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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에 집 준 최창학, 백남준 아버지 백낙승의 공통점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5.07.25 09:50 수정 2015.07.25 09:53

<굿소사이어티 서평>한강의 기적 만들어낸 준비된 기업가 정신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 김용삼 지음 프리이코노미스쿨 펴냄
지난달 김용삼의 신간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프리이코노미스쿨 펴냄)을 소개하면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고 귀띔해드렸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란 드라마에서 진짜 주인공은 기업가들이라는 대목인데, 이게 참 문제적이다. 문제적이란 표현은 일부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겠지만, 훌륭한 문제제기라는 뜻이다. 이 대목은 독립된 주제로도 썩 훌륭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한 책에 대한 두 번째 서평을 쓰는데, 이 책의 주장은 그간의 통념을 크게 뒤집는 내용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 계획에 기업들은 조연으로 참여했다는 것으로 그 동안 우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논리로 뒷받침이 가능할까? 우선 복습부터 하자.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은 한국경제의 기적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읽을거리가 분명하다. 1960~1970년대 한국경제의 질주란 평지돌출만이 아니고 이전부터 내려온 전통과의 연속성 속에서 가능했다는 걸 효과적으로 규명해준다.

한강의 기적 만들어낸, 준비된 기업가 군단

매력적인 기업인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신의 박흥식에게만 끌리는 아니라 1930년대 골드러시의 주인공인 광산왕 최창학도 흥미롭다. 사실 백범 김구가 묵던 경교장은 그가 제공한 집이었다. 그 유명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부친인 백낙승에도 관심이 간다. 그는 해방 직후 국내 산업이 붕괴된 상황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던 이른바 마카오무역에 참여해 돈을 모았고, 훗날 태창직물을 이끌었던 주인공이다.

삼성물산 이병철, 천우사의 전택보 등도 대부분 이 마카오무역에 손대서 재미를 봤는데, 그건 이들이 남다른 사업 감각을 가졌음을 이 책은 새삼 보여준다. 이렇게 무역으로 쌓은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해 근대기업으로 발돋움하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기업가 군단이 준비돼 있었던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미 군정청이 불하했던 귀속재산을 토대로 일궈낸 기업도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불하 받은 조선직물을 모태로 탄생한 쌍룡그룹, 수원 선경직물을 물려받아 오늘의 SK그룹, 삿포로맥주를 불하받아 세운 조선맥주(하이트맥주)…. 반세기를 뛰어넘는 지금 그들의 성공이, 그리고 아직도 살아있다는 게 어디 그냥 가능했을까?

때문에 지금의 한국기업들이 해방 직후 눈먼 재산을 토대로 일어섰다는 시각 자체가 병들어도 한참 병든 논리다. 그들은 박정희 정부의 개발 드라이브에 참여해 조연이 아닌 진짜배기 주인공으로 활약했다는 게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의 주장이다. 그럼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란 드라마에서 기업가들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였을까? 그들의 기여도라는 게 그저 열심히 했다는 정도면 곤란하지 않을까? 그 의문을 이 책은 풀어준다.

“한국경제의 산업화는 정부와 기업가들의 연합 및 합작방식으로 진행됐다”(232쪽)는 언명은 그래서 흥미롭다. 물론 이 주장을 백업해주는 물증이 있다. 외자도입형 공업화 전략은 삼성그룹 이병철이 제시했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보세가공무역은 천우사를 창립했던 수출왕 전택보의 아이디어였다. 뿐인가? 훗날 중화학공업 전략 역시 박정희만의 꿈은 아니라는 게 이 책의 지적이다.

기업보다 국가를 우선한다는 사업보국의 기풍

전택보가 수출왕이라면, 1952년 강원탄광을 만든 정인욱은 석탄왕이었는데, 결정적으로 그의 태백산 종합개발이 1970년대 초 박정희의 야심작인 중화학공업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다는 게 이 책의 시각이다.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이런 정부-재계 사이의 파트너십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박정희 정부와 재계가 공유하고 있던 어떤 멘탈리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게 이 책의 해석인데, 그 대목도 경청할만하다.

사실 창업세대의 공통적 특징이 있다. 그게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일제시대 버젓한 근대기업으로 경방과 화신 밖에 없고, 여전한 사농공상의 유교질서에 갇혀 살던 이 나라에서 그들이 전에 없던 강렬한 기업가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이 놀랍다. 그건 한국인의 위대한 정신혁명 실험이기도 했는데, 바탕에는 기업보다 국가를 우선한다는 사업보국의 기풍이 있다.

현대 정주영이 중공업 사업장에 붙여놓은 구호가 그걸 압축해 보여준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일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 그런 인식은 당시 등장하고, 성장했던 주요 기업의 이름에도 배어있다. 트럭 한 대로 출발해 오늘의 한진을 일군 조중훈이 회사이름을 그렇게 정했던 건‘한민족의 전진’을 함축했기 때문이다. 김철호가 설립한 기아(起亞)는 ‘기계공업을 발전시켜 아시아에서 세계로 진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업가정신 되살리기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이런 스토리를 훌륭하게 담아낸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정신>은 분명 상찬(賞讚)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산업사의 100여 년 흐름을 긍정의 시선으로 다루는 방식도 균형 잡혔지만, 지금 우리의 당면과제인 한국경제의 재도약에도 많은 암시를 주니 이 또한 흥미진진하다. 지난 50년 한국은 대성공을 거뒀지만, 왜 지금 성장에 목마른 국가로 추락하는가에 대한 솔루션을 전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기업들은 매년 400억 달러 정도를 해외에 투자하는데, 이걸 국내로 돌릴 경우 3%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 매년 40만 개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런데도 왜 이걸 못하는가? 저자는 그걸 개발연대의 성공 스토리를 잊은 채 경제민주화 타령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그게 맞는 소리다. 경제민주화는 관치경제를 극복하는 등 의미가 아주 없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평등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뜻하고 ‘다 함께 못사는 앉은뱅이 사회’즉 저성장 국가를 만들었다.

이걸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기업가정신 되살리기밖에 길이 없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한강의 기적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활발하던 나라로 꼽히던 우리의 저력을 믿어보자는 제안이다. 특히 창업세대의 사업보국 이념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8.15광복절 특사 구상을 밝혔다. 형기의 절반을 넘긴 SK 최태원 회장, 최채원 부회장을 포함해 집행유예가 확정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거론된다는데 다 좋은 얘기다. 이왕이면 이걸 계기로 재계의 ‘경제하려는 의지’ 전체를 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상식이지만, 지금 독서시장은 엉망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대기업을 저주하고, 신자유주의라면 부르르 떨며 서울시장 박원순 류의 협동조합을 찬양하는 책으로 가득하다. 이런 불량도서의 더미에서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정신>같은 양질의 책이 선전하길 나는 기대한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바뀐다. 다시 읽어본 이 책은 역시 강추의 대상이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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