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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가치를 묻다 [정상환의 시대읽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8.27 07:00
수정 2026.08.27 07:00

정치인의 가치, 말이 아닌 기록으로 검증해야

김민석·정청래, 40년 전 세계관 지금은?

"색깔론 아니다, 자신의 색깔에 당당하라"

법안 발의와 표결이 정치인의 진짜 이력서

김민석 신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17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 제2전시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당 대표 당선이 확정되자 정청래 후보와 포옹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치인의 가치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결국 그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에 달려 있다. 정치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살피는 것은 그가 어떤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지 가늠하는 일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꾸려 하는가"를 묻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검증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 정작 이 질문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정치인의 과거와 신념이 하나의 시간축 위에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엇을 주장했는지, 어떤 생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왜 바뀌었는지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과거의 발언과 신념은 선거 때 잠시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소비됐다가 또 다른 뉴스 뒤로 사라진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지 않은 채 정치인은 늘 '휘발되는 현재형'으로만 존재한다.


정치인의 생각이 바뀌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40년 전과 지금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데 생각과 관점이 그대로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이, 왜,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에서 출발해 지금 한국 정치의 주류가 된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가치를 묻는 것은 오늘 대한민국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질문이다.


당시 운동권의 상당수는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종속이론 △매판자본론 △제국주의론 등의 세계관으로 한국 사회를 해석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도 수용했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자본주의, 미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하나의 세계관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소련은 해체됐고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한 축이 됐다. 대한민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세계적인 산업·경제국가로 성장했다. 한국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K-콘텐츠는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세계관을 가지고 출발해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이 된 이들에게 현재의 가치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의 이념은 아직도 유효한가? 바뀌었다면 왜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은 여전히 '매판자본'인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성장한 K-팝과 K-콘텐츠를 지금도 문화제국주의의 침탈 대상으로 보는가?


미국과 안보·경제·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국에 종속된 국가인가?


한국 사회를 여전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투쟁이라는 틀로 설명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지금도 해방돼야 할 '프롤레타리아 계급'인가?


이것은 과거를 들춰 정치인을 비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40년 전의 신념이 오늘 어떤 가치로 전환됐는지, 그 구체적인 궤적을 확인하기 위한 정당한 물음이다.


김민석과 정청래는 이 물음의 대표적인 사례다.


두 사람은 이제 집권여당의 핵심 지도자로서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다만 그는 2025년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은 당시 학생회장으로서 농성장 밖에 있었고 직접 점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행동 역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더 주목할 것은 그의 현재 입장이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한미동맹을 대한민국 외교의 기본축이라고 규정했고, 안보뿐 아니라 경제·정치·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미문화원 시위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한미동맹을 만드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정청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1989년 미대사관저 점거농성 참여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2006년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도널드 그레그를 만나 사과한 사실도 보도됐다. 최근에는 당시 사건을 두고 방화나 수류탄 투척과 같은 과장된 표현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하며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했다.


이처럼 두 사람 모두 과거 행적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소명하거나 사과한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질문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밖에 없다.


1980년대의 문제의식에서 지금의 한미동맹관으로 변화하기까지 무엇이, 왜 달라졌는가?


당시 세계관 중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가?


그 변화가 정치적 성숙의 결과라면 어떤 경험과 성찰을 거친 것인가?


이것은 과거의 이념을 따져 묻는 질문이 아니다. 지금 무엇을 믿고 어떤 대한민국을 지향하는지를 국민 앞에 분명히 밝히라는 요구다.


이 질문은 비단 두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출발해 한국 정치의 주류가 된 모든 정치인에게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곧바로 '색깔론'이라는 반발이 나오곤 한다.


근거 없이 상대를 낙인찍고 사상적 검증을 빙자해 공격하는 낡은 매카시즘은 단연코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가치관과 정치적 정체성을 묻는 정당한 검증까지 색깔론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정치인의 가치관은 사생활이 아닌 공적 정보다.


색깔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색깔에 당당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시대의 변화와 국정 경험을 거치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하면 된다. 생각을 바꾼 것은 잘못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왜 바뀌었는지를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현재 가치는 무엇으로 확인할 것인가.


그들의 말보다 선택을 봐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고도화된 정치적 행위는 법안 발의와 공동발의, 상임위 심사, 그리고 본회의 표결이다.


말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법안과 표결은 기록으로 남는다.


검찰개혁과 형사사법제도 재편 과정에서 어떤 법안에 서명하고 어떤 표를 던졌는가?


부동산과 조세 정책에서는 재산권과 조세 형평성, 시장 자율과 국가 개입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었는가?


기업과 노동, 외교와 안보, 대북정책의 주요 분기점에서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이러한 선택의 축적이야말로 정치인의 현재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런데 우리 정치와 언론에서는 정작 이런 기록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다.


정치인의 말싸움과 계파 갈등, 팬덤 정치와 공천 경쟁은 끊임없이 보도되지만, 그 의원이 지난 수년간 어떤 법안을 발의했고 어떤 표를 던졌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치인의 입법활동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선언문과 발언, 정치활동의 기록에서 출발해 법안 발의와 공동발의, 상임위 활동, 본회의 표결까지 하나의 시간축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변화가 실제 입법활동에 반영됐는지를 국민이 기억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오늘의 표결은 내일의 정치적 이력서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의 과거를 기억하자는 것은 그를 과거에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의 그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다.


과거의 신념과 오늘의 발언, 그리고 지금의 입법과 표결을 하나의 시간축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이 무엇을 믿어왔고, 무엇을 바꾸었으며,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치인의 가치를 묻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다.


과거를 기록하고, 기록을 기억하고, 기억으로 선택해야 한다.


글/ 정상환 환경국립대 객원교수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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