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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기행’ 이연 “거침없는 동주, 그 안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9.02 15:23
수정 2026.09.0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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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공효진·박소담과 네 모녀 호흡…촬영 밖에서도 이어진 가족 같은 관계

“복수하는 사람에게도 고통 따라”…시나리오부터 마음에 들었던 결말

거침없이 달리고 몸부터 던진다. ‘경주기행’의 셋째 동주에게 망설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막내동생 경주를 죽인 백상현(변요한 분)을 납치해 경주로 향하는 가족 중에서도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물이다.


‘경주기행’은 8년 전 막내딸 경주를 잃은 엄마 옥실(이정은 분)과 세 딸 장주(공효진 분), 영주(박소담 분), 동주가 출소한 백상현을 납치하면서 시작되는 복수극이다. 한 가지 목적을 품고 길을 나선 네 모녀는 경주로 향하는 동안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경주의 죽음과 그 이후의 시간을 마주한다. 동주 역시 가족과 같은 곳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분노와 상실을 드러낸다.


‘D.P.’와 ‘소년심판’ 등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온 이연은 이번에는 전직 프로레슬러 셋째 딸 동주가 됐다. 전작에서 인물의 날 선 에너지와 감정을 밀도 있게 보여줬다면, ‘경주기행’에서는 그 힘을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 놓는다.


이연ⓒ롯데엔터테인먼트

이연은 시나리오에 선명하게 그려진 동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체화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동주의 겉모습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행동을 만들어내는 감정에 집중했다. 김미조 감독이 이연에게 강조한 건 ‘거침없음’이었다. 이연은 그 한마디를 출발점으로 동주의 행동을 이끄는 내면을 채워나갔다.


“김미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워낙 잘 써주셔서 대사와 행동만으로도 캐릭터가 어느 정도 구축돼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제가 해석해서 연기한 뒤 보여드리는 방식이 좋았죠. 감독님이 저한테 딱 한마디 해주신 게 있어요. ‘동주는 정말 거침없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그 거침없음의 원동력이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저는 그게 사랑받으려는 몸부림이라고 봤어요. ‘내가 더 해야 사랑을 더 받을 거야’, ‘내가 이렇게 보여주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라는 마음이요.”


동주의 성격을 잡은 뒤에는 세 자매와 맺고 있는 관계를 각각 다르게 설정했다. 실제 외동인 이연에게 자매 관계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었지만, 가까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접점을 찾았다.


“외동이지만 자매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너무 친하지만 가끔은 꼴도 보기 싫은 친구들 있잖아요.(웃음) 동주에게 장주 언니는 어느 부분에서는 엄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영주 언니는 나와 너무 달라서 말도 섞기 싫고 나한테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었어요. 경주는 부모님이 예뻐하고 똑똑하니까 조금 질투도 나지만, 너무 약해서 지켜주고 싶은 막내 동생이었고요. ‘쟤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는데’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동주가 네 자매 중 어떻게 보면 셋째 아들 같은 성향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동주와 이연 사이에도 맞닿는 지점은 있었다. 이연은 평소 억누르던 자신의 일면을 동주를 통해 한층 크게 꺼내 보였다.


“저한테도 욱하는 면이 분명히 있어요. 다만 저는 욱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그런 면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동주를 연기할 때는 그 부분을 더 키웠어요. 욱하면 굳이 누르지 않고 욱하는 대로, 거침없으면 거침없는 대로 내보냈죠. 닮지 않은 부분은 실제 저는 생각이 정말 많은 편이에요. 생각을 많이 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라 그 부분에서는 동주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스크린에서 네 모녀가 가족처럼 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경주에서 함께한 시간도 한몫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로 촬영이 멈추는 날이면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은 촬영장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시간을 함께 보냈다.


“촬영을 취소하면 갑자기 해가 뜨는 거예요.(웃음) 그러면 다 같이 ‘이게 뭐야’ 하다가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밥도 먹고 산책도 했어요. 그런 시간이 정말 많았어요. 또 가족을 연기하다 보니까 역할에 따라 실제 마음도 열리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선배님들을 만났고, 선배님들도 저를 받아주시면서 굉장히 빨리 가까워졌어요.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고 오늘도 카톡했어요.”


네 모녀 중 실제로도 막내였던 이연은 현장 밖에서도 선배들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길을 찾고 맛집을 검색하거나 예약을 도맡아 공효진에게 ‘똘똘한 막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선배님들이 오히려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오는 걸 어려워하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후배가 자신을 어려워할까 봐, 괜히 말을 걸었다가 불편하게 만들까 봐 조심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한마디를 더 걸어요. 그러다 보면 좋은 대화가 이어지더라고요. 저도 처음부터 막 들이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선배님들이 마음을 열어주시면 저도 그다음부터는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가족 중 백상현을 제압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인물도 동주다. 특히 도주하는 백상현에게 몸을 날리는 장면은 완성된 화면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촬영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백상현이 처음 도망칠 때 논밭에서 쫓아가서 제가 몸을 날리는 장면이 있어요. 차 뒤쪽을 반으로 열어서 카메라를 넣고 찍었는데 계속 제 얼굴이 안 잡히는 거예요. 어깨가 너무 아프니까 저도 모르게 몸을 보호하면서 얼굴이 안 나온 거죠. 몇 번 찍다가 제가 무술감독님께 ‘저 이거 못해요. 못한다고 전해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제발 한 번만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라고 하시는데 그 무전이 저한테 다 들리는 거예요.(웃음) 결국 ‘얼굴만 보이면 되는 거죠?’ 하고 마지막으로 했는데 그때 얼굴이 딱 잡혔어요. 끝나고 감독님이 오셔서 ‘된다고 했잖아요’ 하셨죠. 감독님이 그런 집요함이 있어요.”


이연은 자신과 붙는 액션 장면 외에는 촬영 당시 백상현의 다른 연기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완성된 영화를 통해서야 변요한이 연기한 백상현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처음 본 장면이 많았죠. 특히 마지막에 정말 불쌍한 척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눈빛부터 완전히 다른 거예요. 갑자기 눈에 광이 돌면서 너무 불쌍한 표정을 짓는데 ‘뭐야, 이 사람’ 싶었어요.(웃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저는 연기는 결국 합이라고 생각해요. 액션과 리액션이 중요한데 변요한 선배님뿐 아니라 모든 선배님이 너무 잘해주셔서 저도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연ⓒ롯데엔터테인먼트

백상현을 향한 복수가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는 사적 복수를 다루는 ‘경주기행’에서 피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연은 그 답을 결과보다 옥실이 백상현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찾았다.


“저는 엄마가 백상현을 끌고 가는 부분부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복수하는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큰지, 이게 전혀 통쾌한 일이 아니라는 게 잘 드러났다고 봤거든요. 손톱이 들리고 눈 아래 핏줄이 터지는 모습까지 보여주잖아요. 복수하는 사람에게도 이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결말이 정말 좋았어요. 복수를 옹호하는 것도, 완전범죄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큰 고통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 결말이었고, 그래서 더 좋았어요.”


‘경주기행’을 통해 이연은 자신에게 아직 낯선 감정과도 마주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없는 그에게 동주는 상실 이후를 간접적으로 살아보게 한 인물이었다.


“제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 깊게 느낀 감정 중 하나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었어요. 저는 아직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을 찍으면서 연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거죠. 촬영이 다 끝난 뒤에 ‘동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제 마음속에 잘 익은 민들레가 있는데 그걸 유리병으로 덮어놓은 것 같다고 했어요. 유리병을 열어버리면 바람이 불어서 다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요. ‘동주는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하다가 울었어요. 지금도 이 이야기는 약간 버튼 같은 것 같아요.”


‘D.P.’와 ‘소년심판’을 비롯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연이어 소화해온 이연에게 특정 이미지로 굳어지는 데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 좋은 작품이라면 익숙한 결의 인물도 다시 맡을 수 있다는 그에게, 그래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택하고 싶은지 물었다.


“제가 할 수 있고, 좋은 시나리오 안에서 저에게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또 센 캐릭터를 맡아도 괜찮아요. 앞으로도 할 거고요. 굳이 다른 걸 해보고 싶다고 한다면 정말 슬픈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사랑 때문에 슬픈 이야기요. 꼭 연애가 아니어도 돼요. 저도 극 안에서 펑펑 울고, 작품을 보신 관객분들도 펑펑 울면서 나올 수 있는 깊고 짙은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는 현대인들이 울 곳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도대체 다들 어디에서 울고 계신지 모르겠어요.(웃음) 한 번씩 실컷 울어야 개운해지는 게 있잖아요. 언젠가 그런 영화를 해서 저도 시원하게 울고, 관객분들도 다 같이 시원하게 울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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