 물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이 "안 줘"라고 답하자 전 전 대통령이 "우리도 안 줘"라고 답하면서 짧은 대화를 끝마쳤는데, 이 때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이 해소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심 선고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이 손을 맞잡은 모습을 찍은 보도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말없이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측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를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을 이순자 여사를 통해 전해듣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지으셨다"고 전했다.


'친구' 전 전 대통령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조문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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