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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논란, 친일 청산만 됐더라도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8.17 07:00
수정 2026.08.17 07:00

배우 하영.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올해 광복절을 전후로 배우 하영의 조상 친일 논란으로 들끓었다. 이는 하영이 지난 7일 방송된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이야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해당 방송에서 “증조할아버지가 당시 한양에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을 가장 먼저 여신 분 중 한 분”이라며 증조부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만큼 뿌리 깊은 의사 집안이라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 이후 친일 논란이 터졌다. 하영이 언급한 증조할아버지가 친일파 의사 안상호라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친일 의혹에 대해 소속사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안상호의 이름이 당시 친일단체였던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올라 있는 기록이 발견돼 사실로 확인됐다. 그제서야 소속사도 이를 인정했다.


광복절을 앞두고 터진 이번 사안은 일파만파로 확산됐고 대중문화계의 최대 이슈로 비화했다. 결국 하영이 자필 사과문을 통해 증조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족의 자랑처럼 이야기를 해왔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고 해명했지만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안상호의 친일 논란에 대해 당시 엘리트들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갔기 때문에 그걸 친일이라고 비난하는 건 과도하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김익남의 사례를 봐야한다. 구한말에 김익남은 안상호와 함께 관비로 일본 의대에 유학했다. 근대 국가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었다. 김익남은 귀국 후 후학을 양성하다 나라를 빼앗기자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반면에 안상호는 조선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대정친목회는 민족반역자인 이완용, 송병준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로 일제가 조선의 유력자들을 포섭해 ‘내선융화’를 선전하는 데에 활용됐다. 안상호는 이런 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선동화’의 모범 사례로 추켜세워졌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완전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이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해당 기사에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집안에선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는다"며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1918년 12월 10일자 매일신보에 소개된 안상호 가족.ⓒ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다시 말해 안상호는 식민통치의 선전 도구 역할을 한 것이다. 일선동화라는 건 결국 조선문화말살을 의미한다. 해당 기사에서 안상호는 조선문화와 조선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족말살을 위한 나팔수였던 셈이다. 똑같은 국비 유학 엘리트였는데 김익남과 안상호의 선택은 이렇게 달랐다.


김익남 같은 이를 기리고 안상호 같은 이를 친일이라며 준엄하고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 올바른 역사다. 그래야 훗날 혹시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하더라도 김익남 같은 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국민 중에 안상호 같은 이들이 많다면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망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라면 독립의사와 친일파의 문제는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문제는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결과 이런 중대한 사안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영의 아버지가 하영의 언니인 장녀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기고문이 2002년 중앙일간지에 실렸다. “우리 집안은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다”라며 "(너의 증조부가) 초대 한성의사회장(지금의 의협회장)을 지내셨고, 조부께서도 성심병원장을 지내셨거든. 그 덕에 애비는 고교와 대학을 세칭 명문이란 데를 거쳐 가업을 잇게 됐지"라고 썼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 조상을 거론하며 명문 집안이라고 신문에 쓴 것이다. 친일청산이 정확히 됐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분위기이니 하영도 방송에 나와 증조부 자랑을 했을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그간 여러 차례 증조부 이야기를 했으면서 증조부에 대해 잘 몰랐다는 말이 의아하긴 하지만 하영과 아버지가 정말로 안상호에 대해 잘 몰랐을 수는 있는데,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그걸 모를 수가 없게 됐을 것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친일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차이도 회자됐다. 하영은 지난해 방송에 나와 의사 집안이라며 “본가에 냉장고가 5대”, "내가 챙겨 와도 아무도 모른다. 절대 모른다. 그리고 안 먹어서 매일 썩는다."라고 말했다. 이건 하영 집안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줬는데, 누리꾼들은 친일 후손이 호의호식하는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은 가난하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한탄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겹쳐 이번 광복절에 하영 증조부 논란이 뜨거운 이슈로 비화한 것이다. 제대로 친일청산이 됐다면 우리가 21세기에 이런 논란을 겪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일각에선 하영의 퇴출을 요구하지만 증조부 일로 4대손이 업을 못하게 하는 건 과해 보인다. 중요한 건 역사를 바로잡고 그 의미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우리 후대에 민족반역자들이 득세하는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기려야 후대에 그런 애국지사들이 많아질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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