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방 21년, 별거 15년…최태원·노소영, '세기의 결혼' 왜 무너졌나
입력 2026.08.05 15:05
수정 2026.08.05 19:01
최태원-노소영, 남보다 못한 남남으로 지낸 20여 년
최태원 측 "2005년부터 사실상 파탄"…노소영 측 "가정 회복 위한 노력"
2011년 검찰 수사 전후로 신뢰 붕괴 주장…양측 설명은 정반대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조정 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2011년 9월 어느 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을 나왔다. 다시 짐을 푼 곳은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이었다. 집무실 한쪽에서 먹고 자는 생활이 시작됐다. 최 회장 측에 따르면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한 번도 같은 지붕 아래 살지 않았다. 지난해 이혼이 확정될 때까지 15년이다.
이른바 '세기의 이혼'이라고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법적 분쟁이 최종 마무리 수순에 들어섰다. 두 사람의 법적 부부 관계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종결됐지만, 최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최 회장에게 현금 9440억원의 재산분할을 명하면서 수년째 이어지던 조 단위 재산 다툼의 법적 절차까지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별 과정에서 언제, 왜 관계가 무너졌는지를 둘러싼 양측의 설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극명한 평행선을 달렸다. 다만 기나긴 재판 과정과 법정 안팎에서 제기된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두 사람의 혼인 파탄은 2005년경 시작된다. 최 회장 측은 이 때부터 각방을 쓰면서 대외적으로만 부부 행세를 하는 이른바 '쇼윈도 부부' 생활을 해왔으며, 혼인 관계는 이때 이미 실질적 파탄에 이르렀고 법적인 혼인 상태만이 20여 년간 위태롭게 유지돼 왔다고 주장해 왔다.
◇ 최태원 측 "2005년부터 사실상 파탄"…노소영 측 "가정 회복 위한 노력"
두 사람은 1988년 결혼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딸과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의 아들. '세기의 결혼'이라 불렸다. 균열은 최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시작됐다. 공개된 판결문 등에 따르면 최 회장은 1997년 모친 박계희 여사, 이듬해 부친의 연이은 타계 후 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중압감 속에서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이 겹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미제출 이혼소장에서 "슬픔과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우자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 격려인데 가치관 차이 등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로 노 관장과 잦은 마찰을 빚었으며, 2005년 무렵부터는 사실상 부부로서의 정서적 교감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자택 안에서도 각방을 쓰며 침실과 생활 공간을 철저히 분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겉으로는 재벌가 부부의 외양을 유지했지만, 집 안에서는 서로의 삶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한 지붕 두 타인'의 생활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 회장은 이혼을 요구했으나 합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 회장 측에 따르면, 노 관장은 "특정 기간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가 이를 수용하면 또 다시 "해외 선교 여행에 동행해 달라"는 식으로 요구를 바꿔가며 시간만 끌었다는 주장이다. 이 무렵 노 관장이 거액의 위자료를 먼저 요구했다는 주장도 최 회장 측에서 나왔다.
물론 이 시기에 대한 노 관장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3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세 자녀를 키우고 가정을 지킨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이다. 파탄의 원인도 가치관 차이가 아니라 최 회장의 혼외 관계라고 했다. 교회 동행 요구 역시 무너지는 가정을 되살리려는 마지막 시도였다는 것이 노 관장 측 시각이다.
◇ 2011년 검찰 수사, 그리고 결별
양측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된 계기로 최 회장 측이 지목하는 사건은 2011년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이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통해 자신에 대한 수사를 청탁했다고 주장해 왔다. 최 회장이 2013년경 작성했으나 법원에는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이혼 소장에도 "노 관장의 경솔한 행동으로 2011년 4월부터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는 취지의 주장이 담겼다.
당시 SK그룹은 그룹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최 회장 등 오너 일가가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며 사법처리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노 관장의 태도가 극도의 배신감과 좌절을 안겼다고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제출 이혼소장에서도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자존심과 명예를 고려해 노 관장의 구체적 행동은 밝히지 않겠다"면서도 "이 사건을 기점으로 부부로서 남아있던 최소한의 신뢰마저 완전히 붕괴됐다"고 설명했다. 소장에는 "노 관장이 해명 과정에서 수차례 거짓말을 했고, 이에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 관장 측은 수사 청탁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노 관장 측은 자신이 남편과 그룹을 겨눈 수사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남편이 수감된 시기에 옥바라지를 하며 가족을 지킨 것은 자신이었다고 반박한다. 같은 시기를 두고도 두 사람의 기억과 해석이 정반대로 갈리는 셈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물리적 결별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최 회장은 검찰 수사를 계기로 더 이상 혼인 관계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굳히고, 2011년 8월 가족들에게 이혼 결심을 알렸고 그해 9월 자택을 완전히 떠났다. 지난해 이혼이 확정될 때까지 15년간 이어진 별거의 출발점이다.
이후 부부의 행보는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더욱 극단적인 평행선을 달렸다. 2013년 최 회장이 법정 구속 후 2년여가 흐른 2015년 8월, 재계와 정치권 안팎에서 경제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최 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던 바로 그 시점에, 노 관장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최 회장의 사면을 강력히 반대하는 A4 용지 7장 분량의 서신(탄원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노 관장은 이 서신에서 "최 회장이 석방돼도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 회장의 동생과 다툼이 치열해질 수 있다", "새 사람이 되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등 9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들며 사면 반대를 탄원했다.
더 큰 논란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노 관장은 2017년 6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해당 서신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을 때 “전혀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남편을 석방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최 회장의 사면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당사자들만 알고 있던 혼인관계의 파탄 상황을 대중들에게도 명백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최태원·노소영, 38년의 타임라인 ⓒAI
◇ 각방 생활부터 이혼확정까지 20년, '법적 남남'까지 길었던 세월
같은 해 12월 말 출소한 최 회장은 언론에 공개한 친필 편지에서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며 이혼 의사를 공식화했다. 그는 편지에 "십 년이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고 적었다. 재벌 총수가 스스로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노 관장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이혼을 거부했다.
법적 절차는 2017년 7월 19일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으로 막이 올랐다. 조정이 결렬되면서 2018년 정식 재판이 시작됐다. 이혼 거부 입장을 고수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태도를 바꿨다. 혼인 관계 회복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혼을 받아들이는 대신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청구하는 반소(맞소송)를 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였다. 소송의 무게중심이 '이혼 여부'에서 '얼마를 나눌 것인가'로 옮겨간 순간이다.
1심(2022년 12월)은 SK㈜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봤다.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고 현금 665억원 지급을 명했다. 위자료는 1억원이었다. 2심(2024년 5월)에서 판이 뒤집혔다. 노 관장 측은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쯤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지원했다며 이를 재산 형성 기여도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 사상 초유의 액수였다.
노 관장 측은 가정을 지켜온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했고, 최 회장은 이례적으로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판결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대법원(작년 10월)은 항소심의 핵심 논리를 깼다. 문제의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수뢰한 뇌물 등 '불법원인급여'로 보이는 만큼, 설령 SK에 유입됐다 하더라도 재산분할 기여도로 참작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딸의 재산분할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돌아갔다.
다만 법원은 1·2심 모두 최 회장을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로 판단했고, 위자료 20억원 지급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두 사람이 법적으로 남남이 된 시점이다.
파기환송심(2026년 7월 24일)은 절충안을 냈다. SK㈜ 주식을 분할 대상에 넣되 비율을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로 정했다. 최 회장이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는 대신 노 관장 몫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경영권은 지키되 돈으로 정산하라는 것이다.
선고 직후 최 회장 측 대리인은 "20년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를 정하겠다고 했다. 노 관장 측은 입장을 내지 않았다.
양측이 재상고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관계는 실질적 파경 20여 년 만에 완전히 정리된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상 20여 년 동안 남남과 같은 사이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두 사람의 지난 20여 년은 형식적인 시간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헤어진 것과 마찬가지인 부부를 법으로 구속하는 혼인 관계가 진정 의미가 있는 것인지 등 여러 메시지를 남긴 사건"이라고 말했다.
1988년 '세기의 결혼'으로 시작해 2026년 '세기의 결별'로 끝났다. 38년 가운데 절반이 넘는 세월 동안 두 사람을 붙들어 둔 것은 애정도 신뢰도 아니었다. 법적 혼인이라는 형식, 그것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