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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영역 확장, ‘헬스키친’ 김수하 [D:PICK]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8.15 09:13
수정 2026.08.15 09:14

정통 성스루에서 팝·R&B까지… ‘헬스키친’으로 증명한 보컬 스펙트럼

뮤지컬 무대에서 주연 배우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극이 지정한 음악적 문법을 오차 없이 소화하는 기술이다. 현재 공연 중인 ‘헬스키친’에서 김수하가 맡은 앨리 역은 지금까지 그가 소화해 온 넘버들과는 완전히 다른 창법과 호흡을 요구한다.


'헬스키친' 앨리 역의 배우 김수하 ⓒ에스앤코

앨리샤 키스의 자전적 악곡들로 채워진 이 작품은 정박에 맞춰 소리를 곧게 뻗는 전통적인 뮤지컬 발성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 박자를 쪼개는 당김음(싱코페이션), 음을 미끄러뜨리는 기법, 그리고 두성과 흉성을 촘촘하게 오가는 팝·R&B 특유의 리듬감이 필수적이다.


김수하는 음색의 톤을 낮추고 그루브를 살리는 유연한 발성을 적용해, 작곡가가 의도한 1990년대 뉴욕 R&B의 질감을 무대 라이브로 정확히 구현해 냈다. 뿐만 아니라 통통 튀면서도 반항적이고 섬세한 10대 후반의 감정선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며 연기적 변신을 꾀했다.


이러한 유연한 장르 소화력의 배경에는 독특한 데뷔 이력과 훈련 과정이 있다. 단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2015년, 세계적인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 프로덕션의 오디션을 통과한 그는 영국 웨스트엔드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의 ‘미스 사이공’ 앙상블 및 여주인공 킴(Kim)의 커버로 합류했다. 국내 프로 무대 경험 없이 곧바로 웨스트엔드로 직행한 한국 배우 첫 사례였다.


앙상블과 커버로 공연을 이어가던 중, 주연 배우의 건강 이상으로 대신 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잡았고, 이때 선보인 안정적인 기량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현지 제작진의 신뢰를 얻어 정식 주연으로 발탁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2016년부터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독일 등에서 진행된 대규모 유럽 투어와 일본 공연에서 메인 주연 킴을 맡아 수백 회의 무대를 이끌며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조선!’에 출연한 배우 김수하 ⓒPL엔터테인먼

국내 복귀 이후의 행보에서도 특정 배역에 갇히지 않으려는 태도가 일관되게 드러난다. 많은 주연 배우들이 성공적인 이미지나 주력 창법에 기대어 필모그래피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과 달리, 김수하는 작품마다 정반대의 창법과 톤을 요구하는 인물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왔다.


2019년 국내 복귀작인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전통 장단과 힙합 리듬이 교차하는 넘버를 소화하며 신인상을 거머쥔 것을 시작으로, 포크와 블루스 기반의 음악극 ‘하데스타운’에서 현실과 생존 사이를 고뇌하는 에우리디케를 맡아 입체적인 인물을 그렸다. 이어 대형 라이선스 ‘아이다’와 고전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을 거치며 정통 뮤지컬의 고난도 가창 양식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여기에 소극장 음악극 ‘포미니츠’의 제니 역을 통해 밀도 높은 내면 연기까지 선보이며 특정 장르나 규모에 갇히지 않는 연기 폭을 증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헬스키친’은 김수하의 도전의 영역이 여전히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안정적 흥행작에 머무르기보다 보컬 스타일과 인물의 결을 꾸준히 바꿔온 그의 궤적은, 한 배우가 장르적 관성을 깨부수며 자신의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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