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미감’ 타령, K컬처는 감각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세계를 이겼다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㉘]
입력 2026.09.04 14:01
수정 2026.09.04 14:01
요즘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보면 이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칩니다. '미감'. 이 카페 미감 미쳤다, 저 사람 미감 부럽다, 어느 브랜드는 미감이 살아있다. 저는 이상하게 이 말을 입에 담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저는 늘 취향이라는 말을 골랐습니다. 왜 유독 이 단어 앞에서만 멈칫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좀 따져보고 싶어졌습니다.
먼저 걸리는 건 말 자체의 쓰임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미감(美感)을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 아름다운 느낌'이라는 명사로 풀이합니다. 반면 우리가 실제로 뜻하고 싶어하는 말, 미를 판단하는 감각이나 능력은 미적 감각(美的感覺)이라는 전혀 다른 철학 용어입니다. 실제로 한 시민이 이 혼선이 답답했는지 국립국어원에 직접 문의를 남긴 적이 있는데, 답은 명확했습니다.
두 단어는 사전에 각각 다른 뜻으로 등재된, 애초에 다른 말이라고요. 즉 미감은 "이 도자기에는 조선 특유의 미감이 있다"처럼 대상에 깃든 느낌을 가리키는 말이지, "저 대표는 미감이 좋다 나쁘다"처럼 사람의 능력을 채점하는 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둘을 아무렇지 않게 뭉뚱그려 쓰고 있는 셈이죠.
오케이레코즈 민희진 대표ⓒ민희진 인스타그램
이 착각이 유독 커진 데는 계보가 있습니다. 미감은 원래도 업계 은어였습니다. 브랜딩과 디자인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저 사람 미감이 좋아요", 반대로 "미감 구리다"는 말이 채용 공고나 레퍼런스 리뷰에서 오갔습니다. 창작자들끼리 작업물의 완성도를 가늠하던 실무 용어였던 셈이죠.
그런데 이 업계 안쪽 말이 사회 전체의 도덕적 잣대로 들불처럼 번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2024년 하이브와 어도어의 경영권 분쟁입니다. 그 갈등의 구도는 어느새 능력과 무능이 아니라 미감의 유무로 재편됐습니다. 한쪽은 산업의 미래를 아는 아름다운 존재로, 다른 한쪽은 그 미감을 질투하는 촌스러운 존재로 나뉘었죠. 정작 그의 성취를 오래 지켜본 입장에서는, 그걸 미감 하나로 요약하는 게 가장 억울한 축소일지도 모릅니다. 그 안엔 분명 오랜 업계 경력과 전략, 팀워크, 디테일을 향한 집요함이 함께 있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이 사태 이후 '미감'의 온라인 검색량은 꾸준히 우상향했고, '미감 기르는 법' 같은 자기계발 콘텐츠까지 유행했습니다. 업계 은어 한 마디가 판단의 잣대로 전 국민 앞에 등판한 겁니다.
그리고 이 이미 한 번 과장된 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옮겨붙기 시작한 겁니다. 카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인스타그램 피드를 꾸미는 사람에게도 미감이 있다 없다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창작자에게도 부분적으로만 성립했던 말이 소비자에게는 아예 성립할 자리가 없는데도,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쓰이는 겁니다. 비슷한 시기 번진 '추구미'가 오히려 더 정직합니다. 이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말할 뿐, 남보다 낫다는 뜻을 품지 않으니까요. 반면 미감은 여전히 있다 없다로 사람을 가르는 말입니다.
ⓒunsplash.com
이 말이 산업 현장으로 들어오면 더 위험해집니다. 브랜드 미팅에서 종종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는 미감으로 승부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뒤를 물으면 나오는 건 무드보드 몇 장뿐, 누구에게 무엇을 왜 파는지에 대한 답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깃도 유통 전략도 원가 구조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색감과 폰트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미팅을 저는 유독 많이 겪었습니다. 이 단어가 애초에 K팝 신에서 출발했다는 걸 떠올리면 더 웃깁니다. 콘텐츠도 세계관도 팬덤 전략도 없이 화보 한장, 앨범 커버만 근사하게 뽑아놓고 데뷔시키겠다는 기획사가 있다면 우리는 그 회사를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브랜드가 정확히 그 방식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감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전략은 설명해야 하니, 더 편한 쪽을 택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다만 그 편함이 수명을 갉아먹습니다. 감각은 복제되지만 전략은 복제되지 않는데, 정작 없는 건 전략 쪽이니까요. 게다가 이건 국내용 착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건 늘 감각이 아니라 그 감각을 지탱하는 시스템이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K컬처가 세계에서 이긴 방식도 늘 이랬습니다. 라면이 63개국에서 통한 건 매운맛에 대한 신비로운 감각이 아니라 표준화된 조리 시스템 때문이었고, 케이팝이 세계를 흔든 것도 몇몇 스타의 미감이 아니라 팬을 무대의 주체로 세운 참여의 구조와 통합적인 시스템 덕분이었습니다. 세계를 이긴 건 감각 뒤에 숨은 몸통, 곧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성공의 비결을 거꾸로 읽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이 아니라 미감 덕분이었다고, 감각만 있으면 다음 성공도 저절로 온다고. 그러니 이건 진짜입니다. 미감이든 미적 감각이든, 결국 둘 다 몸통이 있어야 비로소 빛나는 겉이었을 뿐입니다.
ⓒ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