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대이동] '빛났던 조연' 안철수, 대선전 야권통합 나설까
입력 2021.04.08 04:20
수정 2021.04.08 05:59
서울시장 보궐선거 흥행 북돋는 역할 톡톡히
중도층의 시선 끌어와 '시너지 효과' 극대화
4·7 재보선 과정에서 최대 '마일리지' 쌓았다
선거연대서 대선前 야권통합으로 향할 가능성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야권의 여러 대권주자 중에 최대 '마일리지'를 쌓았다는 분석이다. 선거연대에 그친 이번 재보선과는 달리 내년 3·9 대선을 앞두고서는 야권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 '더 큰 야권'을 공언한 안철수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안철수 대표는 8일 0시 무렵 오세훈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을 예방했다.
오세훈 후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와 나란히 맨 앞줄에 자리한 안 대표는 국민의힘 핵심 당직자들 앞에서 "야권이 단일화를 해서 시장 선거에서 승리해서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놓았다. 이제 시작"이라며 "나를 포함한 야권의 책임있는 분들이 정권교체를 위해서 단합하고 힘을 합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대표는 4·7 재·보궐선거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흥행을 북돋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대선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지난해 총선까지 여권의 연승 행진이 이어지며 야권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소방수'로 영입된 김종인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서울시장 후보 영입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여당의 일방독주 정치지형 속에서 재보선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안 대표가 지난해 12월 20일 전격적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선언을 했다.
이후 야권의 판도는 안 대표의 출마선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오세훈 후보는 안 대표 출마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동했으며, 이후 순차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이날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오세훈 후보는 안철수 대표의 입당 문제를 조건 삼아 출마선언을 하기도 했다. 중도층의 시선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야권으로 쏠리면서 '여대야소'의 정치지형에 균열이 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80석 거대 여권은 더불어민주당이 시대전환·열민당과 순차적으로 단일화를 했지만, 이날 개표 결과 '시너지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100석 남짓의 국민의힘 후보와 3석 국민의당 후보 간의 단일화 TV토론은 일개 보궐선거로서는 전무후무한 9개 채널 생중계를 달성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단일화 성사 과정마저도 며칠간 '밀당'이 이어지다가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대표가 직접 '동시 양보'한다는 극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이날 재보선에서의 '반전 드라마'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민심의 저류에 '정권심판'이라는 분노가 흐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담아낼 '그릇'이 있어야 한다"며 "계속된 선거 연패로 패배의식에 빠져 지리멸렬해져있던 야권은 비유하자면 한쪽 구석이 깨져있던 '그릇'이었는데, 안철수 대표가 한 쪽을 떼운 모양새"라고 빗댔다.
운동권과 보수층은 정서 달라…토사구팽 '없다'
오세훈 "더욱더 자주 뵙게 될 수밖에 없을 것"
'마일리지' 사용에 정확한 정무 판단 전제돼야
6월말 '통합전당대회' 등 정치적 상상력 '절실'
야권 단일화 이후의 행보도 예전과는 일신됐다는 관측이다. 단일화 여론조사 발표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대표가 '애매한 행보'를 펼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오세훈 후보가 '내곡동 땅'으로 공세를 당하던 시점이라 '낙마'를 염두에 둔 행보를 펼칠 수 있다는 악의적 관측이 나온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이같은 관측을 비웃듯 공식선거운동기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오세훈 후보를 지원유세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를 지원하러 내려간 지난 1일 하루만 서울 지원유세를 쉬었으나, 이마저도 오세훈 후보 측과 사전 협의를 거쳤다.
지난달 27일 홍대 상상마당 유세 당시 오세훈 후보가 비를 맞으며 열변을 토하던 안철수 대표의 우비 모자를 씌워주던 장면은 '화학적 결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몇 차례의 상징적인 장면이 없었더라면 국민의힘에 중도층 민심이 합류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대표가 4·7 재보선 이후 토사구팽(兎死狗烹)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586 운동권과 보수 세력 사이의 정서 차이를 간과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586 운동권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학생운동 경력이 없는 인사나, 운동을 했더라도 손학규·김부겸 등 보수정당 출신이 자신들을 대체해 헤게모니를 잡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보수 진영에는 그런 장벽을 치는 세력이 없다"며 "기업인 출신 안철수 대표에게 '진입장벽'이 존재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아울러 "'안철수 토사구팽'설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를 급히 영입해서 써먹은 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내쫓았던 자신들의 정서에 기반한 희망사항"이라며 "보수정당은 본래 김영삼·이명박 등 색채가 달랐던 영입 인사가 중심이 된 선례가 많아 경우가 다르다"고 진단했다.
오세훈 후보도 지난 6일 공식선거운동을 마무리하면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쟁할 때는 치열했지만 단일 후보가 결정된 다음에는 본인 선거처럼 열심히 뛰어준 안철수 대표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만날 예정'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더욱더 자주 뵙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다만 안철수 대표가 이번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 과정에서 기여한 '마일리지'를 향후 야권통합 과정에서 사용하려고 해도, 정확한 정무적 판단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안 대표는 '타이밍'이 아쉽다는 지적이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많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20일에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할 때, 전격적으로 입당을 선언해서 경선을 치렀다면 안 대표가 후보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도중에 제기했던 국민의힘 경선 당적(黨籍) 개방 요구도 타이밍이 늦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미 예비경선을 시작한 상황이라 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며 "12월에 출마선언을 할 때 같이 했더라면, 그 때도 김종인 위원장은 반대했겠지만 '수용하자'는 요구가 높았을 것이라 우리 당이 진통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안철수 대표의 '마일리지'는 오는 6월말로 예상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유효기간 만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선 다음에는 안 대표가 입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통합전당대회 등 다양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