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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정기선이 찍은 'SMR'…이젠 美서 본게임(종합)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8.14 20:47
수정 2026.08.14 20:50

SK, 2대주주서 사업개발자로…한국형 'K-나트륨' 추진

HD현대 주기기·현대건설 EPC·두산 핵심 기자재 역할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가 14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나트륨 SMR 사업 협력과 차세대 SMR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위쪽부터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최태원 SK그룹 회장, 추 대표, 르베크 테라파워.ⓒSK이노베이션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의 방한을 계기로 SK와 HD현대, 현대건설,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기업들이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본 투자에서 시작된 협력이 사업개발과 주기기 제조, 설계·조달·시공(EPC), 핵심 기자재 제작으로 확대되면서 테라파워를 중심으로 한 'K원전 공급망'도 윤곽을 드러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테라파워는 이날 서울에서 차세대 SMR인 '나트륨(Natrium)' 사업 협력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가 서명했으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게이츠 창업자,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전략적 투자자를 넘어 SMR 사업개발과 프로젝트 실행에 직접 참여하는 사업자로 보폭을 넓힌다. SK이노베이션과 SK㈜는 2022년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 달러를 공동 투자해 2대 주주에 오른 바 있다.


양사는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추진 중인 케머러 1호기와 후속 상용 프로젝트에 대한 SK이노베이션의 참여를 확대하기로 했다. 국내 원전 공급망 활용과 국내 나트륨 SMR 사업 개발, 글로벌 프로젝트 공동 발굴에도 나선다. 각국의 규제와 산업 환경, 전력계통 등을 검토해 한국 여건에 맞춘 'K-나트륨' 사업모델도 단계적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케머러 1호기는 345MW 규모의 나트륨 원자로로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았다. 상업 규모 첨단원자로가 미국에서 건설 허가를 받은 첫 사례로, 2031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설계·건설·운영 경험을 축적한 뒤 국내와 글로벌 사업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핵심 수요처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기존 LNG 발전·전력사업에 SK온의 에너지저장장치(ESS)와 SMR을 결합하는 통합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에는 LNG 발전과 ESS로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중장기적으로 SMR을 무탄소 기저전원으로 투입하는 방식이다.


최태원 회장과 게이츠 창업자도 이날 만찬을 갖고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대응과 차세대 원전산업의 발전 방향, 한·미 원자력 협력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HD현대

HD현대와 현대건설은 테라파워의 SMR을 실제로 만들어 짓는 제조·건설 공급망을 맡는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이날 게이츠 창업자와 르베크 CEO,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와 만나 나트륨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3사는 지난 5월 차세대 나트륨 원자로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역할을 나눴다. 테라파워가 나트륨 기술을 제공하고 HD현대가 주기기 제조, 현대건설이 EPC를 담당하는 구조다. 이번 회동에서는 그동안의 진전 사항을 점검하고 육상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HD현대는 이미 제조 단계에 진입했다. 2022년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2024년 12월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되는 원통형 원자로 용기를 수주해 제작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나트륨 원자로 주기기 핵심 설비의 제작·공급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HD현대는 향후 원자로 용기를 연간 2~3기 공급할 수 있는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상용화에 앞서 생산설비 투자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세계 원전 설비의 약 25%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노후 원전 교체와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가 동시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초기 공급망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두산에너빌리티도 테라파워의 첫 나트륨 프로젝트 핵심 기자재 제작에 뛰어들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날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용 원자로 보호용기와 원자로 지지구조물, 원자로 내부구조물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4년 12월 테라파워 초도호기 핵심 기자재의 제작성 검토 계약을 맺고 설계 개선과 제작성 검토를 진행해 왔다. 이번 계약으로 협력 단계가 사전 검토에서 실제 제작으로 넘어가면서 향후 후속 SMR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국내 기업들의 역할을 연결하면 테라파워의 원천기술을 중심으로 사업개발부터 주기기와 핵심 기자재 제조, EPC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SK가 투자와 사업개발을 맡고 HD현대와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조 역량을 제공하며 현대건설이 EPC를 담당하게 된다.


테라파워가 개발한 나트륨은 물 대신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SFR) 기반 SMR이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을 용융염 기반 열에너지저장시스템(TES)에 저장했다가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활용할 수 있어 기저전원의 안정성과 출력 조절 능력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 세계에서 100개가 넘는 SMR 노형이 개발되는 가운데 공급망이 완전히 굳어지기 전인 지금이 국내 기업에는 시장 진입의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해외 원전 사업에서 완성된 원전을 수주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미국에서 첫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차세대 원자로의 초기 공급망부터 국내 기업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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