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은 ‘반짝’…사각지대에 놓인 창작자들 [자본에 밀린 문화공간②]
입력 2026.09.05 09:00
수정 2026.09.05 09:00
한강 작가 서점 폐업 후 “어떤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겠나” 씁쓸한 반응
번화가에서 밀려나는 서점들, 운영 어려워지는 악순환 빠져
수년을 열심히 일군 가게도, 건물주의 퇴거 통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상임법) 계약갱신요구권을 적용하고, 그 기간도 처음 5년에서 10년으로 늘렸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분쟁조정 건수 총 187건 중 계약 갱신 및 종료가 33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분쟁의 여지가 큰 제도로, 현행 법제도가 문화공간 운영자와 창작자들을 젠트리피케이션의 칼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이유다.
폐업을 앞두고 있던 대학로 소극장 학전블루 소극장ⓒ뉴시스
임차인의 차임 연체 등 의무 위반이 발생할 경우 보호막은 사라지며, 임대인이 계약 시 고지한 대로 재건축을 이유로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정당한 절차 외에, 임대인이 법적인 허점을 노려 명도를 압박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나 큰 비용을 벌기 힘든 문화공간의 특성상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밀려나는 경우가 있다.
한강 작가의 ‘책방오늘’ 역시 상임법상으로만 따졌을 땐 임대차 계약갱신요구권을 쓸 수 있었으나 결국 지난달 폐업을 결정했다.
다수의 문화공간들이 10년을 바라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한 서점 관계자는 계약갱신요구권과 같은 보호 장치가 당연히 도움이 된다면서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많은 서점들이 10년을 내다보기보다는 당장의 월세를 걱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점 역시 사람들의 유입이 많은 일명 ‘핫플레이스’에 위치하면 사정이 나아지겠지만, 임대료에 맞추다 보니 점점 외곽으로, 골목으로 밀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방문객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서점까지 부동산 가격에 좌우되는 현실을 두고 문화계 안팎에서는 “어떤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안타까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의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책방오늘의 폐업 소식이 전해진 이후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지자체 차원에서 책방오늘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지자체 차원의 문화공간 보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2004년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연극 공연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던 대학로 일부 구간을 문화지구로 지정, 공연장 또는 전시장, 박물관 등의 시설을 유치하면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후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공연장을 짓고, 상권이 과열되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자리를 꿰차며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소극장은 쫓겨나는 역효과를 낳았다. 2004년 문화지구 지정 당시 월 150만원 선이던 대학로 내 소극장 임대료가 지금은 위치와 크기에 따라 1000만원을 넘기기도 한다.
새롭게 조성되는 문화공간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술가들이 모여 땅을 사고 마을을 일구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파주 헤이리예술마을과 같은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 다만 전국 곳곳의 특화 거리는 대부분 ‘반짝’ 지원과 이에 따른 짧은 관심 끝에 ‘텅 빈’ 거리가 되곤 한다. 서울 중구의 필동문화예술거리 등 전국 곳곳에서 정체성을 잃고 한적해진 특화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초기 예산이 집중될 때는 예술인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일시적으로는 유도할 수 있지만, 문화적 생산을 통해 자생력을 확보하고 주민들과 함께 이를 누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조성 이후 사후 관리 및 활성화 대책 마련 없이 조성되는 부실한 기획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책방오늘 역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에는 골목 전체가 붐빌 만큼 사람들이 몰렸으나, 반짝 관심이 지나간 자리에는 문화공간들의 위태로운 현실만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