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턱밑까지 온 한화…'한국판 록히드마틴' 구상에 커지는 독점 우려
입력 2026.08.13 15:35
수정 2026.08.13 15:37
한화, KAI 지분 15.89% 확보…공정위 기업 결합 심사도 본격화
엔진부터 완제기까지 수직 계열화…KAI 독립성 훼손 가능성 커져
KF-21 ⓒKAI
‘한국판 록히드마틴’을 꿈꾸는 한화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빠르게 늘리며 경영 참여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화는 엔진부터 완제기까지 이어지는 사업 구조를 갖추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국내 산업의 경쟁 구도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이 보유한 KAI 지분은 지난 10일 기준 15.89%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9.90%, 한화시스템 4.98%,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1.01% 등을 합한 수치다.
한화는 당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올해 말까지 약 5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KAI 지분을 8%대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이후 지난 6월 추가 투자를 결정하며 한화에어로 보유 지분을 9%대로 끌어올렸고, 한화시스템까지 장내 매수에 가세했다.
지분 확대와 함께 보유 목적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지난 11일에는 그룹 합산 지분이 15%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 결합 심사를 신청했다.
현재 KAI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의 움직임도 ‘인수설’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수은은 최근 ‘우주·항공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컨설팅 용역’을 발주했다. 입찰은 다음 달 22일까지 진행되며 용역 기간은 3개월이다.
수은은 이번 용역이 “주요 우주항공 기업과 산업 생태계 전반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KAI 민영화 계획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다만 한화가 2대 주주로 존재감을 키우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시장의 시선은 수은이 보유한 KAI 지분 26.41%의 향방으로 쏠리고 있다.
수은 보유분의 장부가치는 1조1367억원이다.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약 3조6000억원에 달한다. 향후 매각이 현실화하면 자본 확충과 위험가중자산 감소를 통해 수출금융 공급 여력을 넓힐 수 있다는 점도 민영화설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다만 한화가 KAI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까지는 공정위 심사와 노조 반발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특히 한화가 항공우주 밸류체인을 수직계열화할 경우 시너지만큼이나 공급망과 사업 기회가 한쪽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사는 단순한 투자자와 피투자 기업 관계가 아니다. 항공 분야에서는 한화가 KAI에 핵심 장비를 납품하는 주요 공급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에 T-50 계열 엔진을 공급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KF-21 최초 양산 부품 17종을 대상으로 4731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시스템도 LAH 항공전자장비와 KF-21 임무컴퓨터·다기능시현기·적외선탐색추적장비(IRST) 등을 맡고 있다.
한화가 KAI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제품을 납품하는 기업이 이를 구매하는 회사의 의사결정에도 관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KAI가 가격과 성능, 기술력을 기준으로 협력사를 독립적으로 선정할 수 있을지, 한화와 경쟁하는 부품·장비 업체의 사업 기회가 줄어들지는 공정위 심사의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우주 분야에서는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하다. KAI와 한화시스템은 초소형위성체계 사업을 놓고 실제 경쟁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2023년 KAI와 SAR 검증위성 K모델, 한화시스템과 H모델 개발 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후속 양산 사업에서도 양측이 맞붙을 가능성이 있어 경영 참여가 현실화하면 입찰 가격과 원가, 기술 개발 전략 등 경쟁 정보 관리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과거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 사례도 부담이다. 공정위는 2023년 한화가 함정 부품을 공급하고 대우조선해양이 완성 함정을 건조하는 구조에서 가격 차별과 경쟁사의 영업 비밀 공유 가능성을 문제 삼아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당시 부과된 시정 조치는 올해 다시 3년 연장됐다.
KAI의 경우 공급 관계에 우주 사업에서의 직접 경쟁까지 겹쳐 있다. KAI 노조도 이 점을 지적하며 “공급 업체가 고객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문제와 경쟁 업체가 경쟁 상대방의 경영에 참여하는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다”며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공급 관계 만으로도 가격 차별과 영업 비밀 문제가 우려됐다면 이번 기업 결합은 그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국내 경쟁 기반이 훼손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항공 엔진 업체들도 엔진 사업 자체의 전문성과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으며 직접 완제기 제작까지 수직계열화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KAI 역시 오랜 시행착오와 투자를 거쳐 현재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기업인 만큼 민영화 이후 단순히 효율성만을 앞세워 조직을 재편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