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코로나 없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입력 2021.02.26 08:00
수정 2021.02.25 21:46
무거운 짐 국민에게 지우고 K-방역 자화자찬 분주
코로나 방역이 집회·시위 틀어막는 만능열쇠 됐다
시절이 하도 어수선해서 하는 상상이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광화문광장을 시발로 전국의 거리는 태극기 물결로 넘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촛불혁명 정부는 이미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코로나는 더없는 행운일 수 있겠으나 대한민국과 선한 백성에게는 지금보다 더한 재앙이 있었던가 싶다.
촛불이 숭고한 것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혀서다. 정권을 거머쥐는 것으로 촛불 광란은 끝이 났다. 혹자는 그것을 권력 찬탈의 수순으로도 바라봤다. 그 뒤에 누구 하나 촛불 된 사람은 물론 없다. 4년에 걸쳐 조국한테서 시작된 위선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본 사람들은 안다. 점입가경, 문자 그대로 가관이다. 착한 마음으로 광장에 갔던 사람들은 결국 들러리가 돼 버렸다. 벌써 그리고 훗날에라도 가슴을 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집회·시위는 거의 잊혔다. 털끝만큼이라도 권력의 심기가 불편하겠다 싶으면 물샐틈없이 틀어막아 버리는 세상이다. 예상했던 대로 올해 3.1절에도 전국의 주요 도심은 경찰로 도배될 것이다. 경찰은 코로나 확산 우려가 있으면 모든 집회 시위를 엄벌하겠다고 일찌감치 선포했다. 집회신고는 인원을 불문하고 들어오는 족족 ‘방역 위험’을 이유로 불허된다. 정권을 성가시게 하는 시위는 단 1명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포다.
어둠 밝히는 촛불에 부끄럽지 않나
실제로 광화문광장을 보행인 숨통까지 죄다시피한 적이 있다. 시위자들은 살인자로 몰기까지했다. 그렇다고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이제 ‘국민건강 보호’를 통째 들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박원순, 백기완의 길었던 장례행렬과 민주노총의 거리투쟁을 익히 봐 왔다. 수 만 수 천명이 빈소를 왔다 가고 노제까지 보란 듯이 벌여도 관공서는 정말 뒷짐 지고 바라만 보다 뒷북치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코로나 1년 동안 정부 방침에 순응해 말없이 생업을 자제한 자영업자만 수 백만명이다. 가족끼리, 명절에도 다섯 사람 이상은 만나지 못했다. 전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철저하게 봉쇄돼 현대판 고려장의 불효자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면 방역이라도 제대로 됐어야 한다. 고비마다 그들은 코로나가 곧 종식된다고 여러 번 거짓말했다. 대통령도 한 가지였다.
코로나 창궐은 전문가 그룹의 권고를 깔아뭉갠 것이 근원이다. 초기 우한을 빤히 보면서 중국 코로나에 대문을 열어젖혀 화를 자초한 것이다. 정치 목적의 방임이 불행을 키웠다는 성토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뒤 총선에서 집권당은 코로나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올인했다. 방역은 정부·여당의 책무 아닌가. 어째서 그것이 선거전략이 되는지 의아스럽기는 했었다.
이후 무시무시한 세상이 됐다. 위성 정당들이 합세한 이른바 범여권은 국회 의석 거의 3분의 2를 챙겼다. 의사당 안팎의 범죄 피의자들까지 가세한 입법 만행은 속수무책이다. 세상만사 내 마음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식이다. 점령군이라고 다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명수의 거짓말 릴레이에 더 해 박범계, 황희 임명쯤이야 까짓거 거침없이 해치웠다. 타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태극기부대에 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코로나 없었으면 완장 차신 여러분, 어떡할 뻔했습니까. 국민과 의료진에게 십자가 지게 해 놓고, 양복 깃에 세월호 노란 리본 같이 금 십자가 달고 다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말썽 많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국내 공장에서 처음 위탁 생산돼 나오기 전날에도 깃발은 국무총리가 흔들었다. 백신 구매가 벽에 부닥쳐 허둥댈 때는 국민건강을 위해 남의 나라 국민들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 했던 사람들이다.
줄곧 코로나 선심은 이어진다. 4차 재난지원금 논란이 한창인데 대통령은 또 코로나가 종식되면 전 국민을 위로할 5번째 재난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위로금이라면서 누구 돈으로 한다는 말은 없었다. 무료라는 백신 접종만 해도 그렇지 내 돈으로 맞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다시 태극기 부대를 생각한다. 코로나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뿐 그들은 변치 않았다. 최빈국을 최첨단의 강국으로 이끈 주역이 그들이다.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러줄 일념으로 그들은 한평생을 보냈다. 좌파 건달들은 태극기 애국시민을 극우 수구꼴통으로 조롱한다.
적반하장이지 태극기 부대가 어떻다는 건가. 건달인들 대한민국 여권 갖고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 대접받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들 은공이다. 그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저 많은 극좌 꼴통처럼 일신의 영달을 탐욕 해서가 아니다. 망국으로 치닫는 나라를 처절하게 지켜보다 독립운동하듯 뛰어나왔다. 민주 건달들의 시대착오적 망동은 태극기 시민들의 헌신에 갖다 댈 일이 아예 아니다.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낯으로 그들을 욕하나.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전쟁
수구 퇴물은 정작 낡은 구시대 이념에 매몰된 저 건달들이다. 그들의 추악한 위선은 열거하기도 벅차다. 5.18을 추모하러 광주에 내려가 룸살롱에서 밤새워 질펀한 술판을 벌인 것은 한 단면이다. 부적 같은 개혁을 입에 달고 다니며 나라를 흔드는 세력의 실체는 이것이다. 평창올림픽 개막 리셉션에서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고 만방을 향해 연설했던 데서 더 소름이 돋기는 했다. 우리는 이런 나라의 국민이다.
보수 야당이 태극기 부대를 폄훼하는 현실은 비극이다. 이런 악질적 위선이 있는가. 중도 지지기반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는 계산을 모르지 않으나 태극기라고 다 내 것은 아니다. 깨어 있는 척 나는 보수꼴통 아니라고 허풍떠는 것은 패륜에 가깝다. 광장에 나가 태극기 시민들의 손이나 한번 잡아봤는지 모르겠다. 이 셀프 디스 허영은 패역 무리의 프레임에 투항한 것과 같다. 태극기 부대에 기생하는 정치 장돌뱅이들은 다른 문제다.
코로나가 끝나면 태극기가 봇물이 터질 것이다. 광화문광장에서뿐이겠는가. 광장을 다시 서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당장은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분노의 투표를 하는 것이다. 태극기 혁명은 거기서 시작된다. 이제 선거가 아니라 전쟁이다.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