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의원들의 한계 + 분열되는 여권 텃밭 = ?
입력 2016.07.20 05:44
수정 2016.07.20 05:49
이완영, 정부 향해 "성주 사드배치 선정 기준 밝혀야"
긴급현안 질의 참석한 성주군민 "사드 배치 중단해야"
"의원님은 사드 배치를 찬성하십니까? 성주든 어디든 대한민국에 설치하는 걸 찬성하세요? 성주 철회하고 김천가면 받아들이겠어요?"
정곡을 찔렀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결정된 경북 성주를 지역구로 둔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사드배치 관련 긴급현안질의를 방청하기 위해 19일 성주에서 상경한 유권자들이 이 의원과 함께 성주군민들을 위로하겠다고 나선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을 향해 물었다. 답변이 쉬이 나오지 않자 성주군민 측에서는 "우리는 사드 배치를 반대해요! 대통령을 설득시키라니까!"라는 고성이 튀어나왔다.
이날 오후 열린 긴급현안질문에서 이 의원은 정부를 상대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비는 마음이 둘째라면 서러운 저 이완영, 오늘은 정부에 쓴소리 좀 하겠다"며 작심한 듯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국방부 장, 차관과 수시로 대화했지만 헛수고였고 지금 저 하나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대구경북의 550만 시도민들은 신공항 건설 무산으로 상심한데 이어 성주군 사드배치 결정으로 불안과 불만이 극에 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가장 성주 군민들이 서운하고 격앙된 것은 사전에 전혀 협의나 협조가 없었던 것"이라고 사죄의 말을 전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향해 "이 앞에 서 있는 것이 비참하다. 이렇게 국회의원이 장관님의 말씀에 모멸감을 느낀다고 생각지 않느냐"며 성토했다. 이어 "12일 최초로 성주가 언론에 나와서 장관님께서 예결위에 출석해 '아직 선정 중이고 내주 발표'라고 말했다"며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의원이 "정부가 발표하면 무조건 국회의원도 따르고 대구 경북도 따르고 성주 시민도 따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발표한 것 아니냐"며 몰아붙이자, 한 장관은 "과거 여러 사안에 대한 이해가 다른 문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양해를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이번에는 저희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재차 변명했다.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정부 당국과 성주군민 간의 '끝장토론'을 요구하기도 했다.
TK(대구 ·경북)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날 ‘7월13일 사드 배치 관련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 기자회견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드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재차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일부 언론에서는 TK지역 의원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고 있다”며 “이는 성주군 배치 결정에 따른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TK 국회의원들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긴급질의가 끝난 후 이 의원은 본회의장 앞에서 성주군민에게 사드 배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려 했지만 지역민들은 "국회의원님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철회라는 말을 왜 안씁니까?"라고 외치는 등 격앙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한 지역민이 "왜 자꾸 성주를 고립시킵니까. 우리는 완전히 고립무원이 됐어요!"라고 외치자 이 의원은 당황하며 제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또다른 지역민은 "(사드를) 설치하나 안 하나 죽는 거는 매한가지라. 쏘마 지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어. 대한민국에 사드는 필요없습니다!"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 의원과 함께 성주군민을 위로하러 온 이철우 의원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지역민은 이철우 의원을 향해 "(사드가) 김천에 가면 받아들이겠어요?"라고 물었다. 이 의원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고..."라고 대답하려 하자 곧장 "그러면 무슨 얘기 할라고 왔습니까! 새누리당 텃밭에서 당선되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됩니다). 새누리당에서 딱 깨놓고 사드 안 된다고 했던 사람 있습니까?"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새누리당 내 TK지역 의원들이 사드 배치를 사실상 반대한 입장에서 후퇴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사드 배치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는 이완영 의원만 남은 상황이다. 여전히 사드는 딜레마다. 사드 배치 지역을 중심으로 내부 반발이 터져나왔지만 집권여당이 정부 주요 결정을 마냥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긴급현안 질의에서 TK 지역의 사드 반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여당 인사들도 '사드 괴담'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김진태 의원은 "정부 당국에서 고심한 끝에 결정한 것을 좀 인정해주면 안 되겠나"라며 "그래야 나라라는 게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성주는 돌아가신 제 아버지의 고향이고, 지금도 많은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다. 제 아버지와 조상님들 혼령이 있는 곳"이라며 "그렇지만 나라가 있어야 지역도 있는 것 아닌가. '왜 하필 성주냐' 하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이와 함께 여당의 텃밭이던 TK지역이 점차 분열돼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실제로 '사드 칠곡 배치설'이 잠잠해진 뒤 회복세를 보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TK지역 지지율은 사드의 경북 성주군 배치 발표 후 다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매일경제·MBN ‘레이더P' 의뢰로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전국 2526명(무선 8: 유선 2 비율)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간집계에 따르면 사드배치 대상지가 포함된 TK에서의 긍정평가가 12일 50.6%에서 15일 9.2%p 떨어진 41.4%를 기록해 낙폭이 두드러졌다. 이번 주간집계는 2016년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26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스마트폰앱 및 자동응답 혼용 방식으로 조사했다. 응답률은 10.8%이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이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에 집권 말기에 접어든 정부가 국정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구경북이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가장 단단하게 뒷받침해왔는데 최근에 신공항 문제부터 사드배치 논란까지 줄줄이 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딱히 반등의 계기를 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정권의 레임덕이 본격화하고 있다. TK와 충청을 묶어서 임기 말은 물론 임기 후까지도 안전장치로 두려했던 대통령의 의도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