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사태로 드러난 방송가 ‘집안 마케팅’의 이중성 [이슈]
입력 2026.08.13 14:41
수정 2026.08.13 14:41
방송서 자랑한 '4대 의사 집안'…친일 행적 드러나며 논란
시청률용 신분 포장 지양하고 출연자 본업 가치에 집중해야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신 후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
최근 배우 하영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작품을 홍보하던 중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개인사를 언급했다. 당일만 해도 ‘하영, 금수저 집안’이라는 방송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화제를 모았으나, 증조부의 친일 행적과 각종 문헌 자료가 등장하고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KBS '옥탑방 문제아들'에 출연한 배우 하영 ⓒKBS
실제 하영이 언급한 증조부는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안상호다. 소속사는 초기 사실무근 입장에서 하루 만에 검증 부족을 인정하며 사과했고, 하영 역시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다. 하영과 정해인이 출연한 방송분은 OTT 스트리밍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고, 유튜브와 네이버TV에 업로드된 영상 역시 모두 비공개 처리됐다.
이번 사건은 개별 연예인 조상의 역사적 과오 문제를 넘어선다. 출연자의 집안 배경을 최소한의 검증 없이 방송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온 방송가 관행의 허점이 드러난 사례다. 미디어가 세습된 신분과 자본을 자극적인 시청률용 포장지로 소비한 결과가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과거 대중문화는 고난과 가난을 극복한 ‘자수성가형’ 서사에 집중했다. 반면 최근 미디어가 선호하는 소재는 유복한 환경에서 형성된 ‘구김살 없는 여유’와 ‘귀티’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적 배경 속에서, 대중은 타인의 고난보다 결핍 없이 성장한 인물의 안정적인 태도나 인성을 매력으로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방송가는 이 같은 트렌드를 적극 활용해왔다. 출연자의 본업 성과나 역량 대신 ‘상위 1%’ ‘4대째 엘리트 집안’ 등의 프레임을 부여해 개인의 이미지 자산으로 포장했다.
증조부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해당 가문의 부와 지위가 형성된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대한 성찰 없이 ‘명문가 출신 엘리트’라는 이미지만 남았을 것이다. 미디어가 세습된 특권과 기득권을 개인의 품격으로 왜곡하고 무비판적으로 소비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넷플릭스 '홍보하러 온 건 맞는데'에 출연한 배우 하영 ⓒ넷플릭스
현대 법치 사회에서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묻는 연좌제는 적용될 수 없다. 배우 개인이 조상의 역사적 행적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책임이나 도덕적 죄책을 질 수도 없다. 문제는 조상의 후광과 그로 인해 형성된 사회적 자본은 방송 홍보 자산으로 온전히 누리면서, 과거의 과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후손과 조상은 별개”라며 선을 긋는 이중적 태도에 있다.
가문이 축적한 부와 인지도는 방송을 통해 개인의 배경 프리미엄으로 전환해 소비하면서도, 역사적 책임이나 비판이 제기되는 시점에서는 연좌제 금지를 명분으로 개인과의 연관성을 차단하는 선택적 취사선택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선택적 취사선택은 대중에게 박탈감을 유발한다.
방송가의 검증 없는 ‘집안 마케팅’은 출연자 본인에게도 리스크로 작용한다.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집안 내력이나 과장된 배경 소개는 대중의 팩트체크 과정에서 언제든 반대 급부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미디어가 출연자의 본업인 연기, 음악, 전문성보다 세습된 가문 배경을 우선적인 화제성 도구로 삼는 한 유사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